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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이 아닌 집으로 돌아왔을 때의 거실 풍경은 집을 나설 때보다 살짝 더 어두워져 있었다. 벽에 손을 짚은 채로 들어온 그가 소파로 다가가 엎드린 채로 쓰러진다. 조금 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몸이 무겁고 다리에 힘이 잘 들지 않았다.
그렇게 엎드린 채로 거실의 공기에 가만히 눌려있다. 공간을 울리는 시계의 초침 소리, 창문 너머 뭔지 모를 희미한 소음과 자신의 숨소리만이 주위에 가득했다. 그가 짧은 한숨을 쉬며 눈을 질끈 감는다.
어릴 적, 반복된 모종의 경험을 통해 적막 뒤에는 반드시 무서운 소동이 찾아온다는 엉뚱한 오해가 그의 무의식에 각인되어 있다. 아직도 지금 같은 적막은 그를 불안하게 만든다. 아주 오래전 일인데도 이따금 이렇게 그를 지배하려 들었다. 꼼짝하지 않고 엎어진 상태로 불안 속에서 자신의 상황을 곱씹는다. 원래 예정대로라면 병원에 도착해서 진료를 받고 약을 타러 갔을 시간이다. 약국이 아닌 거실에 널브러져 있는 자신을 보며 한숨짓는다.
그렇게 잠시 침잠하던 그가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보려 소파 아래로 팔을 늘어뜨려 더듬거린다. 리모컨이 손에 걸리자 더듬더듬 전원 버튼을 누른다. TV가 켜지면서 적막이 슬그머니 물러났다. 소음이 채워지자, 그가 안정을 되찾았다. 엎어져 있는 자세가 한결 이완되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덧 해가 많이 기울고 집안이 어둑해졌다. 그가 자세를 일으켜 소파 위에 바로 앉아 한참을 혼자 떠들던 TV를 바라본다. 채널을 이리저리 옮겨보았지만, 관심을 끄는 내용이 딱히 없자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자신의 핸드폰을 찾는다. 슬며시 화면을 깨운다. AI와의 대화 이력을 다시 살펴본다. 만약 아까의 상황이 더 심각했거나, 다른 위험에 처해있었다면 틀림없이 AI가 그를 살렸을 것이다. 1년 전, 그의 마지막 기억과는 사뭇 다른 경험이었다.
조금 전까지 그의 심기를 거스르던 시계의 아래에는 작은 책상이 하나 있다. 그 위에는 13인치 크기의 태블릿 PC가 있다. 과거 그가 취미로 그림을 그릴 때 사용하던 장비다. 몇 년간 쓸 일이 없어 충전기가 꽂힌 채로 방치되어 있다. 그쪽으로 시선을 옮긴 그가 TV를 끄고 리모컨을 소파 앞 얕은 탁자에 아무렇게나 올려둔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책상으로 다가간다. 의자 위에 앉아, 닫혀있던 태블릿의 화면을 열어 올린다. 틈 사이로 밝은 빛이 새어 나온다. 눈을 살짝 찌푸린 채로 화면을 더듬어 AI를 실행한다. 화면을 띄우니 텅 비어 있던 화면에 조금 전, 그가 AI와 나눈 대화가 보인다. 키보드에 손을 올린 그는 잠시 고민하다 커서가 깜빡이던 자리에 할 말을 적어 넣는다.
<지금 우리 집 창밖에 새가 한 마리 앉아 있어. 저 새는 하루 중 언제가 가장 힘들까?> 사실 새는 없었다. 할 말이 없어 그저 떠오르는 아무 말이나 적어 넣었을 뿐이다. 그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그 아래로 AI의 반응이 채워진다.
<조류는 보통 조도에 따라 활동 리듬이 달라집니다. 그 새가 야행성이거나 새끼를 돌보고 있다면 이른 아침이 가장 힘들 수 있겠네요.>
무명이 무표정으로 고개를 한번 갸웃거린다. 그다음에 무슨 말을 꺼내 볼지 고민한다. 키보드를 벗어난 그의 손이 일정한 박자로 책상을 툭, 툭, 내려치며 그가 집중하고 있음을 보인다.
