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이야기
한 손에는 꽃다발을 들고 다른 손은 아빠 손을 잡은 채 결혼식장 문 앞에 서 있었다. 아빠는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선다는 긴장감에 내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손에 든 꽃다발을 머리에 꽂았는지 대가리 꽃밭처럼 헤헤거리며 신부 입장을 기다렸다
“신부입장!”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결혼식장 입구 문이 열리면서 많은 하객 보였다. 버진로드 가운데에 내 남자친구이자 남편이 될 신랑이 서 있었다. 신랑도 긴장했는지 계속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바그너의 결혼행진곡을 배경으로 가운데 펼쳐진 버진로드를 아빠와 함께 걸었다. 수줍은 신부가 아닌 헤헤거리는 신부가 부끄러웠는지 아빠는 신랑에게 내 손을 넘긴 후 뒤도 보지 않고 혼주석으로 돌아갔다.
엄마얘기로는 아빠가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펑펑 울었다고 했다. 엄마는 속이 시원했다는데 아빠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놀렸다. 엄마는 아빠 전생이 애기아씨의 마당쇠였을 거라 했다. 애기아씨는 나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학창 시절, 집에 들어오면서 신발 벗을 때 사방팔방으로 날렸다. 그러면 아빠가 가지런히 현관에 놓아주었다. 뱀 허물 벗듯이 교복 재킷을 벗고 마루에 던져 놓고 그다음 셔츠, 치마를 차례대로 내 방까지 줄지어 벗어놓았다. 그걸 아빠는 차곡차곡 팔뚝에 걸치면서 내 방에 들어와 옷걸이에 걸어주었다. 내가 사복으로 갈아입고 부리나케 밖으로 나가면 아빠는 내 방 청소를 했다. 침대 밑에 놓은 쓰레기, 의자에 걸쳐진 옷들, 영화 포스터와 잡지들이 쌓인 책상을 치웠다.
청소라는 걸 해본 적이 없는 나는 결혼식 후 하루아침에 주부가 됐다. 집안일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생초보 주부. 여자라서 다 잘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 남편은 나의 살림 실력을 보고 속았다며 한탄했다. 결코 속인 적이 없다. 잘한다고 말한 적도 없었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설거지뿐이었다. 그것조차도 제대로 못 했지만, 난 최선을 다했다.
친정집에서 다 같이 밥 먹는 날, 남편은 갓 시집온 신부의 험담을 처가에 쏟아냈다. 청소, 빨래, 설거지, 요리까지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다며 한숨 쉬며 하소연했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아빠가 갑자기 숟가락을 테이블에 탕! 하고 크게 내리쳤다.
화를 잘 내지 않는 아빠여서 큰 숟가락 소리에 가슴이 철렁했다.
“김서방. 그럴 때는…. 그렇게 답이 없을 때는….”점점 작아지고 숨을 곳이 필요했다. 적막이 흐른 뒤 아빠의 의미심장한 각오가 들려왔다
“날 불러라, 내가 해주마!”
엄마는 저 양반이 마당쇠가 맞다며, 결혼한 자식 집에까지 가서 마당쇠 노릇을 하게 생겼다며 혀를 찼다. 남편은 밥 먹다 사레가 들어 온 밥상에 밥알을 뿜었다.
진짜로 아빠는 가끔 집에 와서 청소해 줬다. 세월이 지나 남편 잔소리와 아빠의 도움으로 주부 9단은 못 하지만 4단 정도 한다. 요리도 조금 할 줄 알고, 세탁기도 사용할 줄 안다. 가끔 세탁 후 바로 꺼내지 않아서 쉰내 나는 옷을 입히기도 했지만, 지금은 살림 실력이 많이 늘었다.
마당쇠의 애기아씨는 이제 쉰 살이 되었다. 아빠에게는 여러모로 모자란 딸이라 아직도 집에 와서 마당에 있는 나무들에 물도 주고, 정원에 있는 잡풀도 뽑고. 쓰레기도 버려준다. 아빠의 소일거리라 생각해 반갑게 맞으며 집 청소를 같이한다.
그러던 아빠가 갑자기 요즘 속이 안 좋다며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대장암이었다. 초기는 아니라고 했다. 의사는 수술을 권했다. 아빠는 87세의 나이를 생각하며 치료와 수술을 거부했다. 수술과 치료로 병원에서 지내는 아빠를 바라보는 것도 힘들겠지만 치료를 거부하고 지내고 있는 아빠를 보는 심정도 편하지 않다. 남편을 하늘로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아빠마저 시한부 선고다. 엄마는 아빠의 대장암이 용종이라며 의사가 말한 시한부 선고를 믿지 않았다. 의사가 돌팔이라 큰 용종을 암이라고 생각한 거라고 계속 우긴다. 그 의사가 진짜 돌팔이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