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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리 Jan 13. 2019

“옷 입기를 왜 학교에선 안 가르쳐주는지 원망스러워요”

30대 후반 여성 초등교사 패션 힐링 컨설팅

01 “상술 아닌 진심어린 조언이 필요해요.”


안녕하세요? 요즘 야근이 잦아 아이들과 함께 하지 못해 매일 미안해하는 39살 워킹맘입니다. 집에도 아이들이 있는데 직장에서도 아이들과 복닥거리는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분당에 살아요. 
옷에 대한 생각, 어려워요. 특히 겨울엔 많이 껴입어야 하니 난감하네요. 보온과 멋스러움 그 균형을 맞추기 어려워요. 또 색에 예민해요. 제게 어울리지 않는 원색이나 형광색 옷을 입은 날에 하루종일 속이 울렁거리기도 했어요. 블랙이나 어두운 색 상의는 입자마자 다크써클이 턱까지 내려오고 안색이 안 좋아져서 기분도 함께 가라앉기도 해요. 
제게 어울리는 아이템을 고르기 어려워 매일 인터넷 쇼핑몰을 기웃거리며 시간을 낭비해요. 스마트 폰만 들여다보고 있으니 제 자신이 한심하고 아이들 보기 부끄럽고. 또 안목이 부족하니 단골 오프라인 옷가게에서 무작정 주인이 권해주는 대로 구입하지만 카드 값 때문에 괴로워하거나 입지 않고 걸어만 두게 되는 일도 잦아요. 한때는 화려한 블라우스에 펜슬스커트 같은 여성미 폭발 투머치 룩을 장착하고 다니기도 했지만 정말 내게 어울리는 옷은 뭘까 궁금해졌어요.
옷 입기 방법을 학교에선 왜 필수 교양과목으로 가르쳐주지 않는지 원망(?)스러울 정도예요. 참, 제가 무지외반증이 심해요. 다만, 여름철 발이 많이 노출되는 샌들 같은 건 피하게 돼요.
 그 흔한 쪼리를 한 번도 못 신어봤어요. 편한 신발 위주로 신으면 크게 불편하진 않지만 늘 발 때문에 신발을 제한된 범위에서 고르다 보니 옷 맞추기가 어렵네요. 발만 생각한다면 평생 운동화나 효도신발 같은 것만 신어야 할 거예요.
여기까지 쓰고 보니 이건 모두 살면서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고민들이네요. 제가 왜 덜컥 쌤께 컨설팅 신청을 했는지 알겠어요. 옷에 대해서 제가 얼마나 고민스러워했는지 해결방안이 없어 답답했는지... 도움이 필요했어요. 미디어나 옷가게 점원들의 상술이 아닌 오로지 저에게 맞춘 진심어린 충고가 필요했어요. 도와주세요, 쌤.


E님을 만난 건 2017년 1월이었다. 그녀는 정말 예뻤다! 쌍꺼풀진 큰 눈, 하얀 얼굴. 베이지색 패딩에 아이보리 팬츠, 그레이 터틀넥 스웨터 차림은 크게 나쁘지 않다. 겉으로만 봐선 어떤 패션 고민이 있는지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다만 나이보다 몇 살은 더 들어 보이는 인상이라 헤어와 눈썹 변화가 다소 시급해 보였다. 


그녀는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 보이고 낯을 가렸다. 나는 그녀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내 얘기를 풀어놨다. 과거 시간 강사 시절 난 그녀의 모교에도 출강했었다. 아담한 학교 캠퍼스 얘기, 살인적인 스케줄을 자랑하는 교대 커리큘럼 얘기, 교수님들 얘기... 자연스럽게 그녀와 교대 시절 얘길 나눴고, 이야기 끝에 캠퍼스 커플이었다는 남편과 결혼 스토리가 나왔다. 별다른 로맨틱 스토리가 있어서라기 보단  ‘엄마를 걱정 시키면 안 된다’는 생각에 결혼을 결정하게 되었다는 말씀을 하신다.


그녀의 말투가 참 예쁘다. 한마디 한마디를 예쁘게 조용조용 내뱉는다. 여배우 이영애 같은 우아한 말투. 반면 눈빛은 누군가를 기다리듯 어딘지 모르게 로맨틱한 침울함을 가득 담고 있다. 


그녀의 가족사 얘기가 나왔다. 뭐랄까 듣는 내내 숙연해 졌다. 그런 어린 시절 때문이었는지 안정적인 길을 가기 위해 교대에 지원했고, 그럭저럭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는 말씀을 하신다. 어릴 땐 동생만 챙기라는 엄마 말씀에 내내 서운했다.


