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ity + Simplicity = Happiness
몇 년 전 나는 심한 우울증을 겪었다.
치료도 치료였지만, 혼자 있을 때에도 난 내 삶에 대한 고민을 치열하게 했었다. 그 시기의 나는 모범생의 삶을 시원하게 그만두지도 못하고, 내 욕망을 직시하지도 못한 채 무중력상태에 빠져 있었다. 하루 종일, 그리고 잠 들었을 때도 내가 왜 그렇게 불행해졌는지 답을 찾느라 머릿속이 분주했고,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을 글로 쏟아냈다.
패션은 나의 본능과도 같았지만, 늘 옷을 많이 사도 행복하지 않았음에서 뭔가 의문이 해결되지 않았다. ‘어떻게 입으면 행복한 옷 입기가 될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졌고, 그 답을 어느 정도 찾으면 뭔가에 홀린 듯 블로그에 글을 썼다. 사실 ‘어떻게 입으면 행복한 옷 입기가 될까’라는 질문은 ‘어떻게 하면 내가 행복해질까’라는 질문이었다.
당시 ‘놈코어’와 ‘심플함’, 또는 ‘미니멀리즘’이 트렌드였다. ‘놈코어’에 대한 글을 준비하던 중 건축가 폴 자끄 그릴오(Paul Jacque Grillo)의 책 《Form, Function and Design》에서 인용된 심플함에 대한 문장을 패션 잡지에서 접했다. 심플함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었던 난 도서관에서 원문을 찾아보았다. 1970년대에 출판된 빛바랜 그 책에서 난 이런 문구를 만났다.
Originality + Simplicity = Elegance
머릿속에서 번개가 번쩍했다. 디자이너가 디자인하고자 하는 대상의 본질이 무엇인지 분명히 하고, 그에 군더더기를 더하지 않는 심플함을 추구할 때 아름다운 디자인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릴로는 여기서 심플함이 미니멀리즘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미니멀리즘은 본질까지도 제거해버릴 수 있는 위험이 따르는 반면, 심플함은 본질은 반드시 남기고 나머지 군더더기를 제거하는 것, 더 뺄 것 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행복한 삶에 대한 고민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난 나는 그릴로의 디자인 철학으로부터 삶의 아름다움, 즉 행복을 재정의해볼 수 있었다.
나의 본질, 즉 내 정체성을 찾고, 본질 이외의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는 심플함을 추구하는 것. 그것이 내 삶도 내 옷 입기도 행복해지는 길이었다. 돌아보니, 내 옷장과 내 삶에선 군더더기가 너무 많았다.
Originality
본질성을 추구하기 위해 ‘나는 누구인가?’ 질문을 던졌다. 내 삶과 내 옷장을 디자인하기 위해선 내 정체성을 찾는 것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는 우울증과 망한 옷장에서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다.
난 내가 놓치고 있던 사소한 단서들을 수집해 나갔다. 음악, 영화, 이상하게 오랫동안 입었던 옷,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 내가 이상하게 화가 나던 순간들, 내가 살아있다고 느꼈던 순간들...
내 정체성을 두 어절의 문구로 정리해 보았다(정체성을 찾기까지의 과정은 ‘오늘 뭐 입지?’에서 소개되어 있습니다).
‘조용한 말괄량이’
+ Simplicity
옷장을 열어보니, 내가 옷을 그렇게 많이 사고도 행복하지 않았던 이유가 분명했다. ‘조용한 말괄량이’가 입지 않을 옷이 너무 많았다. 타인의 시선이나 쇼핑몰 모델, 브랜드 인지도가 선택의 기준이었던 옷들......
삶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난 ‘조용한 말괄량이’에게 어울리지 않는 삶을 향해 억지로 끌려가고 있었다. 삶에서 군더더기가 너무 많은데 비싼 옷을 입는다고 행복할 리가 없었다. 무중력 상태에서 허우적거리던 나는 ‘조용한 말괄량이’가 학자의 길을 끝까지 갈 때 뭐라고 할까 상상해 보았다. 풋 하고 웃음이 났다. 내 우울증은 ‘조용한 말괄량이’가 끝까지 못 간다는 시위였다.
