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체른에서 오전을 보내고 점심 무렵 기차를 이용해 파리 리온 역(Gare de Lyon)으로 떠나는 일정이었다. 호텔에서 나오면 카펠 교니, 다시 한번 주변을 맴돌며 그곳 주인인듯한 백조들과 눈인사를 하고 역으로 향하는 여유를 부렸다. 역 근처에서 점심거리를 장만한 뒤 오른 기차는 사람들로 반도 채워지지 않았다. 쾌적하고 여유로웠다. 루체른처럼. 스위스는 좋았던 첫인상이 마지막까지 유지되어 여행이 끝난 뒤, 여운을 되새김질하기 위해 “어디가 제일 좋았어?”라는 주기적인 질문에 다섯 손가락을 채 접기 전에 나오는 공통된 ‘또 갈 곳’이 되었다.
점심때 떠난 기차는 퇴근 시간쯤 리온 역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여행한 곳은 도시라 해도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며 여유를 부릴만한 여행지였다. 파리 동쪽에 있는 리온 역에서 숙소가 있는 서남쪽 이시 레 물리노(Issy-les-Moulineaux)로 지하철을 타고 이동해야 하는 일정이 남아서였는지, 도착한 순간에 주는 안도감을 느끼지 못했다. 바쁘게 움직이는 파리지앵과 거미줄 같은 지하철 노선표를 번갈아 보고 있자니 시골 쥐가 파리 쥐를 만난 기분이었다.
이시 레 물리노에 숙소를 정한 이유는 아이 두 명까지 방 하나로 이용할 수 있고, 아이 조식까지 무료로 제공하는 가족 친화적인 노보텔이 있어서였다. 파리에 있는 노보텔 중 저렴하면서 우리가 가려는 관광지에 대한 접근성이 나쁘지 않은 곳을 골랐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더 내더라도 중심지에 있는 숙소를 이용해 파리의 밤거리도 마음 편히 거닐 것 같지만, 당시는 직업도 없이 퇴직금으로 여행하는 상황에서 5박이나 되는 파리 숙소비용을 조금이라도 아껴야 하는 압박이 있었다. 파리라는 명품도시에 있을 때 아내 생일도 맞이하니, 명품가방이라도 사달라 하면 거부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껴야만 했다.
‘파리 지하철이 아무리 복잡해도 서울만 하겠어?’란 심정으로 시골 쥐의 파리 적응기가 시작됐다. 구글 지도를 지금처럼 실시간으로 사용할 수 없었기에 노선표와 사전에 알아본 경로를 찾아 움직였다. 유럽 내 많은 역이 에스컬레이터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혼자 오르내리기 힘든 사람을 위한 시설이 있을 법한데 눈에 들어오진 않았다. 체력 단련한다는 심정으로 큰 짐 두 개를 양손에 쥐고 가끔 뒤돌아보며 앞서갔다.
갈아타기 위한 역 전에 지하철이 정차하더니 사람들이 모두 내렸다. 지하철이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 있던 우리에게 다가온 역무원은 이곳이 마지막 역이니 여기서 내리라 했다. 짧은 영어단어로 전한 내용을 겨우 알아들었다. 영어가 가능한 역무원을 찾아 물어봤다. 해당 구간이 공사 중이라 운행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시 몇 번의 갈아탐이 숙제로 남았다. 무거운 짐은 아직 체력을 단련시키지 못했고, 오르고 내릴수록 더 무거워졌다. 예상보다 두 배가 넘는 시간 동안 아름다운 파리의 야경을 하나도 보지 못한 채, 파리의 지하세계를 돌고 돌아 겨우 숙소에 도착했다.
건조하게 서 있는 호텔과 주변 건물들이 한적하고 자연에 둘러싸여 있던 스위스를 그립게 했다. 시골 쥐 심정이 이랬겠구나. 그래도 서울로 출퇴근한 십여 년의 경험이 있으니 쉽게 적응하겠지. 다음날 일정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모티브가 된 몽쉘 미셸에 가는 것이었다. 아침 일곱 시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슬프게도, 도시의 소음이 백색 소음으로 되는 순간은 도시가 만든 바쁨에 순응했을 때인 것 같다. 지친 몸을 침대에 눕히고 새벽 다섯 시로 알람을 맞춰 놓았다. 이런 도시의 빡빡함까지 조기교육 시킬 필요는 없었는데. 백색 소음에 먼저 곯아떨어진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