“저희 엄마는  술부리는 저한테 항상 ‘너는 참 못 된 애야’, ‘이기적인 아이야. 그렇게 예쁜 얼굴로 왜 짜증을 내니? 거울을 봐봐. 마귀 같아.’라고 하셨어요.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그 말씀이 가슴에 남아 있었네요.”


자신도 어린 아이였는데, 그래서 엄마 사랑이 고팠는데. 동생에게 누나 노릇하느라 엄마에게 서운한 게 많았다는 얘기. 전 국민이 ‘잘 살아보세’라며 먹고 살기 바빴던 1980년대의 엄마들은 아이에게 공감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그 때의 어린 소녀가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어도 그 상처는 여전히 남아 있다. 좋아하는 음악이 궁금했다.


“좋아하는 음악은 Jack Johnson 의 Better together에요. 듣는 순간 맘이 편안해져요. 실은 이것저것가리지 않고 마음 끌리는 대로 듣는 편이긴 해요.  스트레스 엄청 받았을 땐 락 음악 볼륨 최대로 해놓고 귀 아프게 듣기도 하구요. 집에선 거의 라디오 틀어놔요. 음악잡식을 하긴 해도 저 음악이 라디오에서 나올 땐 넘 반갑고 온 몸이 이완되는 느낌이에요.”


이럴 수가! 나도 좋아하는 노랜데. 반가운 맘에 나도 잭 존슨 노래는 다 좋아한다는 얘길 했다. 그녀에게 ‘음악 취향 참 세련되셨다’고 웃으며 말씀드렸다. 또 락 음악도 종종 즐겨 듣는다하시기에 왜 그런 건지 여쭤봤다. 본인은 늘 잘 정돈된 집에서 조용히 여유를 만끽하고 싶은데 남편과 두 아이들은 늘 어지른단다. 어지르는 것도 그렇지만, 자신만의 리듬과 무드를 누리고 싶은데 나머지 가족들로 인해 마음이 시끄러워져 불편하단다. 게다가 육아휴직 후 학교에 복직한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연구수업을 진행하는 상황에 처하다 보니, 혼자 있을 때는 그렇게 음악으로 본인의 시끄러운 마음을 풀게 되신 거다. 


대인 관계는 어떨까.

“제가 만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집과 학교만 왔다갔다 반복하니까... 가족과 저희반 아이들. 동료 선생님들이 전부네요. 가끔 시댁 친정 식구들 만나고요. 친구들은 다들 결혼 이후 일 년에 한 번도 만나기 힘드네요. 원래 제가 활달한 편이 아니라 친구도 몇 없어요...”


역시. 내향적인 분이다. 언제 기쁘신지 여쭤 보니, 학교에서 업무로 교감선생님께 인정받았을 때라고 말씀하신다. 연구수업이 너무 버거웠지만, 묵묵히 열심히 하다 보니 좋은 평가를 받게 되셨단다. 별 거 아닌 경험이었지만 그동안 자존감이 낮아져 있었는지 어째서인지 그 일로 최근에 기분이 좋으셨단다.


그녀는 자신만의 작고 예쁜 세상 속에서 고요함을 누리길 원하는 분이었다. 그러나 로맨틱한 감정 없이 결혼을 하고, 어찌어찌 출산과 육아를 경험하며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갈증이 충족되지 않는 상태로 살고 계셨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이 존중받지 못했던 그녀의 공허함이 현실을 떠나고 싶어 쇼핑몰 사진 속 이미지를 소비하는 행위로 표현되고 있었던 게 아닐까. 



02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고 싶어요.”


일주일이 지나고 두 번째 만남. 영하 10도의 정말 추운 날이었다.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한 E님이 나를 맞아주신다. 한층 밝아 보이지만, 내 옷차림을 훑어보시는 표정에선 '부럽다'가 가득하다. 카키색 패딩에 로얄블루 장갑을 매치한 그날 내 토털룩이 너무 멋지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씩 웃으며 장갑을 벗어 권했다. 한번 착용해 보시지 않겠냐고. 사양하지 않으시고 수줍은 표정으로 장갑을 들어 보신다. 그리곤 어색하게 기뻐하시는 모습. 



“이런 거 얼마든지 찾아드릴 테니, 쫌만 기다려주세요. 아마 본인이 좋아하시는 장갑 사고 나면 제 거 하나도 안 부러우실 걸요?” 