삶을 중단하고 싶을 정도로 우울증이 심했던 나는 행복을 위해 물러설 수 없었다. 결단을 내렸어야 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지도교수님께 (거의 다된) 논문을 그만두겠다는 말씀을 드릴 땐 심장이 터질 것 같았고, 부모님 전화는 몇 달 동안 받지 않았다. 그리고 몇 년을 방치했던, 6개월 할부로 산 디자이너 브랜드의 옷은 곰팡이가 옷장 정리를 도와줬다.
그러지 않으면 내 삶은 군더더기만 가득찬 구질구질한 삶이 되고 나는 다시 우울함의 나락으로 빠져야 함을 알고 있었기에.
= Happiness
몇 년이 지났다. 나는 이제 남 눈치나 사회적 기준 보다는 내가 뭘 원하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만 생각하며 결정하려 한다. 내가 무엇을 입든, 내가 누굴 만나든, 내가 무슨 일을 하든 매일 매일의 삶에서 행복을 경험하려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해야하는지 나는 우울증과 망한 옷장을 통해서 알았다.
멀리 바다 건너 휴양지로 여행을 떠나지 않더라도, 매일 비싼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매일의 삶에서 행복하려면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건강한 의생활’
내가 블로그에 패션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한 무렵 ‘쇼핑중독’이란 검색어를 타고 내 블로그에 방문한 분들이 생겨났다. 많은 분들이 ‘어떻게 입으면 옷을 잘 입을 수 있을까’ 관심을 갖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자 한다.
그런데 그 중 적지 않은 분들이 ‘생각 없이 쇼핑이나 하는 된장녀’라는 시선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그분들의 고민으로부터 아름다운 옷을 좋아하는 것,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서 우린 꼭 죄책감을 느껴야 하나 의문이 들었다.
당시 상당수의 블로거들은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며 옷장에서 옷을 버리는 과정을 포스팅했다. 내 블로그에 방문하시는 분들은 그 ‘미니멀 라이프’를 본받고 싶다가도 뭔가 석연치 않아서 주저했다는 말씀을 하셨다.
‘쇼핑중독’ 또는 ‘소비주의’가 틀렸고 ‘미니멀리즘’도 아니라면, 대체 옷장 고민에서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한단 말인지. 많은 분들이 양 극단에서 혼란스러워하셨다. 나는 그릴로의 ‘심플함’의 철학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말씀드리고 싶다.
Originality + Simplicity = Happiness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확실히 세우고, 정체성에 맞는 옷만 옷장에서 남기는 것. 그것이 우리가 결국은 행복한 옷 입기를 경험할 수 있는 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런 옷 입기를 ‘건강한 의생활’이라 부른다. 자신의 정체성을 (수치스러워하지 않고) 솔직하게 옷으로 표현하되, 그것을 양과 질의 측면에서 절제하며 누림으로써 결국 ‘진정한 나’로서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것.
쇼핑중독과 미니멀리즘. 어쩌면 양자 모두 본질적으로는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했을 때 취하는 ‘건강하지 못한 의생활’이 아닐까 한다.
폭식증은 거식증이란 극단적 선택이 아니라 ‘건강한 식생활’로의 개선이 필요하듯, 쇼핑중독이라는 ‘건강하지 못한 의생활’은 ‘미니멀리즘’이라는 극단적 선택이 아니라 건강한 방향으로의 개선이 필요할 뿐이다.
옷을 좋아하는 것, 아름답고 행복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은 헌법에 명시된 행복추구권에 속하니까.
['건강한 의생활' 패션힐러 최유리의 '오늘 뭐 입지?']
1부. 알짜 기본 아이템 스타일링 방법
2부. 옷장 속 잠자는 옷 살리는 스타일링 방법
[정체성, 옷 입기, 쇼핑 컨설팅 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