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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 인간

사람답게 살려고 노력중

by 강윤희

고등학교 다닐 적에는 잠자기 전에 교복을 챙겨 입었다. 하얀 셔츠를 입고 청록색 넥타이를 느슨하게 맸다. 넥타이와 같은 색 조끼 단추를 끼워 넣고 재킷까지 챙겨 입었다. 옷을 다 갖춰 입고 이불 속에 들어갔다. 고등학교 등교 시간은 아침 7시였다. 그 시간까지 학교에 가려고 평일에는 항상 교복을 입고 잤다. 엄마가 잔소리를 했지만 조금 더 잠을 자고 싶은 마음에 불편하더라도 교복을 입고 잤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책가방만 주워 들고 학교에 갔다. 학교 사물함에는 칫솔과 치약이 있었다. 학교에서 자주 씻었다. 3년 내내 짧은 머리를 유지했다. 학교에 있는 짧은 수도꼭지에 머리를 대고 머리 감기가 수월했기 때문이었다. 잠이 좋았다. 지금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는 날이면 전날에 옷을 갖춰 입고 잔다.


대학생이 돼서도 쉬는 날은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있었다. 꼼짝하기도 싫었다. 발가락조차 이불 밖으로 내놓기 싫었다. 침대에 누워 텔레비전 리모컨 누르는 손가락만 까닥까닥했다. 이 채널 저 채널 정착하지 못한 채 채널 유목민처럼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리모컨이 침대 밑으로 떨어졌다. 이불 밖으로 허리를 내려 리모컨을 주워야 했지만, 그것조차 하기 싫었다. 채널 유목민이 리모컨을 떨궈서 한 채널에 정착했다. 12시간 동안 알아듣지도 못하는 MTV VJ가 영어로 뭐라 뭐라 소개하는 뮤직비디오만 주야장천 봤다. 마침, 엄마가 집에 들어오고 리모컨을 주워달라고 해서 다시 채널 유목민으로 돌아갔다. 엄마는 인간 아닌 짐승을 키운다며 혀를 찼다.


부모님 밑에서 차려준 밥을 먹으며 치워진 방을 쓰다가 덜컥 스물다섯에 결혼해 버렸다. 청소 한번 안 해보고 세탁기 사용 방법도 모르는 내가 갑자기 살림을 하게 됐다. 집에 발 디딜 곳이 없을 정도였다. 정리 정돈을 할 줄 몰랐다. 전기요금, 수도 요금을 제때 내는 것도 까먹기 일쑤였다. 수저통에 머리핀이 있었고, 양말과 팬티는 한 서랍에서 서로 뒹굴고 있었다. 설거지는 할 때마다 싱크대는 홍수 바닥이었다. 옷도 빨래건조대에 건져 입었다. 청소할 때면 걸레를 오른발 발바닥 밑에 깔고 서서 질질 끌고 다녔다. 허리도 굽히기 귀찮아 엄지와 검지 발꼬락을 사용해 집개처럼 물건을 들어 올렸다. 엄마가 꼭 너 닮은 딸 낳아 복장이 뒤집어 봐야 한다며 저주를 내렸다. 그 저주는 엄마 소원대로 이뤄졌다. 날 닮은 딸은 나처럼 이불에서 나오지 않는다. 나도 그 옆에 누워서 나오지 않는다. 엄마 소원은 이뤄졌지만 내 복장은 뒤집어지지 않는다. 엄마 복장만 두 배 더 뒤집어졌다.


날 닮은 아이를 낳고 이사를 하게 됐다. 손이 없는 날 받아서 가려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어느 날 이사 가야 해? 그런 거 있잖아. 손 없는 날.”

“그런 건 사람들이나 보는 거지, 너같이 인간 같지 않은, 사람이 아닌 것은 아무 때나 이사 가도 된다.”

사람이 되려면 멀었다는 소리를 항상 달고 사는 엄마의 독설이었다. 난 엄마에게 아직도 인간이 아니다. 짐승이다. 짐승.

점심이 밝았다. 아침은 이미 지나고 없다. 눈을 떠보니 정오가 넘었다. 할 일이 없는 날은 이렇게 늦잠을 잔다. 친구들이 전화해서 해가 중천인데 아직도 이불속이냐고 잔소리한다. 밥이라도 먹게 나오라고 재촉한다. 나가기도 싫고 밥 먹기도 귀찮다. 그래도 지금 나가지 않으면 종일 침대에만 있을 거란 걸 알기에 나가볼까 하고 생각만 해 본다.

“지금 누워있냐?”

“응”

“좀 일어나라. 앉아라도 있어.”

“누울 수 있는데 왜 앉아 있어. 누울 수 없을 때만 앉는 거야.”

“너란 인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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