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일지> 속 찾은 열 번째 해방
나의 해방일지 2권 20p
큰길. 가로등도 별로 없는 어두운 길. 슬리퍼를 질질 끄는 소리. 미정은 혼자 되자 텅 빈 얼굴.
미정 왜 슬플까? … 왜 슬프지?
그렇게 걷다가 이유를 찾았는지, 원망의 시선으로 구씨네를 돌아보고는 다시 가며
미정 오다가 말아. 맨날 오다 말아.
그렇게 가는데, 그때 떠오르는 단상.
(INS. 현아: “난 갈망하다 디질 거야. 넌 절대 갈구하지 마.”)
걸아가다가 자기 암시를 걸 듯…
미정 나는 큰사람이다. 사랑을 갈구하지 않는다… 나는 큰사람이다. 사랑을 갈구하지 않는다…
나는 큰사람이다. 사랑을 갈구하지 않는다… 나는 큰사람이다. 사랑을 갈구하지 않는다…
갈구(渴求)하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이 단어를 검색하면 ‘간절히 바라며 구하다.’라는 뜻으로 나온다. 이걸 뜯어서 한자어로 보면 목마를 갈(渴)에 구할 구(求). 목마를 갈 자의 세 번째 뜻은 마르다, 고갈되다는 뜻이 있다. 목이 타게 무언가를 구하다로 볼 수도 있고, 고갈되어 무언가를 구하다로 볼 수도 있고. ‘사랑을 갈구하다.’ 이 문장을 읽어내리는데, 까끌까끌하게 마음에 걸렸다. 책장 귀퉁이를 작게 접고 다음 장, 다음 장, 계속해서 읽어 내려갔다. 그러나 ‘나는 큰사람이다. 사랑을 갈구하지 않는다.’ 이 문장이 까끌까끌하게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래서 몇 장을 더 넘기지 못한 채 다시 이 문장으로 돌아왔다.
사랑을 갈구한다는 것. 왜 이 문장이 이토록 마음에 남았을까.
먼저 ‘갈구하다’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며 구하는 것. 삶에서 간절히 바라고 구할 것이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큰 행운이자 축복이다. 그 바라는 것으로 인해 삶을 살아갈 원동력이 되니까 말이다. 무엇인가를 간절히 바라며 구한다는 것은 현재를 열심히 살아갈 원동력을 그리고 지금 보다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한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본인이 가고 싶은 대학교 이름을 큼지막하게 적어놓은 노트를 열심히 보고 있는 학생의 모습. 본인이 원하는 건강한 신체 상을 위하여 숨이 턱끝까지 차오른 채 운동하는 사람의 모습 등. 무언가를 갈구하며,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언제나 어여쁘다. 우리의 삶에 생명력을 더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무언가 갈구할 대상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갈구하다’에 ‘사랑’을 붙여놓았을 때, 왠지 모를 거부감이 들었다. 누군가의 사랑을 갈구하는 것. 사랑은 간절히 원한다고 구해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흔하디 흔하게 쓰이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문득 낯설게 느껴졌다. 단어가 낯설게 느껴질 때면 국어사전에 검색해 보는 편이라, ‘사랑’이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 검색해 봤다.
명사
1.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2.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3. 남을 이해하고 돕는 마음. 또는 그런 일.
4.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
사랑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곱씹고 있자니, 조금 더 확신이 들었다. 사랑을 갈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 갈구의 대상에 타인과 주고받는 ’ 관계‘가 들어가는 순간, 초라해지고 만다는 것. 내가 누군가를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것은 내 의지이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는 것은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이해하고 돕는 것 또한 내 의지였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도움을 받는 것은 내 의지가 아니었다. 지난날들을 돌이켜봤을 때, 누군가의 사랑을 바라는 것을 넘어 갈구할 때, 남는 것은 실망과 불안, 그리고 초라함이었다. 내가 바라는 형태와 농도의 사랑을 주지 않아서 실망스러웠고, 설령 그것을 받는다고 해도 이 사랑이 언제까지 유효할지 불안했으며, 그 감정을 끌어안고 있노라면 남는 건 초라함이었다. 이토록 사랑을 간절히 구해야만 하는 나는,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은 맞는 건가, 사랑에 대한 이 목마름이 채워질 수는 있는 것일까.
특히 사랑에 관해서는, 테이커가 되는 것보다는 기버가 되는 편이 나았다. 사랑에 관해서는, 정답이 없으니까. 쇼핑을 하는 것처럼 내 마음에 꼭 드는 것을 찾아 고르고 고르는 것이 무의미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고르고 고른다고 해서 내게 꼭 맞는 사랑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의 형태는 사람마다 제각 기였으니까.
