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척 해

곰 만나건 아님

by 강윤희

큰 딸이 책상에 앉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새내기 대학생이다. 공부할 리가 없는데 무슨 문제지를 열심히 풀고 있었다. 궁금해서 어깨너머 살펴봤다. 운전면허 필기시험공부를 하고 있었다. 내 딸이 운전면허를 딸 수 있는 나이가 됐구나 싶었다. 그 생각은 잠깐이고 운전면허를 따서 어떤 차를 운전하겠다는 건지 물어볼 수가 없었다. 내 차를 희생양으로 보낼 수 없었다.


내 동생은 스무 살쯤 첫 운전면허를 땄다. 따자마자 아빠를 졸라서 운전연습을 했다. 엄마가 아빠에게 새 차를 사게 해 준다는 약속으로 아빠 차를 동생이 물려 받았다. 어느 정도 운전에 익숙해지자 운전하는 거리가 점점 늘어났다. 처음에는 동네 한 바퀴만 돌더니 나중에는 시내주행까지 했다. 자신감이 붙은 동생은 좀 더 멀리 가고 싶어 했다.


지금은 번영로라고 불리는 제주 동쪽 중산간 도로가 있다. 중앙선 양쪽 8차선인 큰 도로다. 길 정비가 잘 돼 있고 고속도로처럼 뚫린 길이다. 동생이 운전면허를 딸 즈음 번영로는 동부산업도로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주변에 건물 하나 없이 오로지 길 뿐이었다. 길도 딱 중앙선 양쪽으로 1차선씩 밖에 없었다. 좁은 도로였다. 도로 가장자리 연석 옆 한쪽은 벼랑처럼 밑으로 떨어지는 낭떠러지였다. 반대편 차선 끝은 언덕처럼 벽이 있었지만 도로와 언덕 벽 사이에 1m가량 파인 구간이 있었다. 도로 가장자리도 깨끗이 정비된 것이 아니었다. 아스팔트를 포장할 때 가장자리는 도로면과 평행하게 만들어야 되는데 대충 울퉁불퉁하게 마무리 한 도로였다.

동생은 드라이브를 가자고 나를 꼬여냈다. 초보운전이 무슨 장거리 운전이냐고 나중에 가자고 했다. 동생은 막 배운 운전이 재미있었는지 계속 어디를 가자고 졸라댔다. 불안하긴 했지만 자주 연습을 해야 운전이 늘겠지 싶었다. 의논 끝에 성산일출봉을 돌고 오자고 했다. 성산포를 향해 달렸다. 시내주행은 실수 없이 잘했다. 시내를 빠져나오고 동부산업도로에 들어섰다. 인도는 없고 차량전용도로만 있는 길이었다. 앞, 뒤, 옆, 오직 차들만 있었다. 생각보다 속도가 다들 빨랐다. 계속 정속 주행을 하면서 가고 있었다. 가다가 오른쪽으로 코너를 크게 돌고 있었는데. 중앙선 넘어 맞은편에서 차가 우리 쪽으로 오듯이 코너를 돌면서 내려왔다. 초보운전인 내 동생은 깜짝 놀라 오른쪽으로 차를 바짝 붙였다. 도로 옆 가장자리는 울퉁불퉁한 시멘트덩어리였다. 차량 바퀴가 울퉁불퉁 튀어나온 부분을 밟으면서 튕기듯이 흔들렸다. 덜커덩 흔들리면서 중앙선을 살짝 넘어갔다. 마주 오던 택시가 놀라서 왼쪽 낭떠러지 끝 가장자리에서 겨우 멈췄다. 우리차는 동생이 놀라서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리다 보니 도로와 언덕 벽 사이 구덩이에 꼬라박았다. 다행히 안전벨트를 하고 있어서 다치지는 않았다. 크게 사고 난 것에 비해 아무 이상이 없었다. 밑바닥에 꼬라 박은 차량 걱정이 더 컸다.

사람들이 다가왔다. 한두 사람이 아니다. 운전석에 동생이 있었고, 조수석에 내가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선팅이 짙게 된 차량 창문 밖으로 사람들이 보였다. 차량 안쪽이 잘 안 보였는지 유리창과 눈 사이에 손으로 그늘을 만들어 안쪽을 들여다 봤다. 우리는 너무 창피해서 고개를 못들었다. 창피한 것도 있었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차량 주변을 둘러싸고 있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언니 어떻게 해?”

“몰라. 죽은 척할까? 죽은 척 해”

고개를 푹 숙인 채 복화술로 대화를 나눴다

“밖으로 나가 말아?”

“몰라. 그냥 고개 숙여”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본 적은 처음이었다.

“죽었나 봐 ”

“신고 좀 해봐요”

“두드려 봐요”

“이봐요! 여기요!”

사람들이 한두 마디씩 했다. 더 이상 고개 숙이기도 힘들어서 우선 고개를 들었다.

“ 안 죽었네, 안 죽었어!”

“ 살았네, 살았어.”

“ 다행이다.”

우리는 그 와중에 눈은 뜨지 못하고 입만 웃는 썩은 미소로 사람들에게 답을 했었다.


딸이 운전면허 연습한다고 내 차를 달라고 하면 어떻게 하지? 주고 싶지 않다. 나이 많은 프리우스 차는 그렇게 허망하게 갈 차가 아니다. 분명 큰 딸은 내가 타는 차를 달라고 할 것이다. 막아야 한다. 절대 줄 수 없다. 운전면허를 못 따게 할까? 본인 돈으로 차를 사기 전에 운전면허 따는 걸 막아야 할지 모른다. 안 그러면 분명 내차는 폐차가 될 것이다.

“주행연습은 학원에서만 하고 차는 안 돼”

“그럼 장롱면허 되는데”

“네 돈으로 차를 사서 운전해. 내 차는 안 돼”

“응? 무슨 소리야. 나 아빠 차 탈 거야!”

“뭐! 이게 처 돌았나!”

큰 딸은 아빠가 뽑은 지 2년도 채 안 된 새 차를 몰겠다고 했다.

“돌았네. 염치를 말아먹었냐?”

순간 25년 전 동생이랑 아빠 차를 박살 낸 것이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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