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듯 보이는 순간에도 자라고 있는 아이들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며, 내 속도를 내려놓는 법을 배웠다. 가르친다는 말보다, 함께 걷는다는 말이 더 가까운 일이다.
처음엔 답답했다. 아무 반응도 없는 얼굴, 내 말을 듣지 않는 몸짓, 대답 없는 눈빛.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 아이는 매일 같은 시간에 내 앞에 나타났다. 무언가를 하겠다는 말도, 눈빛도 없었지만 나는 그 자체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기다려 보기로 했다. 아이가 나를 볼 수 있을 때까지. 하루하루 나는 내 기대를 내려놓고, 아이의 속도에 나를 맞췄다.
같은 자리에 앉고, 같은 놀이를 반복하고, 아무 말 없이 교구를 앞에 놓고 기다리는 날이 계속됐다.
그리고 어느 날, 아무렇지 않게 지시를 따라주는 아이의 손끝을 보며 나는 알게 되었다.
이 모든 기다림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걸.
무수한 ‘안 됨’ 속에서 하나의 ‘됨’을 마주했을 때 그 시간은 결코 작지 않았다. 그 순간을 만나기 위해, 나는 앞으로도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치료사로서 일하며 나는 아이만이 아니라 부모님의 불안도 함께 마주하게 된다.
“또 울어요.”
“왜 이렇게 감각에만 집중할까요?”
“그냥 혼자만의 세계에 있는 것 같아요.”
나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나 자신에게도 되뇌인다.
‘그래도 괜찮다. 그 아이는 지금도 자라고 있다.’
한 아이가 있었다. 매일 아침 교실로 들어오자마자 놀이를 시작했다.
그리고 점프를 하거나, 벽을 두드리고,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아이는 늘 같은 시간에 왔다. 다시 내 앞에 서 있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나는 그 자리를 지켰고,
어느 날 그 아이가 나의 지시를 한 번에 따랐다.
무수한 '안 되는 시간' 끝에 오는 이 한 번의 '됨'은 생각보다 훨씬 묵직하고, 오래 남는다. 나는 아이가 아닌 어른이기에, 먼저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한 걸음씩, 같이 걷기로 했다. 멈춘 것처럼 보일지라도, 단단히 뿌리를 내리는 시간일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오늘, 나는 또 다른 아이를 떠올린다.
그 아이는 한 마디도 내지 않았다. 청자반응도 없고, 눈맞춤도 되지 않았다. 소리 없는 곳에서 쿵쿵 점프하고, 바닥을 두드리고, 부들부들 빗을 만지거나 말랑이를 움켜쥐며 감각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나는 그 아이와 눈을 마주칠 수 없었지만, 그 아이의 부모님은 매일 아이를 데리고 센터로 왔다.
여기를 다니기 위해 이사를 오셨던 부모님.
익숙했던 환경을 벗어나며 시작된 변화는 이 가족에게도 낯설고 두려운 일이었다. 엄마는 감각장난감을 너무 좋아하는 아이의 모습이 불편하다고 말하곤 했다.
남들 앞에서 눈에 띄는 행동을 하면 어쩌나, 늘 긴장한 얼굴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아이를 만나고 나서, 나는 또 다른 ‘기다림’을 배우게 되었다.
그 아이는 여느 아이들과 다르게, 세상과의 연결이 조금 더 느리게 이루어졌다.
그 아이는 매주 2회 엄마와 함께 센터로 왔다. 그 아이는 말을 하지 않았고, 눈을 마주치는 것도 힘들어 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 계속 있어주다 보면, 어느 순간 아이가 반응하는 작은 신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아이가 나를 조금씩 인식하고, 반응을 보였다.
말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아이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게 나에게는 중요한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그 아이의 속도에 맞춰 나도 함께 기다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