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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상민 Apr 21. 2019

순진한 유토피아를 꿈꾸자

프레드릭 배크만의 <베어타운>을 읽고


한적한 시골마을인 베어타운

이름처럼 곰 같은 우직함을 지닌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아가는 마을이다.

과거 준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눈부셨던

베어타운 아이스하키 팀은 오랜 부진을 겪었다. 준결승전에서의 달콤한 승리와 함께

재도약을 준비하던 아이스하키 팀,

사건은 그날 밤 파티장에서 벌어졌다.

베어타운 최고의 에이스인 케빈은 그들만의 축하파티 자리에서 단장의 딸 마야를 성폭행한다.



따뜻한 작가, 배크만


이 소설은 마야의 성폭행 사건을 둘러싸고 인물들의 행동과 심적 상태를

자세하게 묘사하면서 전개된다.

여러 인물의 입장으로 바뀌어 이야기하는

배크만 특유의 모자이크식 서술 방법은

인물 개개인의 성격과 이야기를

생동감 있게 드러낸다.

소설의 주인공에 온전히 폭 빠지기 어려우나,

주인공뿐만 아니라 등장인물 모두를 챙기는

그의 세심한 배려의 글쓰기는

'따뜻한 작가'라는 말을 절로 떠올리게 한다.



등장인물을 살리는 치밀한 묘사


배크만의 글쓰기 방식은 따뜻하기만 하지 않다. 기막히게 치밀하다.

빈에 대한 그의 묘사는

케빈의 내면을 심도 깊게 보여준다.

베어타운 최고의 재능이자, 미래가 촉망되는 아이스하키 선수인 케빈은 동경의 대상이다.

같은 아이스하키 선수에게도, 여학생들에게도, 어딜 가나 부러움과 존경의 시선을 받는

케빈은 결점이 없어 보였다.

아이스하키 팀의 구심점을 담당하는 그를

누가 미워할 수 있을까.

배크만은 그러한 배경 속에서

케빈의 대사를 통해 케빈의 성격을 드러낸다.

마야를 짝사랑하는 아이스하키 선수 아맛에게 마야에 대해 물어보는 장면, 마야에게 추파를 던지는 장면 등이 흡인력 있게 다가와 몰입도를 유지시켰다.

처음에 내가 생각했던 케빈의 이미지를 수정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인물을 더욱 자세하게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었다.

그것이 배크만이 의도한 바가 아니었을까.

이러한 과정 때문인지 자칫하면 진부할 수 있는 주제를 독특하게 풀어나갔다.



갈등 속 정치적 판단


다비드와 수네, 페테르의 대립 구도는

이해관계얽힌 사람들의 정치적 판단을 보여준다. 다비드는 범죄자인 케빈을 옹호하고 그들이 그동안 쌓아온 것들을 지키려 한다.

페테르의 행동을 정의구현이 아닌

개인적 수라고 깎아내린다.


수네는 다비드에게 반대로 생각해보라고 권유한다.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겪고 있을 아픔을 이해해보라고 호소한다.

평생 자신이 쌓아 올린 팀일지언정,

항상 팀이 우선이라고 살아왔던 수네는

과감하게 팀을 포기한다.


인물들은 자신의 이해관계와 감정을 바탕으로 선택하고 행동한다. 개인의 우선순위가 각자 다르기에 자신의 생각을 바탕으로 '편을 가르는' 선택은 일종의 정치적 선택으로 보인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집단을 형성하여 권력을 형성하려는 과정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꿈꿀 수 없는 현실이여


"하키와 정치는 분리되어야 한다."

하키팀 단장 페테르는 그렇게 생각했다.

순진무구한 남자의 생각과는 달리

현실은 녹록지 않았고,

하키와 정치는 분리될 수 없었다.

하키 팀을 둘러싼 후원자들과 학부모들,

예산 문제 등 정치적인 요소를 제거할 수 없었다.


페테르의 순수함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상적인 상황은 페테르의 생각이 아닐까.

하키가 스포츠로서 주변 정치적 요소의 개입 없이, 순전히 스포츠 자체로 즐길 수 있다

그보다 나은 상황은 없을 것이다.


이상적인 꿈을 꾸는 자를 비난할 수 없다.

그러나 그의 그러한 순수함이 안일함으로 변모하여 끔찍한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이상적으로 꿈만 꾸며 현실을 무시하는 행위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늘어놓는 몽상가에 불과하다.

정치적 요소 등의 현실을 인지 상태에서

이상적인 상황을 향해 노력하는 자세 중요하다.


평소 이상적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을 꿈꾼다고 한다.

그러나 이상적인 상황은 최고의 상황이다.

최고와 최선의 상황을 고려조차 하지 않고

막연한 현실의 잣대를 들이대기만 한다면

좁은 시야와 제한된 선택 속에서

벗어날 수 없지 않을까?

다양한 측면을 고민하고

두리뭉실한 현실을 인식하려는 시도가 동반될 때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순진하게 꿈꾸고 치열하게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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