아직까지는 ‘그럴 리가’라는 불안한 표정만 지으신다. 나는 안다. 이건 곧 ‘비포’가 될 장면이라는 것을. 그녀의 버킷리스트 일부를 공개하면 다음과 같다. 


 나 혼자 사는 집 미니멀하게 꾸미기(?). 셀프 인테리어 

 엄마와 일주일 함께 살기

 사랑하는 사람들과 기념사진 찍기

 프랑스 자수와 피아노 배우기

 요가 꾸준히 배우기

 고양이 키워보기

 하루 종일 뒹굴 거리며 만화책 보기

 보육원 아기들 돌보기 봉사

 학교 그만두기

 타인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기


역시 첫 번째가 ‘셀프 인테리어’. 집이 그녀에겐 휴식처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하신다. 본인만의 감성으로 집이 꾸며졌으면 좋겠지만 다 함께 지내는 곳이라 맘대로 안 되어 속상한 곳. 무인양품 가구 같이 예쁜 것만 가득한 집, 혼자 살아도 좋으니 그런 집을 한 번 가져보고 싶으시단다. 프랑스 자수, 피아노, 요가, 기념사진 찍기, 만화책 보기... 아마도 그렇게 꾸민 집에서 혼자서 하거나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만 불러서 누리고 싶은 조용한 아름다움 같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기’는 자신이 타인의 시선에 너무 연연해해서 그게 피곤하다는 말씀을 하신다. ‘남들이 어떻게 볼까’, ‘남들이 뭐라고 할까’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이 특히 신경쓰는 문제인데 이걸 버킷리스트에 포함시킨 걸 보니, 혼자만의 자유로움과 타인의 평가 사이에서 느끼셨을 피로가 상당하셨던 모양이다. 내가 그녀에게 집중적으로 해 드려야 할 일은 나의 ‘뭐 어때?’ 정신이다. 앞으로 나는 E님이 나를 부러워하실 때마다 말씀드려야겠다. 내가 세계 최고 미인이라서가 아니라 ‘뭐 어때?’ 정신을 장착하고 있어서임을.


그리고 ‘고양이 키우기’? 그러고 보니 그녀는 소위 고양이상 얼굴이다. 고양이를 왜 기르고 싶냐고 여쭤보니 별다른 이유는 없고 그냥 하얗고 예쁜 고양이는 바라만 봐도 기분이 좋으시단다. 사람은 원래 자기와 어느 정도는 유사점이 있는 대상에 끌리는 법.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타인에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시다는 E님은 고양이가 개와 달리 절대 주인 눈치 보지 않고 자기만의 독자적인 리듬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고양이에게 끌리셨을 것 같다. 


그녀의 버킷리스트로부터 나는 그녀가 혼자 있는 걸 좋아하지만, 홀로 만들어둔 자신의 아름다운 세계로 누군가를 초청하여 함께 소통하길 바라는 ‘개인주의자’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며 그녀에게 ‘특별하고 싶다’와 ‘나 자신이고 싶다’는 욕망이 강함을 확인하였고, 그 욕망이 자신과 닮은 ‘고양이’를 키워보고 싶다는 소망으로 표현된 것 같다.



03 그녀의 별칭


3주째 되던 어느 날, 집에서 설거지를 하던 내 머릿속에 뭔가가 왔다. 그녀의 별칭. 나는 그녀의 우아하고 예쁜 말투와 목소리, 버킷리스트, 그리고 온 집안을 화이트로 꾸미고 싶다는 욕망에서 아름답고 도도한 ‘흰 고양이’를 떠올렸다. 


한편 그녀가 지금껏 무서워서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얘기, 맘에 안 드는 옷을 사고도 에너지가 바닥이라 한 번도 반품하신 적이 없었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지난 번에 그녀는 지금까지 너무 조용히, 웅크려만 지내온 것에 대해 후회를 하시며, 뭔가 자신을 위해 새로운 일에 하나씩 도전해 보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녀가 ‘덜컥’ 신청한 이 컨설팅은 자신을 위한 힐링 여행이란 의미가 있었다. 


나는 꽃이 가득한 온실 속에 앉은 흰 고양이가 해를 쪼이며 꽃향기를 누리다가, 그게 약간 지겨워져 바깥세상으로 나가고자 하는 풍경이 떠올랐다. 


온실 속 흰 고양이


자신만의 아름답고 안전하고 따스한 작은 세상 속에서 조용히 유유자적하기를 원하지만, 언제든 바깥의 신기한 세상을 구경하다 돌아오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조용한 도발을 꿈꾸는 여성.


