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만든 책이 되어 그의 책장에 선물처럼 있기를.
그는 안개 낀 숲을 좋아한다. 울창하게 자란 나무들 사이로 안개가 자욱하고,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호수가 나올 것 같은 그런 숲. 그는 이 풍경 속에 살고 싶다는 얘기를 더러 했고, 나는 그 곁에서 함께 사는 상상을 했다. 숲의 찬 공기가 피부에 닿고 모르는 벌레와 새가 뒤섞여 울고, 죽은 소나무 잎이 바닥 가득이고, 우리는 조금 걷다가 호숫가에 앉아 쉬는 상상들. 당신이 벌레를 싫어하기 때문에 그곳에서는 오래 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던 찰나에 그도 그렇게 말한다. 벌레가 많아서 오래 살지는 못할 거라고. 그는 이런 식으로 그가 살고 싶은 풍경, 그가 죽고 싶은 풍경에 관해 자주 말하는데 나는 그에게 내가 살고 싶은 풍경에 관해 단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아직 내가 살고 싶은 풍경은 없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촌에 기와집을 짓고 사는 얘기,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는 얘기, 텃밭을 가꾸는 얘기, 경치 좋은 고층 아파트에 사는 얘기들 가운데 내가 먼저 살자고 한 풍경은 하나도 없었는데 그건 그냥 그만 있으면 될 것 같아서였다. 나는 책을 가득 넣을 수 있는 웬만한 서재와 오래 앉아도 허리가 아프지 않은 괜찮은 의자, 좋은 나무로 만든 책상, 사계절 쓸 수 있는 이불만 있으면 되고 나머지는 그만 있으면 괜찮을 것 같다. 텃밭을 가꾸는 것도, 음식을 해 먹는 것도, 물수제비를 던지는 것도 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심심한 것들이고 오로지 그만 있어도 된다.
그는 내게서 오래된 책 냄새가 난다고 한다. 그게 무슨 냄새냐 물으면 그런 냄새가 있다고만 한다. 할아버지 냄새, 오래된 책 냄새. 나는 그가 얘기한 두 마디를 입속에 넣고 우물거리는데 아무리 우물거려도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는 햇빛에 바짝 말린 옷 냄새가 난다. 실제로 그의 엄마가 햇빛에 옷을 바짝 말려 주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가 그런 사람이라서 그런 걸 수도 있다. 사람마다 다 다른 냄새가 나는 것도 사람의 성격이 다 달라서가 아닐까. 그는 실제로 살균된 사람 같을 때가 있다. 때 묻지 않았다는 말보다 완전 무해 하단 말이 더 어울리는 사람. 사람이 상처받을 만한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하는 버릇, 누군가 다치는 일을 막기 위해 눈빛, 표정, 손동작까지 계산해 내는 버릇, 나는 그의 따뜻한 버릇도 좋지만, 그냥 그가 먹는 게, 입는 게, 웃는 게, 걷는 게 좋은 걸지도 모른다. 그가 꿈꾸는 모든 풍경 속에 낄 수 있기를, 잘 만든 책처럼 그의 책장 속에 선물처럼 있기를. 나는 그의 다정을 이해할 때마다 울었고, 그의 다정이 멀리 가기를 바라서 글을 쓰는 걸지도 모른다. 오로지 다정한 사랑도 있다고 말하고 싶어서 말이다. 의심이 만들어낸 질투도, 이기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도 버린 오로지 다정한 사랑. 내내 그와 함께이고 싶다. 그의 다정을 소문내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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