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 사람들은 이 동네에서 거의 한평생을 살고 계신 분들이다.
여느 시골처럼 장년층보다 노년층이, 할아버지보다 할머니들이 많이 계신 조용한 시골.
요즘엔 농촌유학온 젊은 도시엄마들과 아이들의 등교하는 모습이 반가울 정도로 계절의 변화말고는 주변 환경도, 사람도 그대로 고요하고 어쩔 땐 적막하기까지 하다.
오랜 된 경운기 소리만 멀찍이 들려오는 마을.
허리 굽고 다리에 힘도 없으신 몸으로 단정하게 작물을 키워놓은 논밭이 여기 사람 살고 있다고 말해주는 그런 마을.
엄마를 모시고 살겠다고 타지로 나간 젊고 예쁜(?) 막내딸인 내가 이 시골로 이사온다는 게 동네사람들에게 아주 큰 이벤트가 되어 주는 우리 마을.
제주에서 고향으로 워낙 자주 왕래했지만 그땐 보이지 않았다. 집안을 돌봐주느라 여유도 없었고 잠시 왔다가는 정도였기 때문에 오히려 고향은 좋았다.
그런데 교회 가는 쪽 도로는 할아버지가 뺑소니를 당해 하늘나라로 간 길.
앞 강가는 어린 우리 언니를 아랑곳하지 않고 데려간 강.
굴곡 깊은 커브가 있는 도로는 우리 형부가 아 소리도 못해보고 사고로 가버린 길.
하우스 사이에 있는 저 밭은 아빠가 쓰러졌던 우리 집 밭.
나는 출근하는 길에, 산책 나가는 길에, 커피 마시러 가는 길에 항상 마주하게 된다.
그 공간에 가면 시간이 거꾸로 흘러 그 일들이 있었던 과거로 돌아가기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릿속에서는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시간만 흐르고 공간은 그대로인 동네 곳곳이 나에게 아픔인 현장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게 고향에 사는 최대 단점이자 변수가 되었다.
올 초부터 동네 분들의 부고 소식을 벌써 몇 차례나 들었다.
요양원에서 결국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는 윗동네 할머니. 병원에서 강제 퇴원되어 아파하시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갑작스러운 소식에 가슴이 철렁, 어릴 때부터 뵈어왔던 분들이라 내내 안타까운 마음이다.
며칠 전 엄마친구 할머니가 놀러 오셨다. 평소 같지 않은 얼굴에 어디 아프시냐고, 병원 가셔야 하는 거 아니냐고 걱정이 될 정도였다. 혹시 새벽이라도 무슨 일이 있으시면 나한테 꼭 전화하시라고 단축번호까지 등록을 해둔 참이었다.
엄마와 엄마친구 할머니는
“이제 우리가 갈 데라고는 한 군데밖에 없잖아.”
“그러니까. 빨리 데려갔으면 좋겠네.”
하신다.
“안돼! 어딜 가! 더 오래오래 사셔야죠.”
하면 두 분이 말로는 '그런 말 말라'하시지만 알게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보인다.
"이 동네에서 이제 전해 들을 얘기도 누가 죽었다 소리밖에 더 있겠어?"
체념한 듯한 엄마의 말씀이 마음에 탁 하고 걸렸다.
산새가 나지막이 자리해서 다정하고 평화로운 이 동네, 산골짜기 내 고향이 너무 좋은데...
앞으로 마을의 슬픈 소식을 더 들어야 할까봐,
그래서 살다 보면 아픔이 자리한 장소가 지금보다 더 생기게 될까 봐 덜컥 겁이 났다.
엄마처럼, 우리 마을 어른들처럼
말씀은 안 하셔도 나보다 더 많은 아픔들이 곳곳에 자리해 있을 테지만
흐린 눈을 하고서 보여도 안 보이는 척
생각이 나도 바람결에 그저 스쳐 지나가게 하고서 나도 그렇게 살아가야겠지.
휴- 생각지 못하게 고향에 사는 것은 진입장벽이 참 높다.
(메인 사진들은 모두 제가 직접 찍은 사진이고요,
이 글의 사진은 우리마을과 이웃한 곳에 있는 [한반도 지형]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