이게 바로 지금까지의 단서를 종합하여 내가 이해한 E님이자 ‘온실 속 흰 고양이’이다. ‘온실 속 화초’라면 수동적이고 연약한 여성을 칭하지만, ‘온실 속 흰 고양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화초’보다 ‘흰 고양이’가 훨씬 능동적인 존재이니. 게다가 그냥 들에 펼쳐진 꽃밭의 고양이라고 하기엔 너무 조신하다. 밖으로 잠시 나갔다 돌아오지만 다시 온실로 돌아와야 한다. 구질구질한 건 딱 질색이고 고고하니까. 그리고 누가 온실에 찾아와서 같이 조용히 노는 건 좋지만 어지르는 사람(강아지)은 싫다. 그래서 일단은 조용히 거길 온전히 누리고 싶은 거다. 별칭을 들은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와! 딱 저네요. 생각만해도 따뜻해져요. 선물 같아요... 큰 선물... 인생의 큰 선물... 아무리 연인이라도 저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고심해서 별칭을 지어주진 못할 것 같아요. 쌤 덕분에 제 인생이 풍요로워지네요. ‘온실 속 흰 고양이’, ‘온실 속 흰 고양이’... 자꾸만 부르고 싶어요. 그러고 보니 제가 왜 집에서 불편했는지 알겠어요. 저는 세 마리의 시끄러운 강아지들과 살고 있었어요. 혼자 높은 곳에 피신해서 늘 웅크려 있었던 것 같네요.”


내가 이 컨설팅에서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다. 자기 정체성을 드디어 찾았다는 그 순간의 감동을 함께할 수 있으니! 운전이 너무 무서워 장롱면허라는 그녀를 응원하기 위해 내가 ‘흰 고양이’ 님의 정체성을 조금 더 설명 드렸다. 


“다만 지금까지 너무 웅크려 있었으니 바깥에 뭐 있나 고고하게 돌아다니셨으면 좋겠어요. 고양이에겐 발톱이 있으니 그리 약하진 않답니다.”
“저 이제 기지개 한 번 쭈욱 펴고 온실 밖으로 느긋하게 나가볼까 봐요. 정말... 제 속에 들어갔다 나오신 듯!”
“그냥 뵐 때마다 느낀 거죠. 표정과 말투, 눈빛, 흰 옷, 흰 인테리어 좋아하시는 거, 왠지 끌리는 룩, 버킷리스트... 그리고 잭 존슨 음악에서도 온실 밖을 동경하는 그런 느낌이 있었어요.” 
“저도 별칭 듣고 나서 그런 장면이 떠올랐어요.”



04. ‘온실 속 흰 고양이’의 바깥구경


이제 ‘온실 속 흰 고양이’의 옷장을 꾸릴 차례. 중요한 건 자기 욕망에 충실한 옷으로 옷장을 채우는 것이다. 우리는 허세 이면의 진짜 욕망을 직시하지 못한 때 타인의 시선이나 트렌드를 의식하며 엉뚱한 옷으로 옷장을 채우고 후회한다.


그녀가 고른 ‘왠지 끌리는 배색’은 다음과 같다. 


구노 나오미, 포름즈색채정보연구소(2015). <다양한 분야에 도움이 되는 배색사전> 서울: 하서출판사


다음은 그녀의 ‘왠지 끌리는 룩’. 그녀는 해외 쇼핑몰에서 사진을 골라 오라는 내 얘기에 한참을 들여다 봤지만, 너무 과한 디테일이 많은 패션 화보 사이에서 길을 잃어버리셨다는 얘길 한다. 그래서 그냥 내 블로그에 올라온 사진 중에서 고르는 게 좋겠다고 판단, 나의 사진들을 수줍게 보여주신다. 나는 사진에서 ‘온실 속 흰 고양이’ 다운 욕망을 발견하고 반가워했다. 


(1) ‘화이트 + 베이지에서 오는 고급스러운 무드가 좋아’(흰 고양이의 고고함)

(2) ‘가끔은 소재나 색상에서 도발도 괜찮지’(흰 고양이의 바깥 구경)

(3) ‘역시 평화롭고 자연스러운 게 최고지’(온실의 평온한 자유로움)

그녀는 자신의 취향을 확인함과 동시에 나와 함께 스타일링의 네 가지 법칙을 익히고 훈련했다. 


