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 아이와 함께하는 미국여행, 센트럴파크와 메트로폴리탄, 그리고 위키드
2018년 9월 26일 수요일
어제 종일 내린 비와 흐린 하늘 덕분에 게으른 하루를 시작했다. 여행 일정에 대한 어제의 갈등 때문인지 남편은 자꾸 내게 의견을 물었고, 내 마음대로 우선 플랫아이언 빌딩을 보러 가겠다고 했다. 영화 러키 넘버 슬래븐에 등장했던 그 모습이 기억에 남아서 그랬다. 그리고 이 곳에서 남편과 나는 각자 쇼핑의 시간을 가졌다. 내가 정한 첫 번째 코스는 성공임에 틀림이 없다. 바로 맞은편에 레고 스토어가 있었고, 그 옆으로는 잇탈리가 있었다. 이미 한국에도 입점을 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들어가 보고 싶었다. 정말 다양한 종류의 식료품들이 있었다. 파스타면 한 가지와 파슬리를 기념으로 샀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파스타면은 내 뱃속으로 사라졌고, 파슬리는 아직도 잘 쓰고 있다. 내가 잇탈리에서 정신없이 구경하는 동안 남편 역시 아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레고에서 기념품을 하나 더 장만하며 행복해했다. 내가 정했지만 정말 완벽한 첫 번째 코스다!
센트럴파크
계속 비가 오거나 흐릴 줄 알았는데, 구름 사이로 조금 하늘이 보였다. 오늘도 비가 올 것 같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 있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하늘이 아쉬워 바깥에 조금 더 머물기로 했다. 그래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앞에 두고 센트럴파크로 방향을 틀었다. 그냥 걷고 또 걸을 뿐인데, 너무 좋았다. 전날 내린 비에 젖어 풀냄새는 더욱 깊었고, 공간 공간마다 자연으로 꽉꽉 들어차 있었다. 연신 사진을 찍고 감탄했다. 날씨가 맑지 않아 아쉬운 마음은 계속 들었지만, 비가 아닌 '흐린'날씨라는 사실에도 우린 큰 행복을 얻은 것 같았다. 점심으로는 셰이크 쉑에서 햄버거를 먹었다. 뉴욕에서 유학하고 온 친구가 쉐이스쉑은 가성비가 좋은 햄버거집이라고 했는데, 뉴욕에 며칠 있어보니 그렇다. 셰이크 쉑은 다른 음식점에 비해 충분히 가성비가 좋다. 50불 이하의 돈으로 세 식구가 모두 햄버거를 먹었다. 한국에서 우연히 셰이크 쉑 앞을 지나게 된다면 미국을 추억하기 위해 꼭 들어갈 것 같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센트럴파크는 잠깐 맛만 보기로 해놓고는 시간이 많이 흘러버렸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으로 서둘러 발을 옮겼다. 전 세계적으로 큰 미술관이라 제대로 못 볼 거라는 건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남편은 이 점 때문에 센트럴파크에 들렀다가 가자는 내 제안을 탐탁지 않아한 것 같았지만 나는 내 선택에 후회는 없다. 입장부터 그 규모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는데, 작품 어느 하나 안 유명한 게 없었다. 특히 오래 전의 건물 인테리어를 재연해 놓은 공간은 인상 깊었다. 그리고 공간에 어울리는 음악도 흘러나와서 마치 그 시간으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귀신은 믿지 않지만 과거 사람들의 영혼과 한 공간에 있는 것 같은 섬뜩함마저 들었다. 그때 그 감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중세미술 파트를 관람할 때는 조금은 속이 울렁거리고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웅장한 배경음악과 어두운 조명 때문이었을지도) 지루한 건 딱 질색인 아들 눈높이에 맞춰서 미술관 관람을 도와준 남편 덕분에 나는 더 작품을 더 오래 볼 수 있었다. 이 글을 읽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
그리고 메트로폴리탄 루프탑에 올라갔던 것도 기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메트로폴리탄에 몇 번이고 왔던 남편도 못가 봤다 하여 올라갔는데, 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의 뉴욕 여행이 매일매일 맑은 날이었더라면 이렇게나 기분 좋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비 온 뒤 맑음은 우리에게 몇 배나 큰 기쁨을 주었다. 여행에서 만난 비의 장점이라 하겠다. 기념품샵에서 하루 종일 엄마 아빠를 위해 재미없는 미술관 구경 따라다녀준 아들을 위한 선물과 키링을 샀다. 키링은 정말 예뻐서 종류별로 다 사고 싶으니 가기 전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가야 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앞에 많은 할랄 음식 푸드트럭에서 한 군데를 골라 미술관 앞에서 저녁을 먹었다. 정말 정말 맛있었다. 부리나케 식사를 끝내고 나는 예매해둔 위키드를 보러 브로드웨이로 향하고, 남편은 유모차에서 잠든 아들을 데리고 숙소로 갔다.
위키드
내가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을 보는 날이 왔다. 나는 한국에서도 위키드를 본 적이 없다. 뮤지컬은 가격도 부담스러운 데다가 결혼 후에는 공연을 보러 갈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그런 내가 브로드웨이 거쉬인 극장에 가고 있었다. 정말 꿈같은 시간이라 하겠다. 극장으로 향하는 시간부터 설레었다. 그리고 극장에 도착해 티켓을 교환받고 침착하려고 애썼다. 미국 여행을 준비하면서 난생처음 콘택트렌즈도 구매했는데 이유의 8할은 이 뮤지컬 관람에 있다. 콧등에 올라가 있는 안경마저 내 첫 브로드웨이 관극에 영향을 끼칠까 봐 렌즈를 끼기로 했다. 물론 렌즈를 경험하고 나니 라식수술을 받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가 되더라. 휴대전화도 끄고 일찍 자리에 앉아 플레이빌을 정독했다. 누가 봐도 처음 브로드웨이에 온 사람인 게 티가 났겠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위키드는 첫 넘버부터 웅장하게 시작한다. 영어 듣기에 어려움이 있는 나는 미국 여행 전 몇 번이고 뮤지컬 트랙을 반복해 들었지만 극장에서 직접 듣는 것은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가슴 한구석이 몽글몽글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시차 때문에 극 후반에 졸릴 수도 있다는 주의를 들었지만 나의 첫 위키드는 졸릴 틈을 주지 않았다. 매 넘버 넘버가 듣기 좋았고 설레었다. 다만 100% 뮤지컬 위키드에 집중할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이 곳이 브로드웨이였다는 점이다. 뮤지컬의 고장에 와있다는 감격이 가끔씩 뮤지컬에 대한 집중을 깼다. 극의 후반에는 나도 모르게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극의 감동 때문이었는지, 이 여행이 감동적이어서였는지는 알 수 없다. 내 첫 뉴욕 여행에서의 첫 뮤지컬 관람은 그렇게 끝이 났다. 끝이라는 말을 내뱉기가 아쉬울 정도로 아쉬웠다. 처음부터 끝까지 벅차오르는 느낌이었고, 극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도 그 기분은 계속되었다. 정신을 어디에 두고 걸었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숙소에 도착해보니 남편과 아들은 이미 자고 있었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누가 보면 뮤지컬 무대에 오르기라도 한 줄 알겠다) 배가 고파져 근처 마트에 들러 간식을 사 먹고는 잠들기 전까지 한참을 침대에 누워 뮤지컬을 회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