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 뒤에 숨은 김미소 매니저의 진실
박민희 매니저의 굳은 표정이 밝아지는 것을 본 이후, 유현상 대리는 '진심'과 '공감'의 힘을 굳게 믿게 되었다. '그래, 이거였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면 문제는 해결되는 거야.' 그는 이 새로운 성공 공식을 다른 매니저들에게도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의 눈에 띈 다음 대상은 리* 브랜드 '김미소 매니저'였다. 그녀는 박민희 매니저와 정반대였다. 늘 '완벽한 영업용 미소'를 띤 채, "네, 대리님! 네네네"를 연발하며 유 대리의 말을 가장 잘 따르는 '처럼 보이는' 매니저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 매장 실적 역시 박민희 매니저 매장만큼이나 저조하다는 것이었다.
유 대리는 배운 대로 '공감' 모드로 접근했다.
"매니저님, 요즘 힘드신 건 없으세요? 제가 뭐든 도울게요. 편하게 말씀하세요."
김미소 매니저가 과장된 제스처와 함께 미소를 지었다.
"아휴, 대리님! 역시 대리님밖에 없어요. 알아주셔서 감사해요. 요즘 본사 프로모션이 너무 잦아서 정신이 없네요. 그래도 대리님이 이렇게 신경 써주시니 힘이 납니다!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유 대리는 '진심이 통했다'라고 생각하며 만족했다. 그는 그녀의 미소가 묘하게 차갑다는 것을, 그 높은 톤의 목소리가 '빨리 끝내자'는 신호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한 달이 지났다. 실적 보고서의 숫자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유 대리는 다시 김 매니저를 찾아갔다. 이번엔 그가 분석한 구체적인 '재고 관리법'을 제안했다.
"매니저님, 이 부분은 이렇게 개선해 보면 어떨까요?"
김 매니저의 반응은 이번에도 '폭발적'이었다.
"네네네 대리님! 역시 최고세요. 정말 좋은 생각이네요. 당장 그렇게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유 대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끄덕였다. 유 대리는 이번에야말로 '완벽하게 소통했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김 매니저의 매장 실적은 그대로였고, 그녀는 '노력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유 대리는 깊은 혼란에 빠졌다. '진심'도 통했고, '공감'도 했고, '솔루션'도 줬는데... 왜 박민희 매니저와는 결과가 정반대일까?
그는 깨달았다. 박민희 매니저의 '비난'과 '서러움'은 문제 해결을 위한 절박한 '신호(Signal)'였다. 하지만 김미소 매니저의 '공감'과 '웃음'은 유 대리를 '무능한 관리자'로 취급하며 상황을 통제하려는, 고도로 계산된 '연기(Performance)'였던 것이다.
며칠 뒤, 유 대리는 김 매니저를 회의실로 불렀다. 이번엔 커피도, 웃음도 없었다. 김미소 매니저가 평소처럼 웃으며 들어왔다.
"대리님, 부르셨..."
유 대리가 말을 잘랐다.
"매니저님. 두 달 전부터 '열심히 하겠다', '좋은 생각이다'라고 하셨는데, 바뀐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김 매니저의 얼굴에서 미소가 처음으로 사라졌다.
"아, 대리님, 그게 아니라...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VVIP 고객이..."
유 대리가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부터는 '변명'이 아니라 '팩트'만 말씀해 주세요. 다음 주 금요일까지, 재고 보고서 A양식, 제가 지시한 대로 처리해서 제 메일함에 넣어두세요."
유 대리는 잠시 숨을 골랐다.
"이건 '제안'이 아닙니다. '지시'입니다. 하실 수 있겠습니까?"
김미소 매니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의 입가가 미세하게 떨렸다. 분노라기보다는 경멸에 가까운 표정이었다. 그녀는 유 대리를 잠시 빤히 쳐다보더니, 이내 다시 '표정 관리'를 하듯 말했다.
"... 네. 알겠습니다."
회의실을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은 차가웠다.
유 대리는 깨달았다. 이것이 바로 '채찍'이었다. '진심'과 '공감'(당근)은 관계의 문을 여는 것이고, '명확한 지시'와 '책임 부여'(채찍)는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임을.
그는 '모두에게 공감만 해주는 리더'가 되는 것도 정답이 아님을 깨달았다. 관계는 껄끄러워졌지만, 유 대리는 '일단'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다.
"공감은 문을 열지만, 성과는 원칙이 만든다. 때로는 명확한 지시가 진짜 '돕는' 것이다."
유 대리는 '당근'과 '채찍'이라는 두 개의 강력한 도구를 손에 쥐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쥔 '채찍'이 김미소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아직은 깨닫지 못했다. 그는 그저 이 도구들을 더 잘 다루기 위해, '칭찬'과 '피드백'의 진짜 기술을 배워야겠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곧 그녀의 충격적인 본모습을 마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