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이야기
호텔리어답게 머리에는 정갈한 포마드가 발라져 있다. 깔끔한 넥타이와 반질반질한 구두로 단정한 차림을 유지하는 아빠였다. 언제나 같은 시간에 퇴근했다. 퇴근 후 옷도 갈아입기 전에 빗자루부터 들고 집 청소를 했다. 초등학교 시절, 아빠가 청소를 할 때쯤 나는 TV 인형극 ‘모여라 꿈동산’를 보고 있었다. TV 앞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던 내가 오른쪽 엉덩이를 들면 아빠는 그쪽을 청소하고 왼쪽 엉덩이를 들면 왼쪽으로 와서 청소를 했다.
중고등 학창 시절, 엄마는 나에게 설거지나 잡다한 일을 자주 시켰지만 제대로 하지 않았고, 아빠는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엄마가 시킨 일을 대신해줬다. 의자에 옷을 겹쳐서 올려놔서 의자가 쓰러질 정도였고, 책상은 공부하기 힘들 정도로 잡지와 쓰레기로 난리였다. 아빠는 한 번 잔소리 없이 내 방을 청소하고 정돈했다. 남들이 버스 타고 학교 다닐 때 아빠가 학교 교문까지 차로 데려다줬다. 지각이라도 할 것은 날은 차로 교문을 통과해 중앙현관까지 데려다주는 바람에 선생님 손에 귀를 잡혀 교무실에 간 적도 있었다.
대학에 들어와서는 친구들이랑 밤늦게 노는 시간이 많아졌다. 우리 집은 시내보다 조금 외진 곳에 있었기에 늦은 귀가가 허락되지 않았다. 막차 시간이 10시 30분. 막차 시간 전에 집에 들어와야 했다. 정작 10시부터 재밌어지는데 집에 갈 준비에 흥이 떨어지곤 했다. 궁리 끝에 저녁 9시 전에 집에 들어갔다가 모두가 잠든 자정 12시쯤 다시 집에서 나와서 친구들이랑 놀러 다녔다. 엄마 아빠를 속이는 게 걸렸지만, 친구들이랑 놀고 있으면 그런 생각은 사라졌다.
어느 금요일. 여느 때처럼 저녁을 다 먹고 방에 들어가서 자는 척을 하고 12시를 기다렸다. 12시여야만 했다. 마루에 있는 괘종시계가 열두 번의 종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오래된 마루였기 때문에 밟을 때마다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컸다. 그 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괘종시계의 종소리와 함께 열두 번 만에 마루를 밟고 지나가야 했다. 아무도 깨우지 않고 밖으로 나가는 방법이었다.
‘댕~ ’
커다란 괘종시계의 첫소리가 울렸다. 내 방문을 열고 한 발짝, 한 발짝 내디뎠다. 네 번째쯤 괘종시계가 울렸을 때 마루 한가운데 있었고 현관문을 향해 조심스럽게 한 발 더 내딛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안방 문이 벌컥 열리면서 아빠가 나왔다. 탕 탕 바닥을 울리는 걸음으로 내 앞에 바로 선 순간 번쩍하면서 내 얼굴이 반대로 돌아갔다. 왼쪽 뺨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입 안이 얼얼했다. 고개가 아프다고 느낀 그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건 아빠의 떨리는 손이었다. 그 손은 끊이지 않고 계속 떨었다.
“잘못했습니다. 아빠”
아빠에게 처음으로 맞았다. 잘못했다는 소리도 그때 처음 해봤다. 적막이 흐른 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빠는 안방 문을 닫고 들어갔고, 나도 뒤돌아 내 방으로 들어갔다. 친구들이 연락도 없이 약속 장소에 안 나오는 나를 걱정할까 봐, 그 친구들에게 내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잠들지 못하는 중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내 방문이 삐익거리면서 열렸다. 자는 척하느라 누구인지 안 보였다. 짐작은 갔다. 아빠는 침대 옆에 앉아 로션을 꺼내 내 뺨에 살살 발랐다. 하필 멘소래담 로션이다. 떨리는 손으로 조심조심 발랐다. 멘소래담 로션의 따가운 성분 때문에 눈물이 났다. 아빠도 로션 바르던 손으로 눈을 훔치더니 눈물을 흘렸다. 눈물이 그치지 않은 건 다 멘소래담 로션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