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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집사의 하루

나의 작은 생명들

by 박유리





9월 말 어느 하루,

여름 동안 우리 집 베란다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뿌리가 약해 제 힘을 다하지 못하고 시들어간 아이도 있었고, 무더위에 짓물러 끝내 떠나보낸 아이도 있었다. 하루아침에 생기를 잃는 모습을 바라볼 때면, 마음 한쪽이 함께 꺼져내리는 듯 아팠다.


그런데 그 속에서 의외로 더 잘 자란 아이들도 있었다. 마치 열대 지방에서 온 듯, 뜨거운 햇볕과 습기를 제 집처럼 받아들이며 푸르게 뻗어 나갔다. 다른 아이들이 지쳐 있을 때 오히려 반짝이며 살아나는 모습이 놀라웠다.


식집사의 하루는 늘 이런 배움으로 가득하다. 누군가는 힘겨운 계절 앞에 주저앉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같은 계절을 기회 삼아 더 깊이 뿌리를 내리고 푸른 잎을 키워낸다. 같은 환경에서도 이렇게 다른 길을 택한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베란다를 오가며 시든 잎을 떼어내고, 화분의 자리를 바꿔주고, 새순을 쓰다듬는 동안 나도 모르게 위로를 받는다. 식물들은 말없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살아가는 길은 한 가지가 아니야. 너도 너만의 리듬으로 자라면 돼.”


그 말을 마음에 담으며 오늘 하루를 마무리한다.


봄에는 드라세나들이 베란다를 가득 메우고 있었는데, 여름의 무더위를 이기지 못해 많이 짓물러 죽어버렸다. 텅 빈 화분들을 바라보며 마음이 허전했지만, 그 자리에 스킨답서스를 올려두었다. 그러자 이 아이들은 흙을 만나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잎을 펼치며 자리를 채워갔다. 사라진 자리를 다시 채우는 초록빛의 힘, 그것이 바로 식물이 주는 또 다른 위로였다.


옆에서는 레몬트리들이 여름을 이겨내고 제법 키가 자라 있었다. 처음에는 가녀린 줄기였는데, 지금은 단단한 줄기를 세우고 새로운 잎을 내고 있다. 싹을 틔우고 잎을 키워가는 과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해졌다. 작은 씨앗에서 시작된 나무가 이렇게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내 삶 속에서 희망이 자라나는 것을 보는 것과 같았다.



글: 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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