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개의 에피소드에는 언제 여행했는지 알 수 있는 충분한 정보가 들어있다. 다들 아셨으리라 생각된다. 십이 년 전 여행이다. 어떻게 세월의 흐름을 극복하고 일정에 맞춰 써나가고 있는지 궁금하신 분? 이번 글에서 해소되리라 믿는다. 이 글들은 머릿속 깊숙이 박혀있는 흐릿한 기억의 조각을 예리하고 긴 핀셋으로 하나둘 꺼내 펼쳐 놓고 이리저리 짜깁기한 결과다.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뿐이지’란 진리를 아내가 진저리 칠 정도로 실천한 이가 나였다. “그만 찍고 가자”라는 말이 아내에게서 자주 나올수록, 그날의 기억은 또렷하게 나왔다. 그리고 여행계획을 하루에 한 장씩 정리한 엑셀 파일이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면 별것이 다 그리워진다. 책상 앞에 앉아 파일 작업을 하는 순간, 재택근무하는 기분이었다. 기억의 핀셋이 사진과 엑셀 파일이다.
아무리 사진을 찾아봐도 낮에 찍은 몽생미셸 다음은 다음날 낮에 찍은 라데팡스 사진이었다. ‘왜 저녁 사진은 없는 거지? 새벽에 이동한 기억은 있는데 오후는?’ 엑셀 파일을 찾아봤다. 숙소에서 몽생미셸까지 5시간이 걸렸고 그곳에서 5시간 정도 머물다 다시 5시간 걸려 돌아오는 555 일정이었다. 구글 지도를 열고 경로를 확인했다 (구글과 구글 지도는 핀셋으로 꺼낸 기억을 적절하게 맞추는데 적절히 도와준다). 내가 간 루트는 아니었지만 지금 검색해도 비슷한 시간이 걸린다. 직선거리를 찍어보니 대략 300km. 서울, 부산 거리에 맞먹는다. 오롯이 몽생미셸 하나를 보기 위해, 이 먼 거리를 당일치기로 다녀온 것이다.
뭐에 홀려 이런 결정을 하게 된 거지? 지금도 남아있는 또렷한 기억은 몽생미셸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모티브였다는 것. 아이들을 위한 결정이었나? 대학생이 돼버린 아이들에게 물었다 (팩트체크를 위해 가족에게 묻기도 한다). 두 아이 모두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인상적으로 보긴 했지만, 몽생미셸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고 한다. 시큰둥한 걸 보면 그날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있지는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내가 가고 싶은 곳이었을까?
넷플릭스에 있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빠르게 돌려 봤다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영화를 다시 보기도 한다. <로마의 휴일>, <사운드 오브 뮤직>이 그랬고 <냉정과 열정사이>가 그랬다). 모티브가 될 법은 하다고 느껴진다. 하울의 성 군데군데 붙어 있는 유럽 시골집 모양은 몽생미셸 밑을 장식하는 상점 가득한 동네와 모양과 배치가 흡사하다 (아이들이 더 엄격한 잣대를 가진 듯). 이걸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건가? 그런데 익숙한 멜로디가 들렸다. 정속도로 바꾸고 화면을 돌려가며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장면을 찾았다. 애잔하게 흐르는 왈츠가 장면 곳곳에 변주되어 나온다. <냉정과 열정사이>처럼 영화 줄거리보다 인상 깊게 남아있는 영화 음악. 이 노래였구나. 한동안 플레이리스트에 있었던.
낮의 몽생미셸은 애잔함, 아련함을 느끼기엔 뛰어난 상상력이 필요했다. 수도원으로 올라가는 골목 한편에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엿장수의 리드미컬한 장단과 꼭 같은 소리와 분위기가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유명한 오믈렛 식당에서 금속 그릇에 있는 달걀을 푸는 소리였다. 이런 식으로 홍보하는 군. 경쾌함에 이끌려 안으로 들어왔다. 맛보다는 경험에 충실했던 한 끼. 이어 올라간 골목골목은 놀이동산 세트장처럼 아기자기하고 앙증맞았다. 올라간 수도원은 바닷물이 빠진 주변 풍경처럼 검소했다.
이곳으로 이끈 것에는 애잔한 음악과 잘 어울릴 법한 몽생미셸의 야경 사진도 있었다. 균형감 있는 몽생미셸을 은은한 불빛으로 밝히고 그 모습을 다시 바다에 비춰 몽환적으로 만드는 풍경을 카메라로 담고 싶었다. 아쉽게도 당일치기로는 어떻게 계획해도 야경을 볼 수 없었지만, 이곳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음악 한 곡과 사진 한 장에 이끌려 무모한 시도를 한, 십이 년 전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