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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상민 Apr 01. 2019

3. 가티의 등, 가티의 정신

스가 아쓰코의 <밀라노, 안개의 풍경>을 읽고

<밀라노, 안개의 풍경>, 가티의 등


자유롭고 열정 넘치며 유쾌하고 친구를 위하는

멋있는 친구였다, 가티는.


직장 내에서의 갈등, 이직 등으로 받는 스트레스

가티는 의심이 많아지고 폐쇄적으로 변고,

결국 그는 맘고생 끝에 알츠하이머 병을 얻게 된다.


친구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해실 해실 웃는 가티의 모습은 유쾌하지 못했다.


기억 속 가티는 이제 없다


치매에 걸려 유아기 시절로 돌아간 가티의 모습은

그동안 가티가 보여준 믿음직한 모습과 달랐다.

저자가 알던 가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친한 친구실질적 죽음은 갑자기 다가왔다.

망가진 친구의 모습을 보는 건 힘들 것이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갓난아기가 되어버린

가티는 이미 사회적으로 죽은 상태나 다름없다.

저자가 힘들 때마다 우직하게 조언해주던

듬직한 가티의 등은 힘없이 굽어버렸다.



상실감마저 잊을 수 있을까


듬직한 조언자이자 친구를 잃어버린 저자의 마음,

복잡 미묘했을 것 같다.

누구보다 해맑은 가티의 어린아이 미소를 보며

저자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힘들었던 가티를 도와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친구를 잃게 되어 울적하고 슬픈 마음,

완전히 다른 친구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이질감,

여러 감정이 교차했을까?


분명한 건 친구를 잃은 상실감만큼은

저자의 마음을 아릿하하지 않았을까.



증가하는 정신적 죽음의 비중


비록 가티가 육체적으로는 아직 살아있더라도,

정신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가티의 상태에

내가 '죽음'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정신적인 측면이 육체적인 측면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의료시설과 사회기반시설의 발달로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의 환경이 크게 개선되었고

평균수명도 상당히 증가하였다.

정신적 죽음보다 훨씬 가까웠던 육체적 죽음은

어느새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정신적 죽음은 반대로 어느새 다가왔다.

현대인의 고독, 소외, 우울은 심각한 수준이다.

개인이 체감하는 스트레스의 정도가 치솟으면서

정신적 죽음이라는 생소한 형태가 등장했다.


정신적 죽음은 간과될 요소가 아니며,
육체적 죽음만큼의 비중을 지니게 되었다.


소중한 사람을 보내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힘들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마찬가지다.

정신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요즈음,

주위를 좀 더 둘러보고 따뜻한 말 한마디 더 던지며 서로를 돌봐주는 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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