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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일과

매일 같은 일상

[길을 몰라서 길을 걷습니다]는 매주 금요일에 연재됩니다.


<글을 읽기 전 산티아고 용어>

bar (바) = 우리나라의 카페와 비슷한 개념. 커피, 음료, 토스트 등을 파는 식당.

albregue (알베르게) = 순례자 숙소.

pilgrim (순례자) =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


총 31일간 프랑스 생장에서부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두 다리로 걸었다. 혹시나 몸이 아프면 연박을 할 생각이었지만 몸이 멀쩡했다. 그래서 매일 똑같이 걸었다. 그 길 위에서의 생활루틴이다.


하루 일과


 8월 20일부터 9월 20일까지, 여름에 걸었기에 해가 뜨기 시작하면 너무 더웠다. 또 일출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아침 해가 뜨기 한 시간 전에 길을 나섰다. 이후 걷는다. 길을 걷다가 마음에 드는 bar가 나타나면 앉아서 휴식을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계속 걷는다.

여명


 약 1시쯤에 알베르게에 도착한다. 점심시간이지만 나는 바로 점심을 먹지 않고 샤워하고 빨래를 먼저 한다. 순례자들이 몰릴 때 하면 기다려야 하고, 뒷사람을 위해 더 급하기 빨래해야 하기 때문이다. 배고파도 조금만 참는다. 손빨래까지 햇빛에 말리면 순례자로서 일은 끝났다. 잠깐 앉아서 부모님께 영상통화를 건다. 이때 전화를 하면 한국은 대략 밤 9시쯤이었다. 엄마 아빠랑 조잘조잘 이야기를 나누고 "내일 또 통화해~"하고 전화를 끊는다.

빨래


 늦은 점심을 먹는다. 먹고 다시 알베르게로 돌아와서 오늘 얼마큼 걸었는지와 내일 얼마큼 걸을 건지를 정한다. 또 google지도를 이용해서 내일 묵을 알베르게를 정하고 예약 문자를 보낸다. 그리고 일기를 쓴다. 걸으면서 있었던 일, 걸으면서 한 생각들, 먹은 음식들 등등. 일기를 다 쓸 때쯤 산들바람이 불어오면 나도 모르게 잠이 든다.

알베르게에서 풍경


 눈을 뜨면 저녁 먹을 시간이다. 아주 여유로운 저녁을 먹고 잘 준비를 한다. 먼저 빨래를 걷고 내일 아침에 필요 없는 물건들은 미리 짐을 싼다. 양치까지 마치고 침낭을 펴고 들어간다. 저절로 눈이 감기지만 오늘 찍은 사진들을 모아서 블로그에 또 일기를 작성한다. 블로그는 하루 기록용, 일기장은 블로그에는 공유하지 않는 비밀 일기장 느낌이다. 블로그까지 업로드하면 알람을 설정하고 잠에 든다.


매일 같은 일상


 31일 동안 매일 같은 일상이 반복되었다.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서 비슷한 시간에 숙소에 도착하고 비슷한 시간에 저녁을 먹고 비슷한 시간에 잠을 자고. 그런데 매일 다른 하루였다. 매일 같은 해가 뜨지만 일출 풍경은 매일 달랐다. 는 길의 풍경도 매일 달랐다.


 매일 같은 순례길이라고 느끼지만 어느 날은 혼자 걷기도 하지만 순례자들과 함께 걷기도 한다. 함께 걷다가 헤어지기도 하고 또다시 만나기도 하고. 그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도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저녁 식사 자리도 매번 다르다. 혼자 먹기도 하고 같이 걸은 순례자와 함께 식당에 가기도 한다. 또 알베르게에서 커뮤니티 식사를 하기도 한다. 단 하루도 어제와 같은 날이 없었다.

일출


 나는 교사 일을 할 때, 하루가 너무 똑같아서 감사함이 전혀 없었다. 아니, 지루하고 이렇게 30년을 더 일해야 하는 것에 미리 지겨워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울리는 알람 소리를 듣고 기상하고,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직장에 도착하고. 매일 보는 직장 선생님들과 매일 보는 학생들. 심지어 같은 내용의 수업을 지도하는 반의 개수만큼 해야 한다. 이후 정해진 시간에 퇴근해서 저녁 먹고 자면 다시 어제와 같은 가 반복된다.


 일을 할 때만 일상이 같았던 건 아니다. 임용고시를 공부할 때는 더 지옥같이 하루가 같았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어제 공부했던 걸 또 복습하고 또 복습하고. 대략 10번 정도는 회독을 하니. 밥도 정해진 시간에 먹고 같은 시간에 잠을 자고. 하루하루가 마르고 닳도록 같았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같다고 생각했던 하루들도 아주 조금씩 달랐다. 아침, 점심, 저녁 메뉴가 달랐고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도 달랐다. 어느 날은 퇴근하고 친구들과 놀기도 했으며, 어느 날은 맛있는 디저트를 사서 먹기도 했다. 오랜만에 연락이 온 지인과도 재밌게 통화를 한 날도 있으며 엄마 아빠랑 맛있는 걸 먹으러 외식을 한 날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정말 같은 날은 하루도 없었다.

 

 같은 일상이 사실은 매일 달랐다는 것을 산티아고를 걸으며 깨달았다. 은 일상이었기에 안정감이 있었고 같은 일상이었기에 사소한 작은 다른 사건이 행복했다. 이제는 매일 같은 일상에, 매일 다른 하루에 감사하며 살 것이다.

알베르게에서 받은 편지





산티아고 순례길 Tip1. 준비물
등산 스틱을 꼭 준비하세요. 순례길 첫 코스인 생장에서 론세르바예스로 갈 때,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해요. 등산 스틱은 산을 오를 때 필요한 게 아니라 하산할 때 필요하답니다.
가벼운 에코백도 준비하면 좋아요.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샤워할 때 옷가지 등을 놓을 곳이 없을 수도 있어요. 에코백에 잠옷 등을 넣고 문고리에 걸으면 편하게 씻을 수 있답니다. 그리고 저녁을 만들어 먹을 때도 있는데 장바구니로도 사용하면 좋아요.
일기장을 준비하는 것도 추천해요. 산티아고를 걸으면서 있었던 소중한 경험들, 남들에게는 말하기 낯간지러운 감동들을 적으면 소중한 추억이자 자산이 될 거예요.
Buen Camino.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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