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파북쓰 Dec 16. 2021

1.3 대학에 놀러 가다

남(男) 다른 아빠의 육아 도전기 - 1. 나는 노는 걸 좋아했다.

수능 다음 날부터 당구를 쳤다. 고등학교 때는 당구를 치지 않았다. 당구가 스포츠라는 인식이 없었다. 그냥 어른들의 놀이라고만 생각했다. 내 생각에는 담배 피우는 사람이 많아서 못 가게 한 것 같다. 어떤 사람도 왜 가면 안되는지 설명해준 사람은 없다. 근데, 나는 그저 그 말을 믿고 따랐다. 담배라는 이유가 아니고서야 학교에서, 어른들이 가지 말라고 할 이유가 없지 않았을까?


20대 초반은 당구와 함께 보냈다. 친구들과 당구장이 문 닫을 때까지 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단골이 된 당구장에서 사장님은 퇴근, 친구들과 문을 닫고 아침까지 당구를 친 적도 있었다. 아르바이트생도 아닌데 말이다. 대학교 1학년 때 학교 가는 버스에서 친구 전화를 받고 중간에 내려서 당구를 치러 간 적도 있다. 정말 당구에 미쳐있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수업 듣는 것보다 친구와 당구 치는 게 좋았다. 고등학교 때는 못 갔지만 이제는 당당하게 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면서 자존감을 세우려고 했던 것 같다. 나를 관심 있게 보는 사람도 없었지만 스스로 우쭐하며 자만했다. 지금 생각하면 철없는 행동이다.


당구와 함께 게임에도 빠져있었다.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을 좋아했다. 당구장이 문을 닫으면 게임방에 가서 ‘스타크래프트’를 했다. 게임방을 못 가면 집에서 했다. 온라인으로 친구를 만나 새벽 동트기 전까지 게임을 했다. 친구와 ‘오늘은 10연승’할 때까지 못 잔다면서 게임을 하기도 했다. 그 나이기에 할 수 있었던 일이 아니었을까 스스로 합리화를 해본다.

당구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추억

대학교에 입학해서 얼떨결에 댄스 동아리에 가입했다. 춤을 배워본 적도 없었다. ‘친구 따라 강남’ 간 것뿐이다. 조금씩 배우다 보니 즐거웠다. 저녁에 같이 술 마시고 노는 것보다는 춤추는 게 즐겁고 신났다. 같은 동작을 맞춰보면서 노래 한 곡을 마치면 뿌듯했다. 3~4분 정도 한 곡을 공연하기 위해 모여서 배우고 맞추다 보면 의견 충돌도 있고 싸우기도 했지만 이를 통해 우정을 다지곤 했다.


동아리방은 도서관 뒤에 공터에 가건물이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가건물에서 밤새며 연습했고, 모닥불 피워놓고 술 한잔 하기도 했다. 소중한 추억들이 모여서 ‘동기 사랑, 나라 사랑’을 외칠 수 있었다. 군대 입대 전까지 대학교를 가는 이유는 동아리 때문이었다.


대학교에 추가 합격을 하면서 O.T는 참석하지 못했다. O.T를 못 갔더니 학부 동기들과 친해지기가 어려웠다. 첫 수업을 갔을 때 이미 O.T를 통해 다들 친해져 있었다. O.T를 못 갔던 나는 그 안에 들어가는 게 참 어려웠다. 수강신청도 혼자서 하는 바람에 교양 수업은 혼자 들었다. 과에서 같이 다닐 친구가 없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아리에 마음이 갔고, 춤을 추는 것도 신나고 즐겁다 보니 더 애착이 갔다. 조금씩 느는 실력은 동아리 활동을 멈출 수 없게 만들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댄스동아리라 학기 중에 한두 번 거리공연을 했다. 점심시간에 공연을 하곤 했다. 어쩔 수 없이 강의시간과 겹쳤다. 강의를 듣다가 중간에 공연하러 나가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때는 그게 열정이고 내가 해야 할 당연한 거라 생각했다. 주목을 갈망하던 시기라 그런 행동들을 많이 한 것 같다. 춤추는 게 좋아지면서 군대를 전역한 후에도 동아리에서 여러 번의 공연을 했다. 군대에서 철든다는 얘기는 나에게 해당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전역 후 어느 대학교 공연에서

전역 후 복학하기 전에 한 달 동안 친구와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큰아버지께서 유럽여행을 추천해주셨고, 뭔가 배울 게 있지는 않을까라는 막연함과 놀러 간다는 기대함을 가지고 떠났다. 영국,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 9개국을 거쳤다. 친구와 나는 영어도 못해서 고생을 많이 했다. 여행을 갈 때마다 영어공부의 필요성을 느꼈으나 여전히 영어는 내 사정권 밖에 있다.


