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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지난 유서들은 이제 숨어버렸지만

by 이윤우

죽고 싶다고 울던 몇 해 전께는 매일 새로운 유서를 쓰곤 했었다. 생각나는 이름들을 매일 적고, 죽는 이유를 적고, 미안함도 적고 .. 줄줄 문장이 쓰일수록 내게 깃든 건 죽음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나를 죽게 만드는 것들을 향한 원망이었다. 나도 너무 살고 싶어, 나도 너무 앓고 싶지 않고, 매일 걷는 물 길 속을 벗어나고 싶고, 단 한 번도 행복해 본 적 없어 돌아갈 곳 없지만 내가 가야 할 곳은 세상 저편은 아니었으면 좋겠어.... 억울함은 나를 줄곧 죄인으로 만들었다. 어느 하나 잘못한 것 없지만, 내게는 사는 일 만으로 폐허가 떠밀려 온 때가 있었다. 소주 몇 병에 수십 알 삼키고, 맨몸으로 강남 바닥에서 눈을 뜬 날에는 생을 견인할 힘도 바닥이 났다는 것을 알아차리곤 - 내일이 오면, 내일 다시 죽을 수 있는 사람처럼 굴었다. 같은 땅 하나에 내 구호 요청을 듣는 이는 없었다. 기함이 들끓었던 건, 다들 우울하다는 위로와 뻔한 부연들. 아니, 만약 당신이 나와 같았다면, 당신은 일찌감치 - 하며 말을 아낀다. 관성에 의해 산다던 언니의 말이나 죽는 일은 참아보겠다는 나의 다짐이나 모두 무용의 언어로 각자의 세상 뒤편께 숨어 버렸지만, 내가 살던 방식으로 지옥 위를 구르는 누군가가 또 있음을 명백히 알고 있다. 그 어떤 사람도 죄목 없이 죄인 되지 않기를, 사랑하는 사람들 곁을 내내 자리하기를. 어느 누구도 태어난 일 뒤에 태어나지 말아야 함을 결부하지 말기를. 태어난 일은 죄가 아님을 들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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