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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Nov 03. 2019

마라톤 동호회라는 쿨한 세상


 저녁 7시 40분, 7호선 뚝섬 유원지역 3번 출구 앞.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마라톤 동호회 입성 첫날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 속에서 달리기를 한다는 건 적잖은 용기가 필요했다. 약속 장소로 바로 가지 않고 전철역을 몇 바퀴 배회했다. 최대한 7시 40분이 천천히 오기를 바랐다. 온몸의 용기를 끌어모아 집결지로 갔을 때 내 눈 앞에는 산책을 즐기는 대여섯 명의 시민들만이 보일 뿐이었다. 너무 긴장돼 날짜를 착각했나 보다. 안타까움보다는 안도감이 먼저 밀려왔다. 다시 집으로 돌아갈까 생각하는 순간 공원 곳곳에서 운동복 차림의 사람들이 광장으로 다가왔다. 플래시몹을 보는 듯했다.

몸풀기 스트레칭을 한 후 간단한 회원 소개가 있었다. 무슨 말로 나를 소개해야 하나 긴장하고 있었는데 이름과 나이만 말하면 됐다. 긴장감이 무색할 만큼 자기소개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다행히 오늘이 첫날인 회원은 나 말고도 두 명이 더 있었다. 조금 안도하며 어색한 눈인사를 했다. 우리는 달리는 순서를 배정받은 후 동호회의 달리기 대열에 합류해 한강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함께 달리기 규칙은 간단했다. 3km 지점까지는 줄 맞춰서 천천히 달린다. 그리고 최대 10km까지 자유롭게 달리고 출발지점으로 돌아오면 됐다. 나는 동호회 총무 언니와 나란히 달렸다.  언니는 이미 풀코스 마라톤을 두 번이나 완주한 실력자였다. 함께 달리는 동안 팔을 흔드는 모양, 달리는 속도,  그 외 동호회에 대한 이모저모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언니와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한강을 달리니 무척 상쾌했다. 어느 순간 뛰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내가 신기했다. 혼자 공원을 달릴 때는 발을 내딛는 것조차 고통이었는데 함께 달리면 멀리 갈 수 있다는 말은 진리였다.

첫날이니 3km 지점에서 돌아가기로 했다. 왕복 6km의 코스였다. 내게는 고무적인 기록이었다. 신이 나는 마음과 함께 걱정이 한 가지 떠올랐다. 동회회라면 달리기 후 회식을 할 것 같았다. 대학 동아리에서도, 회사 소모임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무튼 모였다 하면 밥을 함께 먹어야 아름다운 마무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아무리 함께 한 시간을 달린 사이라 해도 처음 보는 사람들과 회식은 생각만 해도 어색했다. 뭐라고 핑계를 대고 집으로 돌아갈까 생각했지만 궁색하기 그지없는 이유들 뿐이었다.

‘야근이라도 한다고 해야 하나...’ 같은...

출발 지점으로 돌아오니 10km를 달린 남자 회원들도 속속 돌아왔다. 각자 준비한 물과 음료수를 마시고 마무리 스트레칭을 했다. 둥글게 큰 원을 만든 회원들은 회장님의 구령에 맞춰 손목 발목을 풀었다. 스트레칭을 마치고 모두 박수를 쳤다. 박수를 친 후 플래시몹을 연상시켰던 집결 광경처럼 각자 뿔뿔이 흩어져 집으로 돌아갔다.

‘세상 쿨한 동호회구나’

낯선 사람들과 어울려야 한다는 걱정을 싸안고 왔던 길이 무색했다. 회식을 빠질 고민 같은 건 처음부터 할 필요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에 앉아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이라는 시시껄렁한 유머를 떠올렸다. 냉장고 문을 연다. 코끼리를 넣는다. 냉장고 문을 닫는다. 동호회에서 달리기를 배우는 방법도 그만큼 심플했다. 동호회에 나간다. 함께 뛴다. 집으로 돌아온다. 그 쿨한 세상에서 발바닥에 불이 날 때까지 달리고 또 달려 서른다섯 살의 겨울을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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