스무 살, 70kg여도 괜찮아
스무 살, 수능을 끝내고 대학 입학 전까지 남겨진 그 잉여로움을 겪어본 이는 알 것이다.
할 일을 찾아내야 하는 시기, 최대한 많은 삽질(?)을 해야 이득이 되는 시기이다.
수능 준비로 인해 앉아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라 살이 많이 쪘었다.
'대학 가면 이뻐진다.'라는 말은 믿지 않았지만 입학 전까지는 다이어트가 성공할 것이라 믿었던 시절..
그리하여 내가 경험했던 '삽질' 중 하나는 무지성 헬스장 등록이었다.
그렇게 매일 1시간 30분 동안 열심히 러닝머신 위를 달렸다. 아니, 걸었다.
헬스장계의 기부천사인 나를 보고 관장님이 안타까웠는지 기구의 쓰임을 알려주는 날도 있었지만
그때의 나는 오로지 체지방만 빠지면 만사 OK였기에 와닿지 않는 가르침이었다.
당연히 러닝머신, 자전거 타기로 드라마틱하게 살이 빠질 리가 없었고(먹는 건 오히려 늘었으니), 165cm 63kg의 통통한 모습으로 대학 캠퍼스를 누빌 준비를 했다.
그리고 입학과 동시에 알코올의 세계로 입성했다.
고3 때의 막연한 기대와 설렘을 꾹꾹 눌러 담으며 참아낸 욕구는 무수히 많은 술자리에서 터져버렸다.
신입생 축하파티, 과 MT, 학생회 활동, 농활, 축제 주점 등 대학생의 자유를 만끽하자 어느새 7kg가 쪄버린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인생 최대 몸무게를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고통받지 않았다.
체중 증가로 스트레스받기엔 내 인생이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밤샘 시험공부를 핑계로 늦은 시각 불닭 볶음면에 떡볶이를 먹어도 고통을 나눌 동기들이 있었고,
술과 함께 먹는 안주가 고칼로리 폭탄이어도 힘이 되는 동아리 선후배가 있었으며,
편의점 음식으로 배를 채워야만 했던 날에도 미래에 대한 막막함을 함께 얘기할 좋은 친구가 있었다.
음식에 다이어트식 의미를 두지 않고, 있는 그대로 행복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떡볶이는 탄수화물 폭탄이라 살찌는 음식, 샐러드는 식이섬유 풍부한 클린식이라 살 안 찌는 음식이라는 지금의 이분법적 강박에 사로잡히지 않던 시기였다.
음식은 남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클린식과 더티식으로 나눌 수 없는 복합적인 영양분의 집합체였던 것이다.
8년 후인 지금에서야 회상하면서 깨달은 사실이다. 음식은 아직 내겐 무서운 존재임에도 말이다.
이 다이어트식 강박을 떨쳐내고 온전히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는 즐거움을 되찾을 때까지 부단히 노력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