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이 닿는 곳

by 영주

요즘은 선물하기 참 편리한 세상이다.

모바일 메신저와 연계된 페이지에서 고르고 결제하면 알아서 알림 메시지까지 보내주고, 수신자가 직접 옵션을 선택하거나 주소지를 변경할 수도 있다니 놀랄 노자다.


아날로그 시대에서 태어나 디지털 혁신을 겪은 사람이지만 여전히 아날로그 감성을 좋아하는 편이라 마음을 전하기 위해 선물을 고르고, 사러 갔다가, 짧은 메시지를 적어 얼굴을 보고 직접 주는 과정이 생략된다는 현실이 조금 아쉬운데.. 아이러니하게도 요즘은 이 문명의 발전과 디지털의 편리함을 누구보다 잘 활용하는 사람이 되었다. 아마 결혼을 하고 살던 곳을 떠나 멀리 터를 잡으면서 선물을 줘야 할 이들 대부분과 물리적 거리가 생겼고 직접 전해 줄 기회가 사라지니 원격 선물하기 기능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를 요즘.


이러나저러나 선물 주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요즘 부쩍 선물하는 일이 지난하게 느껴진 적이 많았다. 이미 대부분의 품목을 주고받은 이들과는 '줄 것이 마땅치 않아'졌고 견문과 경제력을 갖춘 나이가 되다 보니 '아무거나' 주기에도 쉽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인데 설상가상 유부녀가 되니 신경 쓸 것, 챙길 것이 곱절이 되어 가끔은 친구의 생일조차 까먹기도 한다. 오지랖이 넓어 주변 사람 잘 챙기기로 유명했던 내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는데!라는 충격도 조금.


급하게 친구의 생일 선물을 골라야 했던 날, 도무지 선물 아이템을 고르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내게 동료가 매년 선물 카테고리를 정해보라는 꿀팁을 선사했다. 그래서 당분간 샤워 제품 카테고리에서 각종 선물을 지인들에게 보냈었는데 이게 제법 괜찮은 방법이라 심리적 불편감이 조금 줄어들 수 있었다.


작년 가을 친구가 단아한 그릇 세트를 선물해 주었고 함께 적힌 카드에는 센스와 위트를 모두 겸비한 짧은 문구가 적혀있었는데 그것은 선물하는 일에 대해 부담과 어려움을 느꼈던 내게 큰 울림이 주었다.

"잘 먹고 잘 살 때 요긴하길"이라는 글귀였는데 이토록 감명받았던 이유는 6년 전 나의 청첩장 메인 카피였던 <잘 먹고 잘 살자>는 문장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응원해 준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 짧게 설명하자면 잘 먹고 잘 살자는 글귀는 내가 결혼을 통해 지향하고자 했던 삶의 '추구미'같은 것이었다. 초예민+불안핑이던 내가 신랑과 연애를 하며 잘 먹고, 잘 자고, 잘 웃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을 느낄 때마다 행복이란 게 다른 것에 있지 않다는 생각을 했고 그것이 정녕 결혼이 주는 가장 큰 성취라면 앞으로의 인생을 걸어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렇게 단조롭지만 다부진 다짐을 청첩장에 적었고 결혼식날 많은 이들 앞에서 맹세했다. 오로지 더 평온하고 안정적이며 안락한 삶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살겠노라고.


6년이 지나 그 글귀를 다시 보니 문득 나는 그때의 약속을 잘 지키고 있는지, 그들 모두 나에게 보내주었던 기도만큼 잘 먹고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인지 올해 1월 유난히 선물할 곳이 많았던 때에 나는 "잘 먹고 잘 살자"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선물들을 고르며 받는 이들의 안부를 물었고 나 역시 지나온 결혼생활을 통해 그때의 약속에 조금씩 더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릴 수 있었다.


진정성과 진심을 담은 선물이 닿는 곳은 결국 받는 이와 보내는 이의 마음이라는 걸, 아날로그든 디지털이든 방법이 중요하지 않다는 걸 늦지 않게 알게되어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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