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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주 Aug 15. 2022

재활에 힘을 준 말들

허리디스크 환자의 재활일기

불과 일 년 반 전 나는 양말 한 켤레를 신는 일도, 땅에 떨어트린 볼펜을 줍는 일도 도움이 없으면 해낼 수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은 제법 속력을 내어 5분간 뛸 수 있을 정도로 좋아졌다.


약 15개월 동안 비가 철철 오는 날을 제외하고 단 하루도 빠짐없이 30분 이상을 걸었고 이따금 근력운동을 했으며 용기를 내어 필라테스 수업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매일매일 즐겁지만은 않았고 여전히 일을 마치고 돌아와 걷고, 운동을 하루도 빠짐없이 해야 한다는 강박은 이따금씩 나를 지치게 한다.  

이런 날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오늘 하루만 쉬자고, 혹은 오늘은 조금만 해도 될 것 같다고 끊임없이 내 엉덩이와 등을 바닥에 붙여놓으려 할 것이다.  며칠 뒤의 또 주저앉고 싶을 나를 위해 적어보는 '재활에 힘을 준 말들'



몸은 영혼을 담는 그릇

드라마 <미생>에서도 비슷한 대목이 나온다: 이루고자 하는 바가 있다면 체력을 먼저 길러라.

그만큼 몸은 마음의 시발점에 꽤 영향을 미친다. 허리뿐만 아니라 두통이나 치통에도 사람은 쉽게 예민해지는 것과 같다. 반대로 간밤에 꿀 같은 숙면으로 바이오리듬과 컨디션에 최고인 날은 골목 슈퍼 주인에게도 안녕을 물을 만큼 좋은 에너지를 발산하게 된다.


퇴원 후 몇 주간은 신랑이 퇴근 후 집으로 오기 전까지는 혼자서 밥을 차려먹는 일이 마치 건국과 같은 수준의 난이도였다. 웃는 얼굴로 신랑의 출근길에 인사를 고한 뒤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목놓아 울던 시기가 바로 이때였다. 몸에 균열이 가자 마음에도 역시 빈틈이 생긴 것이다. 당시 내 영혼은 가난했다.


[나의 재활 일기: 내일은 더 잘 걷기로 했다]에 언급한 것처럼, 문득 투명한 유리막이 갇힌 기분이 들어 그날로, 그리고 오늘까지 빠짐없이 스트레칭-걷기-근력운동을 한 것이다. 나의 영혼이 병들어 간다면 그것을 담고 있는 몸을 증진시켜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던 것 같다.


어느 날, 허리 컨디션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던 아침 신랑이 했던 말이 뇌리에 남아있다.

"기분 엄청 좋아 보이는 게 너 허리가 안 아프구나?"

물론 몸이 건강하고 컨디션이 좋은 날에 무조건 기분이 좋다는 공식이 성립되는 것은 아니지만 감정의 시작점이 마이너스가 아닌 0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일상을 꾸려나가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임을 한 번쯤 '컨디션 난조로 기분 최악'이라는 단어를 써본 현대인이라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태도가 업무다.

나는  말의 구조를 '자세' '재활'이라는 단어로 치환했다.  생각을 갖게  것은 우연한 기회였는데 친구와 안일한 업무태도를 가진 직장동료를 씹던 중에 번뜩인 아이디어(?)라고   있다. 재수 없어 뒤에서 씹었지만  동료에게  일만큼은 고마워해야겠다.

무튼간에 '자세가 재활이다'는 말이 머릿속에 떠오른 건 며칠 전 필라테스 강사가 내 걸음걸이를 보며 '회원님 허리디스크에 무지 안 좋은 자세인 거 알고 계세요?'라는 말을 들어서이기도 하다.


나는 요추간판 탈출증을 가지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허리 디스크 환자이다.

설명하면 척추 뼈와 뼈 사이의 구조물인 '디스크'가 틀어졌다. 주원인은 잘못된 자세에서 비롯된다고 하는데, 강사의 말을 빌어 설명하면 나는 근본부터 글러먹었다는 말이었다. 오 마이갓.. 달아오른 얼굴을 감추지 못했지만 걷는 걸 다시 배워볼까요? 라며 친절히 웃는 강사의 제안에 수줍게 오케이하고 배운 바른 자세 꿀 팁은 의외로 어려웠다.


a. 허리를 활처럼 휘는 것은 바른 자세가 아니다.

    대신 정수리 끝에 끈을 달아 하늘에 고정시켰다고 상상하고 상체를 위로 들어 올려야 한다.

b. 어깨와 날개뼈에도 눈이 달렸다.

    그 눈은 항상 위도, 아래도 아닌 정면을 바라본다고 생각한다.

c. 뒤꿈치는 땅을 좋아한다.

    일상에서 또는 걷기 운동을 할 때 뒤꿈치가 먼저 땅에 닿게 해 주면 좋다.

d. 엉덩이는 부스터다.

    엉덩이에 힘을 주고, 허벅지 뒤쪽 근육이 긴장할 수 있도록 힘을 주면 허리에 부담이 덜 간다.

e. 골반은 몸의 수평계.

    두 번째 발가락이 11자를 향하게 하면 골반 균형이 잡혀 올바른 자세에 도움이 된다.


고백컨데 아직도 의식하지 않으면 쉬이 실행하지 못하지만, 잊지 않기위해 이렇게 적어두는 자세 또한 재활의 일환이 될 수 있으리라.




허리디스크에 완치는 없다.

하다못해  치료제도 개발되었다는 말도 있는데  나의 요추간판은 척추 사이를 탈출해도 돌아올  없나요? 절망뿐인 말이지만 이것이 주저앉아 쉬고 싶은 나를 다독여준  반대급부처럼 '완치가 없으니 천천히 나아지면  '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많은 전문가들은 허리디스크는 약도, 수술도 완전한 치료법이 아니라고 한다. 다만 꾸준한 관리와 올바른 자세와 이따금의 조치들이 겹겹이 쌓이다 보면 일상 회복은 물론 일반인 생활이 가능하다는데 지난 15개월 동안  말은 마치 종교단체의 말씀과도 같았다. 하지만  전과 지금의 내게 생긴 신의 긍정적 변화가 헛된 맹신이 아님을 깨닫게  주었기에  절망적인 교훈을 바탕삼아 나대지 않고 꾸준하고 성실히 하루하루, 자식새끼  챙겨주듯 재활의 씨앗을 심어줄 예정이다.







+ 요 근래 골반 균형이 뒤틀린 느낌이 많이 들어 적어두는 메모.

<힙 브리지 자세>

여전히 다리 꼬는 습관을 쉬이 고치지 못하고 있어 유달리 업무 집중도가 높았던 날이면 어김없이 골반이 틀어진 느낌이 난다. (집중하면 무의식적으로 다리를 꼬아버리기 때문에)

그런 날엔 힙 브리지, 하프 닐링 같은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면 골반의 뻐근함이 조금 해소된다.


<하프 닐링 자세>

힙 브리지를 할 때에는 허리에 부담이 가지 않도록 천천히 날개뼈부터 엉덩이 순서로 몸을 분절시켜서 들어 올려야 한다. 엉덩이 힘으로 골반을 하늘로 뻗는다고 생각하고, 양쪽 골반이 평행이 되도록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효과적이다.

하프 닐링 자세를 취할 때에는 엉덩이가 뒤로 빠지지 않도록, 척추가 활처럼 휘지 않도록 일직선으로 몸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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