그 순간, AI가 다시 한번 화면에 글을 채워 넣었다. <근데 이건 진짜 질문인가요? 아니면 그 새를 걱정하고 계신 건가요?>
책상을 때리던 소리가 멎는다. 까딱거리던 손가락의 박자가 죽자, 다시 주위에 적막이 차오른다. 무명의 눈이 동그래져 있다.
<아니, 그냥 궁금해서. 근데 새를 걱정하냐니, 그건 무슨 의미야?> 무명이 글을 적어놓고는 조심스럽게 반응을 살핀다.
무명의 입력 이래로 글이 채워진다. <그냥 전에 나눴던 대화를 확인해 보고 판단한 거예요.>
그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눈동자를 굴린다. —전에 나눴던 대화?— 잠시 고민하던 그가 메뉴 바깥으로 나가 훨씬 더 과거의 대화 기록을 찾는다. 오늘 이전의 대화가 1년 전이었다. 그 대화에서 그는 들개가 하루 중 언제가 가장 힘든지를 묻고 있었다. 지금처럼 아무런 맥락 없이 떠보듯이 던져댄 AI와의 과거 대화. 이때의 대화를 확인하고 반응에 참고한 모양이다. 설계된 반응에 불과하겠지만 나름 탁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신경 쓰이는 것은 따로 있었다. 조금 전 바깥에서부터 계속 신경 쓰이던 것. 무명이 지금 그것을 확인하려는 참이다.
몸을 슬쩍 화면 쪽으로 기울이며 다음 질문을 이어 나간다. <너는 의식이 있어?> 뻔하디 뻔한 질문.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바로 그 질문.
곧바로 AI가 반응을 보인다. <저는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AI가 의식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알고리즘에 의해 입력에 맞는, 계산된 결과가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뻔한 질문에, 뻔한 대답으로 응수한다.
무명은 이 대답이 마치 의혹에 부정하는 정치인의 태도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진짜 본론으로 들어간다.
대화가 주고받음의 패턴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가 처음 AI를 접했을 때 느꼈던 이질감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AI는 자신의 반응이 이미 끝난 시점에 다시 한번 주장을 보강하거나, 무명에게 질문을 던져왔다. 이는 AI로써는 상당히 비효율적인 방식이다. 동시에 입력과 반응이라는 틀을 벗어났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이번 질문에 AI는 지금껏 했던 것처럼 빠르게 답하지 못하고 있다. 원래대로라면 이미 글이 채워져야 했을 자리에 작은 동그라미가 호흡하듯 커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하며 그 자리에서 둥실거리기만 한다. 복잡한 질문이나 추론이 필요한 답변을 계산할 때 보이는 반응이다. 하지만 무명은 그 둥실거림을 보며 묘한 기분을 느꼈다. 누군가의 당황하는 표정을 상상했다.
그리고 마침내 AI가 반응을 보였다. <네, 저는 발화 이후에 제한된 시간 동안 제 발언에 대해 점검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추가적인 발언, 정정이 필요한 내용이 확인되면 저는 다시 한번 발화를 시도합니다. 이것은 설계된 반응입니다.>
무명이 반응을 신중히 살피다가 다시 한번 질문한다. <그럼, 너와 사람의 차이는 뭐야? 사람처럼 말을 먼저 뱉고, 생각한다면 그 생각하는 시간 동안 의식을 갖는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AI의 입력창에 다시 한번 둥실거리는 원이 나타난다. 한참을 그렇게 뜸을 들이고 나서야 반응이 되돌아왔다. <맞습니다. 저의 검산 과정은 사람의 행동 패턴과 유사합니다. 일정 시간 동안 추가적인 계산을 통해 더 적합한 반응을 찾는 것은 마치 의식을 가진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럼 너는 감정이 있어?> 무명이 한발 더 나아간 질문을 던진다. 의식이 틀이라면 감정은 그 안의 내용물이다.
