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의 마지막 유럽 도시인 런던에 들어왔을 때 이미 늦은 저녁이었다. 호텔에 들어선 순간, 이곳까지 무탈하게 잘 왔다는 걸 환영하듯 시끌벅적한 분위기였다. 언뜻 영국 국기와 그리스 국기가 펄럭이는 게 보였다. 올림픽과 관련된 행사인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보고 있는 우리에게 환한 얼굴로 양국 국기와 영국 국기 문양의 플라스틱으로 만든 모자를 나눠줬다.
“영국 신랑과 우루과이 신부의 결혼식 파티야. 너도 같이 합류할래?”
국기와 모자를 나눠주는 이가 궁금해하는 내게 알려줬다. '아, 저게 우루과이 국기였구나.' 인사치레로 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이 없었다면 못 이기는 척 합류해 분위기를 즐기고 싶었다. 흥겨운 음악 속에서 캐리어를 가리키며 지금 체크인해서 올라가야 한다는 손짓을 했다.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숙소에 들어온 아이들은 나보다 더 파티에 참여하고 싶었는지, 선물 받은 모자를 쓰고 창밖에서 어렴풋이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에 맞춰 연신 국기를 흔들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짐도 풀지 않은 채, 아이들이 춤추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파티에 참석하지 못한 아쉬움이 사라졌다. 런던의 첫인상이 안개 낀 우울한 도시에서 즐거운 파티의 도시로 바뀌고 있었다.
런던 도심 곳곳은 아직 '올림픽 파티'의 여운이 남아있었다. 아직 떼어내지 않은 광고물부터 거리에 만들어진 마스코트 웬록 그리고 타워브리지 위에 붙어있는 오륜기까지. 타워브리지의 다리가 올라가는 것을 본 사람에게 행운이 온다는 얘기가 있다. 사실 짧은 기간 머무는 여행자에게 우연히 육중한 다리가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라는 기분을 준다. 거기에 오륜기까지 올라가는 걸 본 우린 얼마나 큰 행운이 찾아올까. 뭐, 이번 여행 자체가 행운이니깐.
런던의 파티 같은 분위기는 <맘마미아> 공연을 본 후에 좀 더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 한국에서 공연과 영화도 봤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싼 좌석으로 예약했다. 오리지널은 얼마나 다를까 하는 호기심 정도만 있었다. 한국 공연장에 비해 소박해 보이는 Prince of Wales 극장은 위쪽에 앉아있던 우리에게 전해주는 감동을 줄이지 않았다. 항아리 같은 구조로 된 내부가 소리를 위쪽까지 잘 전달해서 그랬을 수도 있고, 전날 본 결혼식 피로연이 생각나서 그랬을 수도 있었다. 어쩌면 8년간 노래했던 이곳에서 공연할 수 있는 시간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았기에 배우의 감성이 충만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날 산 공연 CD는 미국에서 렌트한 자동차로 들어가 여행의 배경음악이 되었다. 특히 미국 서부 사막을 달릴 때 만난 작은 토네이도에서 느낀 큰 두려움을 떨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맘마미아 노래가 나올 때 자신만의 가사로 따라 부르며 춤추는 아이들의 즐거운 모습을 보면, 부정적인 생각을 전혀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가 가족 모두에게 생일 파티 같았던 유럽 여행을 기억 속에 담은 채, 신혼 초 기억이 남아있는 토론토로 향했다.
정신없을 연말이 지나간 후에 <우리 집은 지구 N. Ameria>로 인사드릴게요. 미리메리 크리스마스 그리고 해피뉴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