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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an 28. 2024

비뚤어진 동경, 미움도 사랑의 다른 말이었음을.

제2장. 무너져도 될 이유보다, 무너지면 안 될 이유가 더 많아서(2)

떠나간 이들을 위하여, 남겨진 이들에게

초안, 날 것 그대로의 문장들


오빠. 오빠를 잃고 나서 방황하고 있었을 때 마음 깊숙이 와닿아 저장해 놓은 문구가 있어. “형제여, 네가 이 우주 어디에 있던지 너는 언제나 나의 형제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 같이 출연했던 폴워커를 추모하며 빈디젤이 했던 말이야. 나는 여기에 몇 단어를 추가해서 오빠에게 해주고 싶어.

오빠, 오빠가 이 우주 어디에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지 오빠는 언제나 나의 동경이야.


비뚤어진 동경, 미움조차 사랑의 다른 말이었음을.


철저히 단절된 채, 대답이 없는 이들에게 끊임없이 묻던 시간들.


 오빠의 죽음 이후, 공무원 시험이 끝날 때까지는 가족을 제외한 그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 친척들, 가족과의 연락을 제외하면 다른 이들과 연락도 일절 안 했고, SNS조차 안 했다. 나는 하루하루 외줄을 타는 듯 위태로운데,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을 보기 힘들었다. 하나도 괜찮지 않았지만, 주위 사람들을 걱정시키기 싫어 내뱉어야 하는 ’ 괜찮아 ‘라는 말조차 내게는 버거웠다. 괜찮다고 할 힘은 없지만, 그렇다고 괜찮지 않다고 말할 용기조차 없었다. 그래서, 홀로 어둡고 깊은 동굴 속으로 숨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울렁거리는 감정을  토로할 상대는 스스로와 사진 속 오빠밖에 없었다. 나와 오빠, 두 사람 모두 내가 말한다고 해서 대답이 들려오는 상대들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놓을 곳이 없어서 그저, 저 대답 없는 상대들에게 혼자 계속해서 물어보고 말을 걸었다. 질문이 어느 순간 대답이 되기도 하고, 대답이 다시 질문이 되기도 했다. 이때만큼 간절하게 내 마음의 소리와 생각을 파고든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외부와는 철저하게 차단이 된 채로, 내 질문에 대답을 해줄 이는 오로지 나뿐이었기에.

입버릇처럼 말해왔던 내 취향은.


 공무원 시험 과목인 한국사를 공부할 때였다. 삼국시대를 공부하다가 문득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내가 고구려를 왜 좋아했더라’. 어렸을 때부터 입버릇처럼 ‘난 고구려가 제일 좋아. 신라는 비겁하고, 백제는 우유부단한데, 고구려는 용맹하잖아’라고 말하고 다니던 나였다. 한국사를 깊이 공부하면 할수록 내가 왜 고구려를 좋아했는지 의문이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고구려의 풍습들은 다소 야만적인 부분들이 많았고, 그들이 써 내려갔던 역사는 다소 무모한 부분들이 많았다. 용맹하고 의리 있었지만, 융통성이 없는 모습이었달까. 잔잔하고 차분한 걸 좋아하는 내게 ‘고구려’라는 나라는 기세가 너무 강렬했다. 차라리 삼국 중 굳이 한 나라를 고르자면 정적인 분위기의 백제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

‘왜 고구려였을까?’.  나는 원체 ‘선호’라는 게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 대상에 대한 선호가 거의 없달까. 대상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어떤 대상을 보면 ‘이런 특징이 있구나’, 하는 사실 파악에 그치곤 한다.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선호에 대한 판단을 하는 일은 드물었다. 주변에 관심에 별로 없기도 하고, 섣부른 선호에 대한 판단은 편견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해 왔기에. 유명한 ‘부먹찍먹’ 논쟁을 예로 들자면, 누군가 내게 ‘탕수육에 소스를 부어 먹는 게 좋아, 아니면 소스에 탕수육을 찍어 먹는 게 좋아?’라고 묻는다면 나는 ‘부어 먹으면 탕수육 튀김옷이 소스를 가득 머금어서 소스의 맛을 잘 느낄 수 있고, 찍어 먹으면 바삭한 튀김의 맛이 잘 살아. 굳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해?’라고 답하는 식이랄까. 그런 내가 왜 그리도 고구려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녔을까. 머릿속에 각인처럼 박혀있는 이 생각의 시작이 궁금했다. 생각이 하나둘, 꼬리를 물고 거슬러 올라갔다.


 그렇게 이어간 생각의 끝엔 ‘오빠’가 있었다. 집에 고조선부터 조선까지의 역사를 담은 여러 권의 만화책이 있었다. 유치원생 시절, ‘역사’에 대한 개념도 제대로 박히지 않았지만, 거기에 쓰인 이야기들이 재미있어서 꽤 여러 번 읽었다. 그 만화책을 읽던 내게, 오빠는 이렇게 말했다. ‘난 고구려가 제일 좋아. 신라는 야비하고 백제는 우유부단하지만, 고구려는 용맹하잖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고구려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닌 게.

