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글쎄요. 예전부터 끄적이기를 좋아한 것 같긴 해요. 있을 법한 일이지만 실제로는 없는 일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그려보고 글로 적어본 것 같아요. 그런 글의 조각을 모아다가 다시 소재를 삼아서 풀기 시작한 게 최근이고. 저의 경험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경험이기도 하고 그래요.
글을 쓴다고 하면 다들 밥을 사주겠다고 하던데요. 설마 글로 밥벌이할 생각은 아니지? 하면서요. 그리고 무슨 글이냐고 물어봐요. 나는 모호한 글을 쓴다고 해요. 진짜로 모호하거든요. 글을 읽은 지인들이 “이거 내 얘기야?”라고 하면 글쎄?라고 하는 게 다거든요. 근데 정말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고, 공감되는 글이라서 더 그런 것 같아요. 같은 기억과 추억을 공유한 내 또래 집단들은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한편으로는 자기를 가져다가 글을 써달라는 친구도 있어요. 함께한 세월이 꽤 되었으니 좋은 소재로 만들어서 몇 가지 가져다가 써보려고 하고 있어요. 서로 자극을 주고 자극받는 사이예요. 그 친구도 좋은 글을 꽤 잘 쓸 텐데. 나보다 감성이 좋은 친구인데 타자기 앞에서 많이 고민하더라고요.
사랑과 죽음에 대해서 너무 많이 쓰는 것 같아요. 근데 선과 악은 극과 극이 아니라 뫼비우스의 띠처럼 나선형으로 연결되어 있거든요. 기분이 너무 좋으면 “죽인다!”라고 하는 것처럼요. 조금은 이해가 될까요? 나는 몇 차례의 죽음을 가까이에서 느꼈기 때문에 더 많이 쓰는 것 같아요. 너무 슬프지는 않게 죽음을 쓰고 싶은데 좀 더 연습해야 할 것 같아요. 타이타닉 마지막에 로즈와 잭이 손을 잡고 마구 웃으면서 빙글빙글 돌잖아요. 침몰하는 배 안에서 끝없는 파티를 하고 계속 춤을 춘다면 그것대로 낭만이겠어요. 그런 글을 써보고 싶어요. 끝이지만 우리는 또 다른 시작인.
사랑이랑 죽음 말고 다른 소재들도 가져다가 활용해야 하는데… 하고 있어요. 사랑과 죽음은 흔한 소재라서 믿고 가는 부분이 있는데 한편으로는 또 진부해질 것 같기도 해서요. 신화, 환상 뭐 그런 것도 좋은 소재잖아요. 인간의 희로애락을 관망하는 어느 신의 이야기도 써보고 싶어요.
그리고, 음식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아 먹는 것에 진심이라 그런가. 한때 푸드매거진을 연재하거나 먹스타그램 계정을 만들 생각도 해 봤는데, 제가 막 사진을 잘 찍지는 못해서요. 하는 표현이라고는 여기 안 가면 바보. 정도인지라. 먹고 즐기는 데에 그치는 것 같아요. 그 경험을 가져다 다시 글을 쓸 수는 있겠죠. 브런치카페 사장님, 쿠키집 사장님, 요거트집 사장님, 펍 사장님을 한 데 모아두는 소설도 써보면 재밌을 것 같아요. 근데 모아두고 뭘 시키죠? 생각이 자꾸 튀어요. 글도 자꾸 잘 가다가 여기저기 튀었다가 오가는 것 같아요. 그걸 조화롭게 풀어가려고 몇 번이고 읽고 고쳐요. 근데 결국은 제 의식의 흐름대로 떠오른 것이기 때문에 반복하는 단어 교정정도에 그치나 봐요.
제목이 먼저 생각날 때도 있고, 어떤 문장이 떠오르면, 그 문장만을 위한 수식문단이 계속 늘어나서 글이 될 때도 있어요. 어디든 자꾸 써놓고 살을 붙이려고 해요. 문장 하나만 쓰면 그다음은 쉬운데, 문장 하나를 빈 종이에 적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라서. 생각이 나거든 바로 글로 적으려고 해요. 최근에는 지하철을 타면서 '1호선 레퀴엠' 같은 제목이 생각났어요. 지하철에 탄 사람을 죽이고 싶기도, 지하철 자체를 죽이고 싶기도 하고 그래요. 요즘 자꾸 기계가 사람을 죽이던데 사람이 다시 기계를 죽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열차 마디마디가 관처럼 보이지 않아요? 끝없는 관의 행진이 작금의 사회와 잘 어울리기도 하고요.
제목 짓는 건 항상 어려웠거든요. 자주 하던 실수가 있어 보이려고 어디서 한자를 가져와서 짓는 거예요. 애인을 굳이 愛人이라고 적는다든지 그런 거요. 근데 지금은 한자에서 인문학과 예술로 넘어온 것 같아요. 요즘은 전시회나 박물관을 자주 다니고 있거든요. 아비투스, 레퀴엠, 로망스, 시니피에, 랑그와 파롤… 자꾸 제목에 그런 말을 넣으려고 해요. 내가 담는 진짜 의미는 다를지라도 그 기표에서 느끼는 사람들의 감상은 비슷할 테니, 사람들이 제목에서 갖는 기대지평을 이용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자세히는 모르지만 왠지 있어 보이잖아요. 어휘를 알고 찾아오시는 지식 많으신 분도 계시겠죠. 그렇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쉽지 않아요.
사실 창작 수업을 많이 듣지는 않았어요. 타고난 사람들과 함께 있는 건 괴로운 일이었거든요. 백날 천날 글을 갈고닦아도 내 글은 일기에 그치는 거예요. 나는 어느 멋진 환상성을 담고 싶었는데. 근데 전날밤에 카페인음료를 마시고 몰아서 썼다는 누군가의 글은 마치 당선작 같고 그랬어요. 타고난 감각 같은 거요. 아무래도 난 그때 좋은 글을 쓸 수 없었을 거예요. 많은 경험을 하지 못했고, 글을 많이 읽지도 않았거든요. 어리숙했으니 글도 어리숙했을 거예요.
분량이라는 한계에 항상 부딪히기도 했어요. 내 글은 너무 짧은 거예요. 단편도 못될 정도로. 이 좋은 소재를 가져다가 오래오래 우려먹어야 하는데, 길게 쓰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생각했던 글과는 다른 글이 되어 있는 거예요. 이 세상의 신은 나인데 생명들이 자기 삶을 갖고 세상을 굴리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글이 자꾸 짧아지는 것 같아요. 근데, 요즘은 너무 긴 글도 읽지 않으려고 하잖아요. 잘 된 일일지도 모르겠어요. 짧은 분량의 글을 찾으시던데요. 문장도 짧게 써야 해요. 한 문장이 두 줄로 넘어가서 읽지 않도록 하고 싶은데, 그건 너무 어려운 일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