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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림 Feb 05. 2022

갑오징어 짬뽕

남편과 함께 한 매운 점심

<갑오징어 짬뽕>, 27 x 35cm, Digital Painting, 2022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와 함께 외식을 한다는 건 힘든 일이었다. 일단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려면 기저귀, 물티슈, 얇은 요, 분유, 분유 물, 젖병, 가재 수건, 물티슈, 여벌 옷, 장난감, 간식은 기본으로 챙겨야 했고, 편리한 주차를 할 수 있는지, 기저귀를 갈 수 있는 화장실이 있는지, 유아차를 밀 수 있는 공간이 나오는지, 아이가 울어도 어느 정도 이해해 줄 수 있는 공간 인지 등을 고려하여 외식 장소를 선택해야 했다. 이것저것을 고려하다 보면 백화점이나 쇼핑몰과 같은 장소에서 외식을 선택하게 된다. 그래도 아이가 이유식을 할 때까지는 집에서 아이가 먹을 음식을 싸가지고 이동하기 때문에 몰 내에서 우리가 먹고 싶은 음식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유식을 넘어 유아식이 끝난 아이와 외식을 할 때부터는 선택할 수 있는 식당이 이전보다 더 제한적이다. 간이 세거나 날 것, 매운 것은 아직 먹을 수가 없고 여기에 아이의 취향까지 더하면 아이와 함께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몇 가지 되지 않는다.


몇 달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 일어났다. 평일에 남편이 점심을 먹고 회사에 출근한다고 한다. 아이는 어린이집에 가고, 남편과 나 둘만 점심을 먹으면 된다. 우리는 아이가 있을 때 먹지 못하는 메뉴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몇 가지 후보를 선정한 후, 우리가 선택한 음식은 갑오징어 짬뽕. 남편 지인이 추천한 집으로 한 번은 가야지 했지만 드디어 이번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음식점에 들어가자 아직 이른 점심시간이었음에도 꽤 많은 테이블에 사람들이 있었다. 갑오징어 짬뽕을 파는 집이라고 해서 중국집으로 생각했었는데, 갑오징어 위주로 메뉴가 구성되어 있었다. 맵지 않은 짜장면과 탕수육이 있었지만, 간이 센 것과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우리 아이는 이곳에 같이 왔더라면 맨밥만 먹다 가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사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면 배달시키거나 혼자 점심을 먹을 때 사 먹거나 혹은 해 먹으면 된다. 하지만 혼자 음식을 먹는 것과 남편과 둘이 먹는 것은 또 다르다. 아이와 함께 식사를 할 때면 누군가 한 명은 아이를 챙겨야 했고, 그 사이 다른 한 명이 밥을 먹었다. 한 명이 밥을 다 먹고 나면 교대로 아이를 챙기고 나머지 한 명이 밥을 먹는다. 아이가 혼자서 어느 정도 밥을 먹을 수 있을 때엔 아이도 부모와 함께 하고 싶어 한다. 우리 둘이 대화를 하고 있으면 아이는 심통을 내며 자신에게 관심을 갖게 하는 행동이나 말을 한다. 이건 비단 식사할 때만이 아니라 그냥 함께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말을 하지 못할 정도로 어렸을 땐 오히려 남편과 둘 만의 대화를 할 수 있었는데, 점점 아이가 크면서 아이는 셋이 함께 대화하기를 좋아한다. 우리 둘이 대화를 좀 하려고 하면 아이는 한 사람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 자신이 함께 할 수 없으면 한 사람만이라도 자신에게 집중하게끔 하려는 것 같았다. 아직 아이는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누군가 함께 상호작용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을 때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러다 보니 다른 누구보다 남편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만,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을 때도 있다. 남편과 둘만의 시간을 억지로 만들어 보자면, 아이를 재워 놓고 그 시간에 맛있는 것도 먹고 서로 대화도 하는 것인데, 사실 쉽지 않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나면 우리 둘 다 아이와 함께 자기 바쁘다. 어쩌다 아이를 재우고도 잠이 들지 않았다 해도 둘이 모두 그러기는 쉽지 않다. 적어도 누구 한 사람은 아이와 함께 자고 있다. 그렇기에 이렇게 낮에 아이 없이 남편과 단 둘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이런 날은 특별하다. 음식점을 선택할 때도 다른 제약 없이 오로지 먹고 싶은 맛있는 음식으로만 선택할 수 있고, 식사를 하며 남편과 편하게 대화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 없이 둘만 있는 시간. 특별한 대화가 이어질 줄 알았는데, 우리 대화의 90% 이상은 아이 이야기였고, 나머지는 갑오징어 짬뽕, 날씨 이야기와 같이 그저 그런 내용들 뿐이었다. 앞으로 아이가 크면 둘만 식사하는 날이 많아질 테고, 아이가 더 많이 크면 셋이 함께 밥을 먹는 시간도 현저히 적어지겠지. 나와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아마도 훗날 아이와 정신없이 먹었던 지금의 식사 시간을 그리워할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것이 일상이기에, 맛있게 매운 갑오징어 짬뽕과 아이와 떨어져 있음에도 아이 이야기만 하는, 그런 심심한 대화가 있는 오늘 같은 날이 앞으로 종종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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