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내가 몰랐던 내 모습을 매일 알게 되었고, 내가 잘하는 부분과 잘 못하는 부분 간의 경계가 뚜렷이 드러나게 된 것 또한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몰입'하지 못하는 나를 거의 매일 만나는 건 상상 이상으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분명 이곳에서 2년을 보냈는데,
아직까지도 뭐랄까..
나의 공간이 아닌 것 같은 낯섦이 든달까?
누군가에게는 썩 괜찮다고 느꼈을 하루가,
내게는 목에 걸린 생선 가시 마냥 불편하게 느껴졌다. (오늘도 그랬다.)
또 하나 굿뉴스는(물론 전혀 아니다) 이런 느낌이 거진 1년째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답답할 때, 화날 때, 신이 날 때,
기분이 뭔가 꿀꿀할 때 헬스를 하고 싶어 진다.
뭐 이런 헬짱이 있나 싶겠지만,
헬스장에서 움직임, 호흡, 근육 하나하나에 몰입할 때만큼은 온전히 자유로운 나를 찾은 느낌이랄까.
사람 때문에 단단히 열이 받은 날에는
'오늘 진짜 헬스 조져버리겠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헬스장을 찾고는 한다.
무엇보다 땀을 뻘뻘 흘리고 나면 좀 더 괜찮은 인성의 나를 만날 수 있게 된다.
운동 시간을 딱 정해놓지는 않는 타입이다.
근무 시간이나 컨디션에 따라 아침 운동을 하는 시즌이 있고, 저녁 운동을 하는 시즌이 있다. 대체로 저녁 운동을 하는 편이기는 한데,
시간이 별로 안 날 땐 점심시간을 활용하기도 한다. 난 대체로 평일에 약속이 거의 없고(올해는 한 달에 한두 번 될까 말까),
여가시간에 뭐 하지?라는 질문엔 대체로 헬스장에서의 운동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운동을 하고 난 후의 개운함과 뿌듯함이 좋은 것도 있지만,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지고 싶어 헬스장에 간다.
최근에 집 근처 독립서점에서 강민선 작가님의 '끈기의 말들'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꾸준함과 끈기가 지난 몇 년간 내 최대 관심사인지라 자연스레 눈길이 가더라.
이 루틴이 나를 살리고 있었다는 걸 더욱 절실히 깨달은 건 어느 날 다른 일정 때문에 다리를 건너지 못하게 되었을 때였다. (생략) 그걸 못하게 되자 지금껏 그 단순한 일이 내게 무엇을 주었는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약속이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나를 지켜 주겠다는 약속. -167p
강민선 작가님은 크든 작든 고민거리가 있으면 한강다리를 건넜다고 한다.
헬스가 나에게는 작가님의 '한강다리 걷기'와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일상의 고통 속에서 나를 찾게 해주는 일종의 구원. 내 영혼만큼 소중한 사람을 잃었을 때도,
직장에 어떻게든 나를 적응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지금도,
헬스는 내 몸을 부축해 걸어가게 하는 무언가다. 주변에서 종종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꾸준히 운동할 수 있냐고 묻곤 한다.
강민선 작가님의 말을 빌려 답해주고 싶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나를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헬스장으로 향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