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페가 맛있는곳도있지만, 그곳에 가야 먹을 수 있는, 메뉴도 한두 개밖에 없는 찐 맛집이 있다. 내게 로마, 파리, 런던은 뷔페와 같았다. 바르셀로나, 그리스, 노르웨이는 가우디, 산토리니 그리고 피오르(fjord)라는 단품을 지닌 찐 맛집이었다. 뷔페는 어딘가에서 먹어본 기억이 그 맛을 비교하게 되며, 무엇을 먹을지 몰라 이것저것 담으면서 결국 과식하게 되는 상황이 만족감을 떨어뜨린다. 단품 맛집은 메뉴선택의 고민이 필요 없고 다른 곳에서 느끼지 못한 그 집만의 손맛을 그저 음식 자체로 즐기면 된다. 찐 맛집을 고르며 설레는 이유다.
"피오르 피오르" 단어를 발음할 때 느껴지는 아름다움과 신비함이 있었다. 그리고 접하게 된 사진은 어감이 주던 느낌과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경이롭게 느껴진 사진의 대부분은 좀 더 긴 시간을 두고 여행해야 닿을 수 있는 곳에서 찍은 것이었고, 우리는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 피오르에 발만 살짝 담그고 왔다고 할 수밖에 없는 송네 피오르를 선택했다.
송네 피오르는 오슬로에서 떠나는 것과 베르겐에서 떠나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다음 일정인 런던과 가까운 베르겐을 선택했다. 베르겐역에서 숙소가 있는 항구로 걸어가는 길에 나타난 공원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단정히 다듬어진 잔디 위에 누워 늦은 오후의 따사로운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흡사 태양광 패널이 낮에 에너지를 축적하듯. 한여름의 태양은 자정이 넘도록 이들을 맴돌았을 것이다.
다음날, 아침 8시에 출발하는 송네 피오르 코스는 최소 일정을 선택하면 같은 날 저녁 6시에 도착했다. 하지만 우리는 중간에 잠시 머무는 발레스트란(Balestrand)에서 하룻밤을 지내기로 했다. 피오르를 예약하는 사이트에서 출발지와 도착지, 중간에 머물 곳과 숙소를 손쉽게 선택할 수 있었다. 여행지 안에서 하루를 보내며 천천히 시간을 보낸다는 것의 의미를 알았기에 멀리 가기보다 깊이 들어가는 선택을 한 거다.
발레스트란에 도착한 배는 이곳에 머물렀던 사람을 태우고 다음 여행지로 떠났다. 남겨진 사람은 스무 명을 넘지 않았다. 숙소로 가는 버스가 자주 있지 않았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버스를 기다리는 이곳이 더 멋진 풍경을 보여줄지 모를 거라 생각했다. 배로 가면 5분도 안 걸릴 거리를 버스는 U자형으로 길게 늘어진 해안도로를 20분 정도 돌아 우리를 내려줬다. 버스 오른편은 송네 피오르의 진녹색 바닷물로 채워져 있었다.
호미곶처럼 톡 튀어나온 곳에 있는 숙소는 주변에 이웃한 집을 제외하면 인공적인 것이 없었다. 저녁 식사할 식당도 숙소에 있었다.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호젓한 산책뿐이었다. 쿠키와 음료수를 카메라 가방에 넣고 천천히 주변을 걸었다. 갈림길이 없었기에 지도는 필요 없었다. 담 없는 이웃집 잔디밭 정원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저 이웃집이 여행지가 되는 곳이었다.
성인 둘이 팔로 감쌀 굵기의 나무에 매달려 있는 그네를 탔다. 이곳에서 탄 그네는 어느 놀이동산의 자극적인 놀이기구보다 아이들 마음속 깊이 자리 잡혀 있을 것이다. 허기가 느껴질 즘 숙소로 돌아와 맛본 연어 스테이크도 지금껏 서로 공감하는 찐 맛집의 요리다. 그 스테이크를 먹기 위해 다시 가고 싶을 정도로. 아마 시골 친적집에 놀려와얻어먹는 시골밥상의 감성이 연어 위에 살짝 뿌려져 있었나 보다.
지난여름 노르웨이를 여행한 10년 차 여행작가인 B의 경우 로포텐이 인생 여행지라 했다. 수많은 곳을 다녀 본 그도 로포텐과 피오르가 주는 매력에서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런 멋진 장소를 아직 남겨 두고 있다는 것이, 그 깊숙한 곳에서 단지 하룻밤 보낸 것만으로도 충만감을 느꼈다는 것이 언젠가 다시 노르웨이로 향하게 할 것 같다.
다음 연재는 11월 17일에 올릴 예정입니다. 잠시 여행하며 충전할 시간을 가질 거예요. 이번 여행이 다른 연재로 이어질지는 모르겠네요. 아무튼 계속 경험하며 안에 쌓이다 보면 밖으로 나올 것들이 생기겠죠. 늦가을에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