 왜 나는 오빠가 고구려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나도 고구려가 제일 좋다고 말하고 다녔을까. 그것도 꽤 오랫동안.


오빠를 닮고 싶었다.

 왜 오빠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오빠의 말을 똑같이 읊고 다녔을까.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의 나는 ‘오빠 따라쟁이‘였다. 오빠가 책 읽는 걸 좋아하면 나도 따라 책을 읽으며 ‘나는 책 읽는 게 좋아!’라고 말하고 다녔고, 오빠가 게임을 좋아하면 나도 게임을 따라 했다. 오빠는 추리 소설을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그런 오빠를 보며 나도 셜록 홈즈 책을 읽어대며 나는 추리 소설이 좋다고 말하고 다녔다. 그런 나를 보며 가족들은 ‘어쩜 이렇게 오빠랑 똑같냐’고 말했고, 그 말을 들으면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다시금 내 취향을 곱씹어보면, 나는 게임 속 캐릭터를 키우는 것보다는 현실의 나를 키우는 것을 더 좋아했다. 긴장감 넘치는 추리소설보다는 잔잔하고 평온한 소설을 좋아했다. 나는 왜 그리도 오빠를 따라 했던 걸까. 어렸을 때의 나는 오빠를 무척이나 좋아하던 동생이었다. 여덟 살 차이 나는 오빠는 내게 언제나 멋진 어른이었다. 똑똑했고, 현명했다. 언제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어 보였고,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아는 어른이었다. 내 앞으로의 삶을 내가 그릴 수 있다면, 오빠 같은 삶을 살고 싶었다. 오빠를 닮고 싶었다. 오빠를 따라 하다 보면 나도 오빠처럼 멋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오빠는, 내 동경의 대상이었다.

 조금 이상한 결론이었다. 내가 오빠를 동경해 왔다니. 내가 중학생 때부터인가, 오빠랑은 거의 남보다 못한 사이로 지내왔었다. 집에 단둘만 하루 종일 있어도 한 두 마디 할까 말까였다. 십 분 이상 대화하면 결국 언성을 높이고 싸웠다. 속이 잔뜩 상한 채 방으로 들어가거나, 울거나. 둘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오빠는 내게 껄끄러운 존재였다. 내가 오빠에게 먼저 연락하거나 말을 거는 일도 거의 없었고, 오빠가 내게 연락하거나 말을 걸어와도 ‘아니, 이 인간이 왜’하며 껄끄러워하곤 했다.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불편했다. 오빠를 싫어한다고 말하고 다녔다. 난 오빠가 싫다고. 오빠랑 안 친하다고. 오빠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고. 나는 오빠를 싫어해왔는데, 내가 오빠를 동경해 왔다니. 동경과 미움은 서로 공존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비뚤어진 동경


 그런데 또 이상한 점은, 오빠를 싫어하던 그 시절에도 은연중 오빠가 좋아하는 걸 좋아하고, 오빠와 비슷하다는 소리를 들으면 좋아했다는 점이다. 오빠를 싫어했던 그 시절마저 나는 오빠를 닮고 싶어 했다. 꽤나 길게 이어진 생각 끝 결론은 ‘비뚤어진 동경’이었다. 오빠보다 여덟 살 어린 내게 오빠는 영웅 같은 존재였다. 어떤 상황에도 꿋꿋하게 자기의 신념을 지키던 사람이었다. 내게는 너무나 어려워 보이는 문제도 척척 해결하곤 했다. 내게 오빠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나, 내게는 내 동경의 대상과 유대감을 쌓을 시간이 부족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오빠는 고등학생이어서 매일 야자를 하느라 늦게 들어왔고, 내가 중학교 때는 오빠가 대학생이어서 집에 없었고,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는 취업 때문에 따로 살았다. 가족끼리 유대감이 짙고,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는 화목한 가정도 아니었기에 오빠랑은 데면데면할 수밖에 없었다. 성격 차이도 한몫했다. 오빠는 마음은 따뜻했지만, 그 따뜻한 마음을 담아내는 말이 날카로웠다. 틱틱거리는 태도는 덤이었다. 그리고 나는, 예나 지금이나 무딘 말도 마음 깊숙이 내리 꽂히는 방어력 제로의 인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오빠는 8살 어린 동생과 놀아주려고 혹은 친해지려고 친 장난 었지만, 내게는 날카로운 비수로 날아와 마음에 인정사정없이 생채기를 냈다. 오빠의 태도 속 숨겨진 속마음을 알아주기엔, 나는 타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어린아이 었다.

