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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림 Jan 29. 2022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는 것

아이의 입원


쿨럭쿨럭.

미열로 시작한 감기는 콧물과 기침으로 번졌고, 아이의 기침 소리는 점점 심해져만 갔다. 약을 먹고 있었지만, 아이는 기침으로 잠을 잘 자지 못하였고, 결국 토까지 하게 되었다. 새벽에 아이가 아프면 고민이 된다. 조금만 기다렸다가 아침에 병원으로 데려갈까, 아니면 지금 바로 응급실로 가야 하나. 두 번의 입원 경험이 있었던 우리는 토를 한 후 조금 편히 자고 있는 아이를 보며 응급실은 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판단하였다. 아침, 약을 먹어도 증세가 나아지지 않아 조금 더 큰 병원으로 가봐야겠다고 결정했다. 우리가 걱정되는 건 혹시나 폐렴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입원이 가능한 어린이 전문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 보기로 하였다. 그리고 하루 대기 끝에 입원이 결정되었다.




입원, 26 x 35cm, Digital Painting, 2022


어린이 전문 병원은 대학 병원과 달리 1인실에 침대 없이 온돌 바닥으로 되어 있었다. 병실은 남아 있는 게 1인실 뿐이라 선택할 수 없었지만, 1인실, 2인실, 5인실을 사용해 본 경험으로는 돈이 들더라도 아이랑은 무조건 1인실에 입원하는 게 여러 모로 좋다. 기본적으로 입원을 하게 되면 3-4일은 생각하고 들어간다. 처음 병실에 들어갈 때도 그 정도 생각하고 짐을 꾸렸다. 하지만 아이의 상태가 나빠져 입원은 길어졌고, 결국 9일 동안 아이와 작은 방에서 24시간 함께 지냈다.


첫 번째 입원은 아이 50일 때, 갑작스러운 첫 입원 생활에 여러 모로 힘들었지만, 당시 아이는 누워만 있었고 제시간에 분유만 먹여주면 되었다. 물론 아이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받아 너무 울어 목도 쉬고 했지만, 그럼에도 잠을 더 많이 자는 때였다. 또한 아이를 많이 안아 줘야 하는 힘듦이 있었지만, 그것은 단순히 내 몸만 힘든 것이었기 때문에 감내할 수 있는 것이었다. 두 번째 입원은 몇 달 전, 탈수로 입원을 하였다. 치료가 그리 길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가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지기 시작할 때쯤 바로 퇴원할 수가 있었다.


아이는 한창 유행하고 있는 바이러스 3가지에 걸려있었다. 하나만 걸려도 힘든데, 3가지 바이러스가 몸속에 있었다니 약을 먹어도 잘 호전되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다. 아이 감기가 오래되면서 나도 심한 목감기와 콧물감기가 찾아왔다. 이번 감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아이 입원하기 전 4일 치 약을 챙겨 병원에 들어갔다. 길어진 입원생활로 나의 약은 똑 떨어졌고, 다행히 입원 보호자에 한하여 어린이 병원에서 진료를 볼 수 있게 해 주어 약을 3일 치 더 지어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약의 부작용인지 새로 처방받은 약을 먹고, 난 꼬박 하루를 제정신으로 있을 수 없었다. 몸은 자꾸 처지고, 한없이 가라앉고, 정신은 몽롱하여 아이의 말과 행동에 바로 반응하기도 힘들었다. 입원 생활로 지칠 대로 지쳐 있었던 아이는 반응조차 잘해주지 않는 나로 인해 폭발하였고, 원망과 짜증을 모두 나에게 풀어내었다. 난 하루 약을 먹고, 바로 약을 끊어 버렸다. 빨리 내가 나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약을 먹었지만, 그 약으로 인해 아이 돌봄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 약을 먹지 않고 천천히 낫는 방법을 택하였다. 아이는 입원하면서 아이 입장에서 알 수 없는 무서운 검사들을 받았고, 자신을 불편하게 하고 아프게 하는 사람들이 계속 왔다 가는 불안한 상황에 기댈 사람은 오직 엄마뿐이다. 내가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반응해주고, 또 반응해주는 거였다. 하지만 내가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잠시 모든 걸 다 놓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었던 그 잠시라고 생각했던 그 시간, 그 시간은 아이에게는 잠깐이 아니었다. 아이는 잠깐의 틈도 허용하지 않았다. 몸과 마음이 약해져 있던 아이는 특히나 더 24시간 관심과 집중이 필요했다.


