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 인형부터 민들레까지, 아이의 세상은 넓어지고 있다
처음 만난 날, 이 아이는 두 돌도 채 되지 않았다.
걸음이 불안정해서 항상 양손을 꼭 잡아줘야 했고, 몸집이 작아 유아 의자에 발이 닿지 않아 바닥에 앉아 수업을 했다. 할 수 있는 말은 “가!”, “봐!”, “이거!” 딱 세 마디였다.
하지만 그 속엔 아이의 수많은 감정과 욕구, 세상과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 어머니의 문자 속에서 나는 이런 문장을 발견했다.
'숲에서 민들레꺾어서 엄마한테 줄거야'라고 했어요.
한참을 그 말을 바라봤다.
‘가!’, ‘봐!’, ‘이거!’만 하던 아이가 민들레를 꺾는 행동과, 그걸 엄마에게 주고 싶은 마음을, ‘문장’으로 표현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따뜻해지고, 먹먹해졌다.
말이 자라났다는 건, 그 안에 담긴 마음이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넓어지고,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생겼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아이는 토끼와 고양이를 무척 좋아했다.
그래서 나는 매 수업마다 토끼, 고양이 피규어를 준비했다. 엄마토끼, 아빠토끼, 아기토끼. 이 작은 인형들로 가족을 만들고, 상황을 만들고, 하루의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한 번은 실바니아 집 놀이를 하다가 “엄마 마트 다녀올게?” 하고 엄마토끼를 집 밖으로 데려가봤다. 아이가 조용히 그 장면을 바라봤다. 책상 위에 있던 아이패드 거치대 사이를 지나가며,
"마트를 가려면 터널을 지나가야해!"라고 했다.
“깜깜한 터널을 지나~마트 도착!”
그 날 이후, 아이는 그 놀이를 스스로 이어가기 시작했다.
또 하루는,
듀플로 블록을 들고 “띵동! 10층입니다!” 엘리베이터 놀이를 하며 “허! 이런! 너무 높잖아! 땅이 없어서 내릴 수가 없잖아?!”라며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보여주니,
과장된 리액션에 깔깔 웃던 아이는 어느새 “16층입니다~!” 하며 일상 속에서도 그 장면을 꺼내곤 했다.
상상력은 언어를 품고, 언어는 놀이를 기억하며 아이를 자라나게 했다.
그리고 우리는 놀이 속에서 자조기술도 함께했다.
짧은 2시간 반 동안, 조금씩이라도 시도해보려 애썼다. 변기를 무서워해서 변기와 친해지는 놀이부터, 기저귀를 입고 변기에 앉아보는 연습까지.
손톱깎이를 무서워해서 종이로 만든 손에 종이 손톱을 붙여 직접 잘라보는 놀이도 해봤다.
그리고 이제는,
그 작은 손으로 신발을 신어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바닥에 앉아 신발 찍찍이를 떼고 그 안에 발을 넣는 그 과정 안에도 아이의 자라난 마음과 자립의 씨앗이 숨어 있다.
두 손을 꼭 잡아줘야 겨우 걷던 아이는 이제 한 손만 잡고도 걸을 수 있고, 가끔은 손을 놓아도 스스로 잘 걸어간다.
비틀거리는 걸음일지라도,
그 안엔 이전보다 훨씬 더 단단해진 균형감과 자신감이 있다.
지금은 내가 개별 수업을 하고 있어 함께 하진 않지만, 이 아이가 토끼 가족 놀이 속에서 보여준 그 상상력처럼 자유롭고 풍성한 세계를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그 누구보다 오래, 깊이 바라봐주는
오늘의 ‘기록자’ 어머니가 곁에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