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멋짐이 지금은 무례하게 느껴지는 이유
무례한 건 약한 사람이 강한 척하는 것이다.
-에릭 호퍼-
10대였던 나는 시니컬한 사람들이 멋있어 보였다.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슬리퍼를 질질 끌며 학교 복도를 걷던 친구들, 교실 한쪽에서 시큰둥한 표정으로 창밖을 보며 무심하게 한 마디 툭 던지던 그 아이들이 괜히 어른 같고, 뭔가 있어 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춘기 특유의 ‘세상에 휘둘리지 않는 멋’을 그런 모습에서 찾고 있었던 것 같다.
당시엔 누군가의 말에 “내 생각엔 그건 별로야”라고 말하는 용기도 멋져 보였다. 다수가 찬성하는 분위기 속에서 혼자 반대 의견을 내고, 다 함께 웃고 있는 자리에서 혼자 진지한 표정을 짓는 사람이 더 깊어 보였다. 다 같이 참여하는 학교 체육대회에서도 “공산주의도 아니고, 무조건 참여해야하는 그런 게 어딨어?”라며 몰래 빠지는 친구를 볼 땐,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지곤 했다. 그런 태도가 ‘쿨함’이고, 그런 모습이 부러웠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게 보인다. 살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내가 누군가의 엄마가 되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리에 서게 되면서부터 그런 태도들이 더 이상 멋지게만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그건 별로야.” 이 말은, 지금의 나에겐 용기가 아니라 판단처럼 들린다. 누군가가 어렵게 꺼낸 말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정말 중요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그것을 한마디로 ‘별로’라고 덮어버리는 건 표현의 용기가 아니라 타인의 생각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태도일 때가 많다. 솔직함과 무례함은 아주 얇은 선으로 구분되는데, 과거의 나는 그 선을 구분하지 못했다.
전체 행사에 빠지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개인 사정이 있을 수 있고, 강제 참여가 모든 것을 해결하진 않는다. 하지만 다 같이 하는 자리에 함께하는 건 단순한 ‘순응’이 아니라 ‘책임’이고, ‘공동체를 존중하는 태도’ 일 수 있다. 나 혼자 빠지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공동체는 무너진다. 예전엔 그런 자리에 빠지는 게 ‘자기만의 생각을 가진 멋진 행동’처럼 보였지만, 지금의 나는 그것이 사회성 부족으로 보인다.
세상에는 공감이 필요한 순간이 훨씬 많다. 단점을 정확히 집어내는 사람보다, 단점을 감싸줄 줄 아는 사람이 더 성숙하다. 자신만의 논리를 고집하는 사람보다, 남의 입장을 한 번 더 헤아리는 사람이 더 지혜롭다.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 말이 누군가에게 어떻게 닿을지까지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걸 알게 된 건 교사가 된 후였다.
어느 수업 시간, 한 학생이 발표를 했다. 목소리를 꺼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듯, 아주 작은 소리로 발표를 시작했다. 시선은 바닥을 향해 있었고, 손끝엔 긴장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아, 지금 이 아이는 정말 많은 용기를 끌어내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발표 도중 잠시 말을 멈췄을 때, 창가 쪽에 앉아 있던 다른 학생이 말했다.
“하… 도대체 뭐라고 말하는 거야?”
나는 얼른 “조용히 하자”라고 말하며 분위기를 넘겼다. 혹시라도 발표하던 학생이 그 말을 듣고 발표를 제대로 못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고, 방해했던 학생의 말투를 바로 지적하면 오히려 발표하던 아이가 더 움츠러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더 말을 하지 않고, 발표가 계속 이어지도록 했다.
그리고 발표하던 아이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끝까지 작은 목소리로 발표를 이어갔다. 흔들리는 목소리였지만 마지막 문장까지 정성껏 읽어 내려갔다. 나는 그 순간 생각했다. 진짜 멋은 소리를 크게 내는 데 있을 수도 있지만, 목소리가 작아도 끝까지 해내는 데 있는 거라고. 그날 그 학생이 보여준 태도야말로, 조용하지만 단단한 용기였다.
그리고 진짜 멋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태도에 있다는 걸 나는 깨닫기 시작했다. 모두가 불만을 품고 있을 때에도 “그래도 우리 같이 해보자”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모두가 지적할 때에도 “그 친구는 정말 열심히 했어”라고 덧붙여 줄 수 있는 사람 말이다. 나는 이제 그런 사람이 더 멋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꾸미지 않아도, 드러내지 않아도,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해내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짜 쿨한 것 같다. 시니컬한 한마디보다 따뜻한 한마디가, 빠지기보다 함께하려는 노력이 훨씬 더 멋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리고 누군가를 배려한다는 건 고개를 숙이는 일이 아니라, 그 마음을 조용히 들어주는 일이야말로 어렵지만 진정한 멋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는 누군가를 향해 시니컬한 한마디를 던지는 대신, 조용히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모두가 흘려보내는 순간에도, 혼자 묵묵히 남아 끝까지 해내는 사람이 진짜 멋진 사람이라고 믿는다. 멋은 말투에 있는 게 아니라 태도에 있고, 목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그 안의 마음에 있다는 걸 나는 이제,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