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말썽이었다.
선희와 윤희. 친한 친구 이름 같다. 윤희는 내 이름. 선희는 남편 이름이다. 남편 사주팔자가 사나워서 이름만이라도 여자이름으로 불려야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어릴 때는 이선희라는 가수가 유명해서 놀림을 받았고, 좀 더 커서는 <선희야 가방을 왜 싸니~>라는 노래 가사 말이 유명해져서 가방을 들고 있거나 하면 더 놀림을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선희라는 이름 대신 써니라는 별명으로 불리길 더 좋아했다. 부조금 봉투나 화환을 보낼 때면 꼭 써니라고 적었다.
남편이 초등학교 5학년일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그때는 아버지의 부재가 잘 느껴지지 않았는데 크면 클수록 아버지의 빈자리가 더 컸다고 했다. 남편의 기억 속 아버지는 학교 가기 전에 연필을 깎아 주던 모습, 같이 밥 먹을 때 가시를 발라줬던 모습이 가장 크게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술을 자주 마셨던 모습은 보기 싫어서 술 취한 아버지를 길에서 만나면 모르는 척하고 집으로 왔다고 했다. 결국 그 술 때문에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다.
남편의 어머니는 남편이 생후 100일 때 집을 나갔다고 했다. 그렇게 집을 나간 어머니를 원망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 갑자기 나타나 엄마라고 부르라고 해서 낯설었다고 했다. 처음 본 아줌마를 엄마라고 부르라고 하니 입이 잘 안 떨어져서 부르지 못했다고 했다. 엄마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자주 맞은 일을 생각하며 남편은 속상해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랑 살게 됐다. 남편은 어머니에게 자주 맞았다고 했다. 그 기억이 힘들어 보였다. 자다가 우는 소리가 들려 깨어보면 남편이 꿈꾸면서 울고 있었다. 깜짝 놀라 깨우면 잠에서 깬 상태에서도 한참을 울다 다시 잤다. 나도 어릴 때 자주 맞았지만, 엄마에 대한 원망이 없다. 난 엄마 속을 뒤집어 놓는데 일가견이 있기 때문에 억울하지 않았다. 남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저 화풀이 대상으로 많이 맞았던 남편은 어머니에 대한 상처가 컸다.
남편은 고등학교 졸업 후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고 했다. 배달, 벽돌공장, 옷 공장 다림질, 스탠드바 웨이터 등 할 수 있는 건 다했다고 했다. 남편의 손바닥을 만지면 굳은살이 가득했다. 발바닥에 굳은살은 너무 딱딱해서 오래 걷거나 서 있지 못했다. 우리 엄마는 남편과 결혼한다고 했을 때 무척 걱정했다. 남편이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라 줄 사랑도 없을 줄 알았다고 했다. 선희씨의 성장 과정을 알고 난 후 무척이나 안쓰러워했고 애처로워했다. 그래서 그런지 누구보다 더 사위를 이뻐했다. 아들보다 더 아들 같은 사위로 장인 장모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결혼 후 첫 생일날 케이크에 촛불을 불더니 이런 건 처음이라면서 쑥스러워했다. 세월이 지나 나이가 들어서는 가끔가다 꽃을 사 들고 오는 그런 남편이 됐다.
아이들이 어릴 때 남편 손이 가지 않은 곳이 없었다. 어릴 때는 애들 목욕도 도맡아 했다. 애들이 커서는 머리를 감겨주기도 하고 직접 말려주기까지 했다. 애들과 제주도 안 가본 곳이 없고 일 년에 한 번씩 전국을 여행했다. 애들에게는 친구 같은 아빠였다. 애들 앞에서는 부부싸움 한 번 한 적 없었고, 애들에게 화 한 번 낸 적이 없었다. 남편은 두 딸이 자신과 비슷한 남편을 맞이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술, 담배도 안 했다. 항상 가정적인 모습만 보여줬던 사람이다.
우리가 제일 행복할 때 남편은 세상을 떠났고, 과부가 된 나는 상속 문제와 서류 정리로 보험사와 들락날락했다. 처음으로 서류를 정리하는 건 사망신고서 작성이었다. 남편이름 김선희를 직접 적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그때 동사무소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칸은 본인 이름 적는 게 아니라 사망자 성함을 쓰는 거예요.”
“네 사망자 이름이 김선희예요.”
“남편이 사망자라면서요.”
“네. 남편 이름이 김선희예요.”
눈물은 쏘옥 들어가고 김선희 이름이 여자냐, 남자냐, 사망자 맞냐 하면서 동사무소 직원이랑 옥신각신했다. 눈물을 꾹 눌렀다. 동사무소에서 사망자 신고를 하면 각종 재산조회 목록이 나온다. 다 찾아다니면서 사망진단서를 내밀고 상속 절차를 밟아야 했다. 보험부터 시작해 은행, 연금 등 작성 서류를 적어야 하는데 한결같이 다 김선희 이름이 내 이름인 줄 알고 다시 쓰라고 했다. 본인 이름 적지 말고 사망자 이름을 적어야 한다며 설명했다. 나는 사망자 이름이 김선희라며 설명하고 또 했다. 눈물은커녕 눈 똑바로 뜨고 두 번 정도 같은 말을 반복해야 했다. 73년생 선희씨는 마지막까지 그 이름이 말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