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필사를 하며 쓰는 윤작 에세이
늦은 저녁을 먹어야겠다.
고단한 하루를 끝내고, 지친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왔는데 밥통이 싸늘하다.
허탈하게 쌀을 씻어 밥솥에 넣고 기다린다.
생각해 보니 오늘 곡기를 입에 넣지 않았다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다,
밥에서 김이 나는 소리를 들었다.
치익- 하고 올라오는 하얀 김을 보며
허기가 밀려온다.
흰 공기에 밥을 퍼
단출한 반찬을 꺼내 숟가락을 든다.
숟가락을 들다, 밥에서 피어오르는
김을 바라본다.
무엇인가 지나가 버렸구나.
지나가는 것을 붙잡는 것이
미련한 행위임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붙잡고 싶어도 붙잡지 못하는
용기 없는 내가 되었다.
하지만,
지나가 버리고 난 뒤에 오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지혜 씩이나 아닌,
경험이 쌓인 내가 되었다.
이 정도면 한심하지 않고
그럭저럭 괜찮지 않냐 자조한다.
사실, 한심해도 어쩔 수 없지.
아니 한심하긴 하지.
지나가 버리는 것들 앞에서
무력하게 바라만 보고 있다.
그럼에도 배가 고프다.
이 동물적인 본능이 징그러우면서도
아직 살아있음을 느낀다.
밥을 먹어야지. 밥을.
오늘은 누군가 내게 "괜찮다"라고
말해 주었으면 좋겠다.
말해 주는 이가 없어 내가 말한다.
요즘은 치호에게 "괜찮아"라고 말해준다.
아이가 종종 거리며 넘어질 때마다,
안아 일으켜 주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괜찮아, 툭툭 털고 일어나. 할 수 있지?"
라 말한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는 길을 걷다 넘어져도,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도 일어서며 말한다.
"괜찮아"
저녁을 먹는 내 주위를 뛰어다니던 치호가
일어서며 말한다.
"괜찮아"
아이가 말하는 3음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다.
밥을 입에 욱여넣고 말했다.
"괜찮아? 고마워-"
괜찮아. 정말 괜찮아. 괜찮을 거야.
지나갈 테니.
밥을, 먹어야겠다.
2018.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