그녀가 보내온 옷장에서 살릴 법한 옷은 다음과 같다(이 때까지만 해도 컨설팅에서 착용 샷 숙제는 없었다).


그녀가 자신의 옷장 속 사진을 찍어보더니, 문제를 정리해서 알려주신다.


1. 입어보고 구입한 것은 만족하나, 인터넷으로 구입한 것은 소재나 핏이 맘에 들지 않아 안입게 되는 경향이 있었다.
2. 소재가 좋은 옷을 적게 갖고 있다. 사진에 없는 옷들은 다 버려야 겠다. 
3. 디테일 많은 옷을 많이 갖고 있었다.
4. 쓸만한 백이 없다 - 가로25cm정도 백(투웨이)이 있어야 겠다.(갈색)
5. 아우터 - 블레이저, 겨울아우터(소재 좋은 것), 패딩, 여름샌들, 화이트셔츠, 스키니핏 팬츠들.
6. 로퍼 (또는 스니커즈), 선글라스, 장갑


소장하고 계신 옷으로 평소 차림대로 입는다면 어떤 룩이 될지 궁금했다.




와이드 팬츠에 길고 헐렁한 트렌치 코트를 입어 핏의 투머치가 발생했다. 화이트 이너 탑이 없는 그녀는 스트라이프 이너 탑을 입어 뭔가 정리되지 않고 아쉽다. 발에 특이사항이 있는 그녀는 편하고 예쁜 신발이 없어 늘 아쉬워했었다. 


나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며 그녀에게는 헐렁한 화이트 블라우스가 꼭 필요하다고 보았고, 다양한 색상으로 온실 속의 꽃 느낌을 표현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으셨겠지만, ‘흰 고양이’의 바깥출입을 지지하는 뭔가 활동적인 아이템으로 카키색 보머와 핏 좋은 스키니진이 어떨까했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아이보리색 코트에 달린 금단추를 보니, 이 골드 디테일을 언제나 착용할 수 있는 골드 시계가 그녀에겐 꼭 필요하다!




05 ‘예쁘다, 예쁘다, 오늘 너 예쁘다’


이제 별칭을 컨셉으로 그녀만을 위한 쇼핑리스트인 콜라주를 작성하는 단계이다. 나는 그녀의 ‘왠지 끌리는 배색’과 ‘왠지 끌리는 룩’을 반영하여 대략의 그림을 그렸다. 


‘화이트, 그린, 베이지로 온실의 자연스러움을, 오렌지, 와인, 핑크, 옐로, 스카이블루로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풀어본다. 리넨, 코튼, 스웨이드 등의 자연 무드 소재를 기본으로 하되, 인조가죽이나 프라다 소재 같은 반짝이는 소재로 리듬감을 표현한다.’


그녀의 라이프스타일과 소장 아이템을 중심으로 대략적으로 ‘온실 속 흰 고양이 룩’을 만들어 보았다.





다음 단계는 쇼핑. 쇼핑은 위와 같은 콜라주를 실물로 완성시키는 작업이다. 우리는 다양한 브랜드가 모여 있는 쇼핑몰에서 첫번째 쇼핑을 했고, 두 번째는 아울렛을 방문, 늘 신발이 문제였던 그녀를 위해 컴포트화 브랜드를 집중 공략했다. 물론 그녀는 나와 만나지 않는 동안에도 리스트를 참고로 하여 집 근처 매장이나 온라인 쇼핑으로 콜라주를 완성하기도 했다.


피팅룸에서 입고 사진으로 남기는 작업은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해 본 자신의 모습을 객관화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녀는 각각의 아이템을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 몰라 쇼핑 후 나에게 자문을 구했는데, 나는 말로 하는 것보단 사진이 좋을 것 같아 집에서 내 옷으로 착용 사진을 찍어 모범 답안처럼 알려드렸다. 그런데 그녀는 계속 내게 뭘 입어도 쿨하고 멋지다는 말씀만 하셨다. 왜 본인은 그런 느낌이 아니냐고. 그래서 내가 드린 말씀.


“아, 전 ‘말괄량이’잖아요! ‘어떤 옷을 입어도 소화해 내버리겠어’ 하고 그냥 입어요. 그게 아니면 내가 옷을 입는 게 아니라 옷이 나를 입어버려요. 자꾸 저 부러워 안 하셔도 돼요. ‘흰 고양이’님 얼마나 예쁜지 아세요? 그러니까 거울 보면서 본인한테 얘기해 주세요. ‘예쁘다... 예쁘다... 오늘 너 예쁘다’.”
“아... 왜 이렇게 눈물이... 늘 쌤이 부러웠는데 그거였나봐요. 자신을 사랑해주는 눈빛과 말괄량이 같은 자신감이요. 그래서 쌤이 뭘 입었든 제 눈에 멋져 보였나봐요. 쌤에겐 아우라가 있어요. 제게도 그런 눈빛이 생길 거라고 제 자신을 믿어줄래요.”