유럽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추억은 스위스에서 썰매를 탄 것과 오스트리아에서 스노보드를 탄 것이다. 스위스에서는 30~40분 정도 내려오는 썰매를 탔고, 오스트리아에서는 아주 멋진 산에서 인공눈이 아닌 자연 눈에서 스노보드를 타고 내려왔다. 우리나라에서 경험할 수 없는 스포츠였다. 사람들이 많아 기다리다 지치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아주 넓고 여유롭고 자연경치까지 예술이었다. 스노보드를 타고 내려올 때 양쪽에 펼쳐진 큰 산은 아직도 감동이다. 그 이후로 느껴본 적이 없다는 것이 정말 안타깝다. 스노보드를 타러 갈 때 기차역에 모든 짐을 보관하고 가는 바람에 사진 한 장도 못 찍은 게 정말 아쉽다. 지금처럼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카메라로 찍었어야 했기에 사진 한 장이 없고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하고 있다.


두 번째로 기억이 나는 것은 이탈리아에서 본 건축물들이다. 역사의 도시인 이탈리아에서 본 콜로세움, 피사의 사탑, 피렌체 두오모, 판테온 외에도 걸어 다니며 보는 모든 건물들이 놀랍고 아름다웠다. 나는 대학에서 토목공학과를 전공했다. 그랬기에 유럽여행에서 건물들이 더 눈에 들어왔고 기억이 난다. 건물들을 보면서 ‘어떻게 저런 건물을 지었을까, 나도 만들어보고 싶다’, '우리나라는 왜 아파트 밖에 없을까' 등 여러 생각을 했다.


다른 사람들 여행기를 보면 여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돌아와서 달라지는 삶을 살고 하는데 나는 그런 건 없었다. 여행의 즐거움을 느꼈고 많은 궁금증이 생겼지만 돌아와서 변한 건 없었다. 여전히 노는 게 좋았고 공부는 어색했다. 부모님께 실망을 드릴까 봐 적당히 공부하며 대학생활을 했다.

대학교 1학년 첫 공연을 앞둔 모습(부끄럽다)

대학만 가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거라 생각했다. 연애도 할 수 있고, 취업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생각과 다르게 대학에 간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대학에 간다고 애인이 저절로 생기지 않았고,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저절로 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내 기준에서) 공부를 했으니 대학에서는 놀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군대를 가기 전까지는 노는 거라 믿었다. 공부를 해야 된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시트콤 영향도 받았다.


자주 봤던 시트콤‘남자 셋 여자 셋’은 하숙집에 사는 대학생들 이야기다. 시트콤에 나오는 등장인물이 공부하는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다. 다들 연애하고 놀러 다니면서 일어나는 사건 등 이야기만 나온다. 나는 그것이 대학 생활이라 생각하고 ‘나도 대학 가면 저렇게 놀아야지’라고 다짐했다. 지금처럼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신문, TV, 책, 지인 등을 통해 정보를 접해야 하는데 고등학교 때는 조언해줄 선배가 없었고(나는 1회 졸업생이다), 책은 추리 소설만 봤고, 신문은 스포츠면만 봤다. TV 시트콤 속 대학생활이란 프레임에 갇혀있었다. 대학생활을 생각해봐도 놀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부모님이 아시면 참 죄송스럽다. 부모가 되어보니 알면서도 모르는 척, 믿음으로 지켜봐 주신 것 같다.


스스로 생각하고 어떤 삶을 살지 생각해보지 않고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지냈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대학생이라는 기회를 흘려보냈던 나날들이 더 많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대학교를 꼭 가야 할까?’라는 고민도 해본다. 대학교는 당연히 가야 했던 나의 고등학교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대학을 안 가고 자기 적성에 맞게 앞길을 선택하는 아이들도 많다.


내 자녀가 대학을 가겠다고 한다면 좋은 대학으로 가라고 말할 것이다. 어중간한 대학을 가는 것이 아니라 정말 좋은 대학을 가라고 할 것이다. 원하는 전공이 있다면 그 전공을 최고로 잘하는 대학교를 가라고 할 것이다. 그 안에서 대학생으로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해봤으면 좋겠다. 연애, 인턴십, 여행, 아르바이트, 창업, 동아리 활동 등. 이런 경험들을 통해 인생에 대해 고민해보고, 울어보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실패하고, 성공하고 즐거워하는 ‘희로애락’을 느껴봤으면 좋겠다.


대학교를 안 간다고 하면 사회에서 20대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라고 할 것이다. 20대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넘어지고 실패해도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줄 테니 겁내지 말라고 말해줄 것이다. 나처럼 20대, 대학생활을 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놀면서 공부하고 깨닫고 지혜로운 하루를 살며 자신을 발견하는 삶을 살면 좋겠다.

멀리 점프하는 딸~!


이전 02화 1.2 스포츠가 좋아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