엄마에게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모든 감정들을 제로로 만들어 아이에게 쏟아부어야 하는 에너지를 최대로 만들어야 한다. 그 에너지가 나오지 않으면 어쩌지.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잠시 그 이름을 벗고 싶었다. 잠깐만 외출하고 오면 다시 에너지를 얻어 아이랑 함께 있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럴 수 없기에 아이가 잠이 들면 난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그 시간은 엄마라는 이름에서 벗어나 '옛날의 나'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하지만 부족했다. 내가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은 되도록 빨리 이 공간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것, 퇴원을 빨리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치료에는 시간이 필요했기에 예정보다 딱 하루만 이르게 퇴원해 줄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온 후 아이는 안정을 되찾았다. 작은 온돌방에서나 집에서나 엄마랑 있는 건 똑같은데 아이는 집에서 무척 안정적이었다. 입원 당시 돌아보면, 아이가 아닌 내가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무너졌던 것은 아녔을까. 몇 번의 입원 생활로 입원 생활의 힘듦은 잘 알고 있었다. 아이의 방학이 끝나면서 시작된 아이의 감기, 그리고 나의 감기. 그런 상태로 결정된 입원. 조금만 힘내자는 생각으로 들어갔던 병원은 예상치 못하게 길어졌고, 나의 몸 상태는 더 나빠졌다. 이것만 지나면, 이것만 지나면 하면서 버텼던 것들이 끝이 보이지 않았고 결국, 나의 멘탈에는 균열이 일어났다. 지침에 표정은 굳고 반응은 느렸던 나, 그런 엄마를 마주하는 아이는 크게 불안을 느꼈을 것이다. 아이를 위해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지만, 한번 무너진 마음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좋지 못한 생각들은 내가 그 작은 온돌방을 벗어나야지만 안정될 것만 같았던 것이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아이와 함께하는 삶에 대해 생각했다. 아이와 함께 삶을 지내기 위해선 먼저 내가 중심이 잡혀 있어야 한다. 특히 유아기의 아이는 주양육자의 작은 표정, 손짓 하나에도 민감하기 때문에 아이와 함께 있을 땐 더더욱 중심을 잘 잡고 있어야 한다. 이번에는 간신히 잡고 있었던 그 중심이 깨졌던 것이다. 살면서 이런 일이 다시는 없을 거라고 장담하지는 못하겠다. 그럼에도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나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아이와 내가 가장 안정적이고 잘 지내던 때를 생각해 보면, 아침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씻고, 옷을 입고, 아이가 등원하고,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나는 집에서 시간을 보낸 후, 아이가 하원하고 나면 둘이 집에서 신나게 논 후, 저녁에 아빠와 함께 저녁을 먹고, 셋이 함께 시간을 보낸 후 잠자리에 드는 그런 아주 평범한 하루이다. 내가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최대한 이런 하루를 보낼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이 하루 속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 가족 구성원 모두 잘 먹고, 잘 자는 건강함이 있고, 각자의 사회생활과 가족이 함께하는 생활이 있다.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만은 않은 그런 일상, 그런 일상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우리 가족이 함께 행복한 삶을 지내기 위한 기본적인 방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일상을 위해, 아프지 말자. 잘 먹고 잘 자고 조심하고 조심하여 우리 모두 아프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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