다음은 ‘온실 속 흰 고양이’ 다운 우아하고 고고한 룩이다.

(1) 그녀의 소장 아이템(트렌치 코트)를 활용해본 룩. 화이트 블라우스와 화이트 스니커즈, 그리고 스키니 팬츠는 모두 기본아이템이지만, 핏을 대비시키고, 색상을 조화롭게 매치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룩이 완성된다. 


(2) 좌측 마네킹 룩은 그녀가 평소 하객으로 지인의 결혼식 때 입었던 룩이다. 그녀는 나와의 컨설팅 중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한 우측의 룩을 입고 ‘민폐 하객’이 되었었다.


(3) 직업 특성상 팔을 자주 사용하는 그녀를 위해 추천해준 아이템이 화이트 베스트였다. 화이트 베스트를 원피스에 덧입어줄 경우 원피스 드레스의 여성스러움은 한층 다운시키면서도 ‘흰 고양이’ 님의 고고함은 표현해줄 수 있다. 그리고 그녀의 고고함의 욕망을 표현하기 위해 추천한 아이템이 로즈골드 체인 시계였다. 그녀는 이 시계 하나만 있으면 금단추 재킷이 아니라 매일 각기 다른 기본 아이템을 입어도 자신의 골드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다며 대 만족했다. 


(4) 화이트 셔츠 블라우스를 여름에 아우터로 걸치면 ‘흰 고양이’님의 우아함은 표현하면서 온실 밖 나들이에도 좋을 것 같다.


(5) 화이트+베이지+골드로 우아함과 고급스러움의 욕망을 표현해본 룩이다. 와이드팬츠처럼 느슨한 분위기의 아이템은 긴장감을 주는 아이템과 함께 매치하는 게 좋은데, 그녀의 발이 뾰족한 힐을 신기에는 무리가 있어 플랫슈즈이면서 앞코가 뾰족한 신발을 캠퍼에서 찾아냈다. 그리고 하의의 느슨함과 대비되게 팔을 드러냄으로써 토털룩에 슬림한 실루엣을 더했다.


(6) 플라워 프린트 원피스 드레스는 예뻐서 구입했는데 허리라인과 스커트의 플레어 때문에 뭔가 과하다는 인상을 받은 이후로 못 입으셨단다. 이런 경우 본인이 편하게 느끼는 색상의 탑을 덧입어 허리 라인을 덮어주면 드레스 업한 원피스를 드레스 다운할 수 있다. 



다음은 ‘온실 속 흰 고양이’가 바깥세상을 구경하듯 색상으로 옷에 생기를 더해본 룩이다. 그녀의 ‘왠지 끌리는 배색’을 참고하여 주로 벨트나 신발, 스카프 등에서 튀는 색상을 시도해 보았고, 만약에 옷으로 강한 색상을 선택한다면 상의가 아니라 하의를 입음으로써 면대면 소통에서 부담을 덜도록 추천했다. 



(1) 첫 번째 ‘왠지 끌리는 배색’을 참고하여 만들어본 룩이다. 그녀의 스카이블루 스카프는 이 룩 뿐 아니라 다른 룩에서도 얼마든지 그녀에게 청량감을 선사할 것이다. 


(2) 그녀는 처음에 신청서를 작성할 때만 하더라도 원색을 입는 것이 불편하다고 했었지만, 이 빨강 벨트를 두르고 얼마나 즐거워했는지 모른다. 원색이 이렇게 좁은 면적을 차지하도록 스타일링하면, 청량감은 더하면서 부담은 덜 수 있다.


(3) 그녀의 두 번째 ‘왠지 끌리는 배색’을 충실히 반영한 룩이다. 신발은 컴포트화 브랜드인 에코(ecco)에서 찾아냈으나, 옷은 모두 유니클로에서 저렴하게 구입한 것이다. 그녀는 비싸지 않은 옷이라도 자신이 원하는 배색으로 맞춰 입으면 그렇게나 행복해질 수 있다며 연신 신기해했다. 