 그래서 난, 오빠의 장례식 때 오빠의 동기, 동료분들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오빠가 날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오빠의 ‘애정’이라는 범주에 나라는 사람 따윈 없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동경하는, 닮고 싶은 사람에게서 받는 미움은 성숙하지 못했던 내가 견디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왜 날 봐주지 않는 거야. 왜 날 인정해 주지 않는 거야. 왜 날 미워하는 거야. 왜,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 거야. 처음에는 순수한 동경을 향했던 마음이 한 번, 두 번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조금씩 비뚤어졌다. 처음에는 조준점이 1, 2도 벗어난 채 쏘아진 화살은 날아갈수록 더 큰 간극을 만들어 낸다. 오빠를 향해 아주 조금 비뚤어진 채 쏘아진 마음이, 세월이 지나며 커다란 간극을 만들어 냈다. 동경을 향해 쏘아진 화살은 어느새 과녁을 훌쩍 벗어나 ‘미움’이라는, 전혀 다른 과녁에 꽂혔다. 조준이 잘못된지도 모른 채, 원래 맞추려던 과녁이 미움이겠거니 살고 말았다.


스스로 만들어낸 상처에, 탓을 하고 말았다.


 어렸을 때부터 내게 오빠는 ‘멋있는 사람’이었다. 어떤 사람이 멋있는 사람인지에 대한 생각이 정립되기 전부터, 오빠는 내게 멋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삶을 살아가며 단어에 대한 나만의 정의가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멋있는’, ‘닮고 싶은’이라는 단어에 나만의 가치관도 새롭게 생겼다. 새롭게 생긴 가치관들과 오빠가 충돌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오빠가 내 기준에 멋있는 사람일 필요는 없었다. 그 ‘멋있는’이라는 기준도 내가 만들어 낸, 내 취향이기에 내 취향은 내 취향대로, 오빠는 오빠대로 인정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어렸던 내게, ‘멋있는’ 오빠의 ‘멋있지 않은’ 모습들은 배신처럼 느껴졌다. 물론 몇몇 얄궂은 행동을 하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미워할 일은 아니었다.


 유독 오빠가 내뱉는 말들에 더 크게 상처를 받았다. 워낙 공격력이 높았던 오빠와 방어력이 제로에 수렴하는 나의 성향 차이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오빠에게 뒤집어 씌웠던 ‘동경’이라는 프레임이었다. 오빠가 내 기준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을 하면 지나치게 미워 보였다. 오빠가 내뱉는 날카로운 말들이 유독 내게는 아팠다. 그때는, 그런 말과 행동을 하는 오빠가 변한 것이라고, 오빠가 잘못한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동경이라는 프레임 밖으로 벗어난 오빠의 모습이 날카롭게 나를 찌르고 있는 것뿐이었는데. 그 프레임 속에 오빠를 가둔 것도 나였고, 그 프레임 밖으로 튀어나온 모습에 받는 상처도 실은 내가 만들어낸 것이었는데. 오빠를 미워했다. 오빠를 보고 있는 내가 변한 것이라는, 그리고 내가 변했듯 오빠도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다. 내 입맛대로 오빠를 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아픈 마음의 원인이 안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 원인을 외부에서 찾으려고 지독히도 오빠 탓을 해왔다.  

미움도 사랑의 다른 말이었음을.


 오빠를 동경하던 어린 시절의 내 마음은, 오빠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기인했던 것이었다. 오빠가 좋아서, 오빠를 닮고 싶어서 오빠는 내 동경이 되었다. 오빠를 미워했던 이유도 동경에서 시작되었다. 내가 동경하던 사람이 내 기준에서 실망스러운 행동을 하니까 미웠다. 내가 동경하던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심에 미움이라는 감정이 피어났다.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미움이 있기에, 내 경험으로 미움에 대한 마음을 일반화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내 미움은 결국 사랑에서 피어난 마음이었다. 사랑하니까 동경했던 것이었고, 동경했기에 실망했고, 동경했기에 미워했다.   

  언제나, 오빠가 변했다고 미워했다. 하지만 변한 건 내 마음이었다. 순수한 동경이 인정받고 싶다는, 사랑받고 싶다는 욕심에 비뚤어졌다. 나를 인정해 주고, 사랑해 주던 오빠의 모습은 그대로였다. 사계절에 따라 각자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각자의 모습을 인정해줘야 했다. 그러나 그걸 바라보는 내 마음이 비뚤어졌던 걸 모르고, 오빠가 비뚤어졌다고 생각했다.  

오빠를 향한, 비뚤어져버린 내 마음이 이제 조금은 균형을 맞췄는데

그 균형 잡힌 마음으로 바라볼 오빠는 더 이상 내 옆에 없었다.

너무, 늦게 찾아버린 균형이었다.


하지만, 오빠. 난 후회만 하고 있지 않을 거야.

비뚤어진 채로 바라보기만 했던 오빠의 모습을 다시금 바라볼 거야.

이제야 조금 맞춰진 균형이 다시금 비뚤어지지 않도록

조금 더 성숙한 모습으로, 사랑의 의미를 간직한 채로

지나온 오빠의 모습들을 다시 바라볼 거야.

미워만 했던 오빠의 행동들 속 내가 놓쳤던 것들을 다시금 찾아갈 거야.

오빠. 이제는 한 뼘은 더 성숙한 어른이 되었어.

이젠 강요하지 않아. 내 멋대로 판단하지 않아.

오빠. 오빠가 어디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던지

오빠는 언제나 내 순수한 동경의 대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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