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히스로 공항에 도착했을 때 ‘우리 올림픽 해요’라고 들어오는 이들에게 일일이 말해 주는 장식이 한가득 반겼다. 벽면 광고판부터 차단막까지. 공항이 아니라 올림픽 스타디움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었다. 많은 사람이 이 시기에 런던에 온다면 올림픽을 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폐막식을 하는 날 들어왔고 그것도 런던이 아닌 윈저로 향했다. 올림픽 기간에 두 배 가까이 오른 호텔비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단순히 올림픽 바가지를 피하기 위한 일정은 아니었다. 어떤 나무로 자랄지 모르는 이제 갓 싹튼 초등학생 학부모로서 옥스퍼드, 하버드, 버클리 근처를 여행하며 이 대학교들을 들르지 않을 무심함이 없었다. 윈저와 옥스퍼드는 한 코스로 방문하기 좋았다. 엘리자베스 2세가 사랑한 윈저성과 세계 대학 순위에서 매년 한 손안에 드는 옥스퍼드대학을 볼 수 있는 적절한 선택이었다.
사진 촬영이 금지된 윈저성 내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엘리자베스 2세가 틈틈이 방문하는 곳이기에 보안을 위해서 그랬을 것이다. 외부는 깨끗하고 탄탄했다. 아기자기한 것보단 이곳이 마지막 보루인 듯한 성 역할에 충실한 성처럼. 좀처럼 사진에 담을 풍경이 없어 아쉬워하는 순간 반가운 모습이 보였다. 흑곰 털모자를 쓰고 눈도 껌뻑하지 않고 초소를 지킨다는 근위병. 내 어깨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근위병의 어깨를 내려 보며 쓱 가슴을 폈다. 그는 눈을 껌뻑였다.
생각보다 일찍 끝나버린 윈저성을 뒤로하고 옥스퍼드로 향했다. 아이는 해리포터의 마법 학교에서 마법을 배우는 걸 상상했을 것이고, 부모는 옥스퍼드에서 공부하는 미래의 아이를 상상했겠지.
특별한 안내가 없어도 이곳이 해리포터에 나온 대연회장이었단 건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벽면에 붙어있는 그림은 크라이스트 처치 출신의 유명 인사로 채워졌다. 그들의 눈동자는 내 동선을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고풍스러운 분위기는 영화보다 오히려 더 영화 같은 공간이 됐다. 실제 식당으로 사용되는 이곳은 아이들에게 마법사의 꿈을 잠시 심어 줬을 것이다. 다음은 부모의 꿈을 위해 밖으로 나갔다.
여름 방학 기간인 옥스퍼드는 생각보다 한산했다. 울타리 안에 학교가 들어 있는 우리와 다르게 여러 대학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옥스퍼드대학은 도시 전체가 학교였고 이곳을 지나다니는 젊은이는 모두 학생처럼 보였다. 아주 똑똑한. 잠시 쭈그리고 앉아 땅을 바라보던 아들은 뭔가 발견한 듯 내게 소리쳤다. “아빠, 여기는 개미도 똑똑해 보여. 움직이는 게 달라.”
이런 분위기는 다른 도시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이탈리아에서는 거리에 나와 있는 모조품 동상도 역사적 유물처럼 보였고, 스위스에서는 투명한 유리잔에 담긴 물은 알프스에서 흘러내린 에비앙 광천수처럼 느껴졌다. 사람이 분위기를 만드는 것인지, 분위기에 사람이 변하는 것인지. 아마 시작은 사람부터였지 않을까 싶다. 일단 분위기가 형성되면 그 분위기에 맞게 사람이 하나둘 변해갔겠지. 이곳 분위기에 어울리게 책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앞길을 안내할 우리가 지닌 유일한 책, 여 행 안 내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