대학생 시절, 커리 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매서운 칼바람이 몰아치는 어느 날, 두 손을 호호 불며 출근한 내게 사장님이 호빵을 만들어주겠다고 하셨다. 시판 호빵을 쪄주시는 것도 아니고, 만들어 주신다니. 손이 너무 많이 들 것 같아서 일단 거절을 했다. 호빵 반죽 만들고, 찌고, 너무 번거롭지 않으시겠냐고. 혹시 호빵이 드시고 싶으신 거면 아래 편의점에서 몇 개 사 올 테니까 나눠먹자고. 사장님은 씨익 웃으면서 잠시만 기다려보라고 하시며 주방으로 들어가셨고, 기다린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아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보얀 호빵이 나왔다. 맛은 있었지만 아무리 봐도 시판 호빵은 아니었기에, 사장님께 물었다. 반죽을 미리 만들어놓으신 거냐고. 호빵은 부풀어 올라야 하기 때문에 이스트를 넣고 기다리는 시간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비법은 ’난‘이었다. 커리에 찍어 먹는 납작한 모양의 빵. 사장님은 난 반죽을 보여주시면서, 여기에 앙금을 넣고 찌면 호빵이 되고 동글동글 말아서 찌면 꽃빵이 되고 얇게 밀어 화덕에 구우면 난이 된다고 하셨다. 각기 결과물은 달랐지만, 똑같은 반죽이었다.
우리의 사랑도 그러하지 않을까.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같을지라도, 그걸 표현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제각 기다. 모두가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같은 마음일지라도 그걸 어떤 어조로, 어떤 단어로, 어떤 행동으로 나타내느냐에 따라 그 사랑의 모양은 천차만별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갈구하다’ 앞에 사랑을 붙이는 게 의미 없어 보였다. 목이 타게 사랑을 구한다고 해서, 사랑이 고갈되어 사랑을 구한다고 해서 구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마음이 간절히 구한다고 해서, 노력한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닐뿐더러 타인이 보내는 사랑이 고갈되어 버린 내 사랑에 딱 맞는 형태가 될 수는 없었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타인의 사랑 따위는 필요 없어,라는 쇼펜하우어식 염세주의로 일갈하고 싶지는 않다. 분명 타인의 사랑으로 인해 우리는 삶의 온기를 느낄 수 있으며, 얼마간 채워지고, 강해질 수 있다. 타인과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크나큰 요인임에는 여지가 없다. 하지만 ‘갈구‘하지는 않아야 한다. 바라는 마음이 너무 깊어지다 보면 강요가 되고, 기대가 너무 부풀다 보면 터져버리기 마련이니까. 타인에게 받는 사랑은 우리를 채우는 보조수단으로 여기지, 주요 수단으로 여기지 않겠다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타인에게 받는 사랑으로는 온전히 채워질 수 없다. 그 누구도 내게 바라는 사랑에 딱 맞는 형태의 사랑을 줄 수 없기에.
타인과의 관계에서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이 생기면, 고요히 스스로를 돌아보겠다고 다짐한다. 사랑을 갈구한다는 건, 내 마음속 사랑을 담아두는 창고가 텅 비어버렸다는 신호이니까. 그 창고는 외부에서 구한다고 온전히 채워지는 곳이 아니었다. 타인은 내 창고의 모양새를 제대로 알 수 없으니까. 삼각형 안에 사각형을 채운다면 삼각형의 모서리 부분은 온전히 채워 넣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크고 작은 사각형을 열심히 채워 넣는다고 해도 삼각형을 온전하게 채우기는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이 불쑥 솟아오르면, 내 마음 창고를 마주해야겠다. 내 마음 창고는 어떻게 생겼는지, 어느 부분이 튀어나와 있고 들어가 있는지, 넓이는 얼마만큼이고 깊이는 얼마만큼인지. 시간이 조금은 걸리더라도, 내 창고에 알맞은 마음을 스스로 채워 넣겠다고 다짐한다. 사랑은 외부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채워지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스스로 온전히 채워넣을 수 있을 때, 타인에게 온전한 사랑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마음 창고를 타인에게서 받아야만 채울 수 있다면, 언제 고갈될지 몰라 전전긍긍하며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일조차 쉽지 않기 때문에. 내가 이만큼 주었으니까 내 창고가 이만큼 비었어. 그러니까 적어도 넌 이만큼은 주어야해.라는 계산적인 마음을 갖지 않고 누군가를 그저 사랑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대가를 바라지 않고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상대방 또한 그에 응하는 어여쁜 마음으로 응답할 거라고 믿는다. 재고 따지지 않고, 그저 사랑하는 마음을 주고 받는 행위가 전부일 때 ‘사랑’이라는 단어는 온전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사랑을 외부에서 구하지 않고, 스스로 채워넣겠다고 다짐한다.
<나의 해방일지> 속 찾은 열 번째 해방, 사랑에 대한 갈구로부터의 해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