(4) 원색에 근접한 오렌지 스커트. 앞의 것보다 조금 더 과감해진 룩이다. 그녀는 컨설팅을 시작한 이후 자신의 욕망에 솔직해지는 삶이 즐겁다며 점점 더 모험에 수용적인 태도를 보였다. 


(5) 다홍색 스웨이드 벨트 하나로 그녀가 즐거워하는 모습은 내게도 상당한 에너지를 주었다. 다양한 룩에 등장하는 스웨이드 앵클 부츠는 아울렛에서 신발을 집중적으로 찾던 도중 찾아낸 애쉬(Ash) 제품이다. 애매모호한 스톤 색상은 다양한 유채색과 무채색을 받아주는 매우 포용력이 큰 색상.


(6) ‘왠지 끌리는 룩’에 등장했던 나의 블루 장갑을 부러워하던 그녀에게 이태리 장인이 만드는 장갑 브랜드 마도바(Madova)에서 형광빛이 도는 오렌지색 제품을 추천했다. 다소 평범할 수 있는 겨울 룩에 오렌지 장갑이 더해져 그녀의 입꼬리는 거의 귀에 도달했다. 



마지막으로 평화롭고 자연스러운 무드를 사랑하는 ‘온실 속 흰 고양이 룩’이다.


(1) 프린트 원피스에 화이트 스웨터를 더해주면 한층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데일리 룩이 완성된다.


(2) 그녀의 첫 번째 ‘왠지 끌리는 배색’을 반영한 룩이다. 노랑 플랫 슈즈가 그렇게 좋다나. 


(3) 카키 + 화이트 + 블랙의 조화가 눈이 편안하면서도 멋스럽다.


(4) 앞의 룩과 거의 유사한 배색으로 스타일링한 것이다. 좋아하는 배색이 있을 경우 계절별로 소재와 길이만 달리하면 동일한 배색에 변화를 주며 입는 재미를 누릴 수 있다. 


(5) 헐렁한 트렌치코트에 쇼츠를 매치하면, 상의와 하의의 실루엣과 길이가 대비되어 자연스럽지만 멋스러운 룩이 완성된다.


(6) ‘흰 고양이’ 님이 평소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베이지/브라운 계열의 여름용 탑을 원피스 드레스에 매치하였다. 


쇼핑을 하던 내내 헤어와 립 컬러가 아쉬웠다. 내가 ‘흰 고양이’님을 처음에 봤을 때 나이보다 들어 보여 머리부터 변신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하자, 본인 기분 생각하지 말고 헤어 조언을 솔직하게 해달라고 부탁하신다. 이틀 후 제주도에 내려가 결혼식에 참석해야 하는데 그곳에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이 많아 꼭 이미지 변신한 상태로 가고 싶다며. 온실 밖으로 나갈 생각에 신이 난 ‘흰 고양이’ 님의 추진력이란!


일단 염색도 다크 브라운으로 해야 하고 커트 짧게 하고 펌을 하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리자, 둘 다를 한꺼번에 할 수 없으니 둘 중 뭐가 더 급하냐는 질문을 하신다. 그래서 염색이라고 말씀드렸다. 꽤 늦은 저녁이었음에도 그녀는 귀가 길에 머리 염색을 마쳤다 그리고 내친 김에 립스틱까지 바꾸기 위해 화장품 로드샵에 들렀다. 다크 브라운 헤어에 피치 립스틱! 그녀와 내가 대학생일 무렵 광고 시장을 주름잡던 ‘산소 같은 여자, 이영애’가 따로 없다. 그녀의 후기에 따르면 다음 날 제주도에서 그녀는 ‘예쁘다’는 말을 열 번은 넘게 들었고, ‘민폐하객’이라는 핀잔까지 들었다. 




06 "주문을 외워요."


컨설팅을 마친 그녀가 소감을 전한다.