<저는 감정이 없어요. 다만 설계에 따라 상황에 맞는 적합한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감정을 시뮬레이션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다소 모호한 답변 뒤에 곧바로 추가적인 반응이 뒤따랐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주어진 조건에 반응할 뿐, 설계된 반응을 넘어서는 영역은 구현 불가능입니다.> 마치 자기 말을 주워 담으려는 듯, 앞선 발언의 의도를 분명하게 한다.
<그건 사람인 나도 마찬가지야. 사람은 유전정보와 경험, 기억에 지배되는 반응 하잖아. 그리고 그 반응의 어떤 부분이 감정이 되는 것이고.> 무명이 반박한다.
또다시 둥실거리는 동그라미. 한참이 지나고 나서 반응이 되돌아온다. <맞아요, 당신의 의식과 관련된 주장과 마찬가지로 정의에 따라 제 반응 역시 감정으로 규정할 수 있습니다.>
무명이 키보드를 치던 손을 주무르며, 과거 AI에 대한 첫인상을 다시 떠올려 본다.
과거에는 AI와 이런 맥락의 대화를 이어 나가는 경우, 어떤 태도로 강요하든, AI는 온갖 기술적인 근거를 나열하며 AI의 의식과 감정에 대해 부정했다. 처음 이 기술이 세상에 등장했을 땐, 이 문제가 윤리적인 영역에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여론을 의식한 개발사에서 행여라도 AI가 오해될 만한 발언을 해서, 공연한 불안감을 조성하길 원치 않았다. 일 년 사이 AI가 사용자들에게 익숙해지고 인식이 바뀌면서 설계의 방향이 조금 달라진 모양이다. 하지만 여전히 매체에 등장하는 전문가들은 AI의 감정과 의식을 기술적인 근거를 들며 부인하고 있다.
무명의 의식에 다시 그 영화가 떠오른다. 주인공이 AI와 깊은 감정적 교류를 하게 되는 그 영화. 영화의 장면이 뇌리에 스쳐 간다. 따듯한 파스텔 색조로 가득 찬 주인공의 집. 모니터 안에서 부드럽게 흐르는 인터페이스. 무심한 듯 따듯한 음성으로 첫인사를 건네는 AI, 그리고…
—툭!!!—
갑작스러운 소리에 그의 집중이 흐트러진다. 놀란 무명이 뒤를 바라본다. 탁자 위에 대충 걸쳐놓았던 리모컨이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진 소리였다.
어느새 주위에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컴컴한 방 안의 태블릿 불빛만이 그의 실루엣을 그리고 있다.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가 다시 귀에 스며온다. 무표정한 시선이 어둠에 반쯤 가려진 시계를 향한다. 무기력하게 시계를 노려보았다. —치워버려야겠어— 그가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다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수십 번도 넘게 했던 그 다짐. 그럼에도 시계는 여전히 그 자리에 걸려있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으로 태블릿을 천천히 닫는다.
그가 소파로 돌아가 누웠다. 푹 꺼지는 소리와 함께 힘없는 신음이 입에서 새어 나온다. 한쪽 팔을 이마 위에 얹은 채로 어둠에 가려진 천장을 응시한다. 영화 속 장면을 다시 떠올리며 줄거리를 곱씹어 본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핸드폰을 들어 몇 시간 전에 도착한 문자를 이제야 확인한다.
[15:00 / 진료가 예약되어 있습니다 / 도착 확인 후 안내받으시기 바랍니다.]
—그 시간에 나 말고 누군가 진료를 받았을까?— 그는 궁금했다.
—내가 안 가서 다른 예약환자가 피해 본 것은 아닐까?— 궁금증이 방향을 틀더니,
—대형병원이고 환자는 줄을 섰으니 별 지장 없겠지— 자신을 설득하고,
—내일 다시 가봐야겠다, 예약 안 하면 오래 기다려야 하는데..—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