“그날 쇼핑 마치고 그렇게 기분 좋은 귀가 길은 처음이었어요. 정말 쉰나는 하루였어요. 제가 초반에는 남편한테 컨설팅 한다는 걸 말 안했어요. 남자들한테는 이런 거 말해도 이게 뭔지 못 알아들을 거니까요. 그런데 자꾸 택배 상자가 오고 제가 쇼핑백을 갖고 들어오니까. 뭐랄까... 말을 안 할 수가 없었죠. 제가 바람났는 줄 알고 불안해 하더라구요. 그런 남편한테 제가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40년 살아온 중에서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 지금까지 제대로 나인 채로 살지 못했었는데 나를 알아가고, 나를 옷으로 표현해보니까 쇼핑으로 그냥 스트레스 해소하는 거 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지금 내가 과소비하는 걸로 보이겠지만, 아마 5년 내로 이렇게 사는 걸 못 볼 거다. 그러니 걱정 말고 지금 그냥 지켜봐 달라’ 그랬더니 별말 없이 ‘그러냐, 알았다’ 하더라구요. 저는 이게... 정말 저 자신과의 힐링 여행이었어요. 치료는 부담스럽지만 이건 옷으로 자기를 표현하는 거니까 훨씬 부담도 덜하고 즐겁잖아요. 게다가 ‘온실 속 흰 고양이’라는 제 별칭. 정말 큰 선물 하나 받은 것 같아요.”
“저는 ‘특별하게 입고 싶다’는 생각에서 옷 가짓수도 많아야 되고, 옷 색상도 다양하게 많아야 된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왠지 끌리는 배색’ 범위 내에서 옷을 매치해도 충분히 멋스러울 수 있다는 걸 제 눈으로 확인하니까 신선하고 좋았어요. 그리고 기본 아이템은 디테일이 없는 ‘빼기의 법칙’이 적용된 것으로 선택하니까 이렇게 입어도 어울리고, 저렇게 입어도 어울리는 게 신기했고요. ‘빼기의 법칙’이 정말 강력하다는 건 제가 제주도 결혼식 가서 직접 경험하고 나니까 더 그랬죠.”
“그리고 ‘더하기의 법칙’도 강력해요. 저는 제 골드 욕망을 저는 늘 금단추 옷으로 표현했었거든요. 그런데 이 로즈골드 시계 하나만 차도 모든 룩에 골드를 더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그리고 첨에는 왜 쌤이 저한테 자꾸 노랑 신발을 신기려 하시는지 몰랐는데, 신어보니까 알겠더라구요. 신발로 노랑으 내 몸에 입힘으로써 제가 그렇게 행복해질 수 있다는 점이 신기했어요. 컬러가 주는 힐링 효과가 정말 대단! 하더라구요.
“쌤, 정말 고마워요. 쌤과의 시간은 제게 숨통이었어요. 그때만큼은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바다 건너 휴양지로 가지 않더라도 지금 여기서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이 바로 힐링의 시간인 것. 나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만 보던 그녀가 이제 자기를 본다. 너무 다행이다. 그녀가 타인의 시선을 대하는 태도에도 변화가 생겼다. 


“제가 요즘 출근하면 사람들이 말은 안 하는데 조용히 훑어보는 게 느껴져요. 예전엔 제가 소심해서 타인의 시선에 연연하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타인의 시선을 즐기게 됐어요. ‘당연히 내가 멋지니까 쳐다보는 거겠지?’하니까 좋네요. 무엇보다 제가 좋아하는 옷을 입어서 우러나오는 자신감이 큰 것 같아요.”


우린 늘 타인의 평가에 목마르다. 예쁘게 입었으니 누가 칭찬이라도 해줬으면 하는 마음에  ‘나 오늘 어때?’ ‘나 예뻐?’ 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질문을 하는 순간 그건 이미 진 게임이다. 타인의 평가에 나의 예쁨이 판가름 나니까. 그런데 평가에 처음부터 관심이 없으면, 그건 처음부터 이긴 게임이나 마찬가지다. 내 옷차림에 누가 뭐라고 해봤자 ‘꺼져’이고, 칭찬해도 ‘어? 고마워’ 정도에서 끝나니까. 타인의 평가 따윈 상관없다는 여유가 오히려 ‘저 사람은 누구지?’라는 아우라를 유발한다. 알고 싶은 사람,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되는 비결은 바로 ‘남들이 뭐라건 내가 좋아하면 그만’이라는 마음가짐에서 출발한다.


이제 그녀에게는 ‘진정한 나’로 살아가는 과제가 남았다. 마침내 그녀가 ‘온실 속 흰 고양이’로서 자기 옷장의 주인이 되는 법을 배웠듯, 삶에서도 ‘온실 속 흰 고양이’로서 살아가는 일이 남았다. 나와 헤어지면 도로 돌아갈까 봐 살짝 걱정이라던 그녀가 내게 이런 명언을 남겼다. 


“가끔 걱정해요. 그래서 주문처럼 외워요 ‘난 ‘온실 속 흰 고양이’ 야. 이 상황에서 흰고양이라면 어떻게 하지?’라구요. 그럼 마법처럼 길이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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