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너를 읽는 시간, 나를 쓰는 시간

by 유블리안

#유블리안×은나무 공동집필 입니다.




거실 테이블 위에는 오래된 앨범 하나가 펼쳐져 있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겨울부터, 결혼식을 올리던 봄날까지.
같은 사진 속에 서 있는 두 사람인데도
그 순간을 전혀 다른 온도로 기억하고 있다는 게
언제 봐도 새롭다.


도환 : “세상이 멈춘 것 같았던 날”

나는 그날을 ‘열병’으로 기억한다.
약속 장소 문을 열고 은하를 본 순간,
주변 소음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창가에 턱을 괴고
무심하게 창밖을 보던 모습.
그게 그렇게나 우아해 보였다.
시큰둥한 표정은 ‘도도함’으로,
짧은 대답은 ‘신중함’으로 느껴졌다.

‘놓치면 안 되겠다.’
그 생각이 첫눈에 꽂혔다.

그래서 나는 필사적이었다.
어떻게든 은하를 웃게 만들고 싶어서
묻지도 않은 내 얘기를 흥분해서 늘어놓았고,
그녀가 살짝 웃기만 해도
기분이 과하게 좋아졌다.

헤어질 때 은하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거의 확신했다.
이건 운명이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야… 나 결혼할 사람 만난 것 같아.”

나에게 우리의 시작은
첫 장면부터 결말이 보이는
강렬한 로맨스 영화였다.




은하 : “그저 예의를 지키고 싶었던 날”

나는 그날을 ‘미지근함’으로 기억한다.
주선자의 성화에 못 이겨 나간 자리,
딱 커피 한 잔만 마시고 일어날 생각이었다.

도환이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솔직히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사람 좋게 생겼네.’
그 정도의 건조한 감상뿐.

도환은 말을 참 많이 했다.
쉴 새 없이 질문을 던지고,
내 짧은 대답에도 크게 웃었다.
나는 그저 예의상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의 눈은 약간 부담스러울 만큼 반짝거렸다.

‘이 사람, 왜 이렇게 열심이지…?’
내 마음은 딱 그 정도의 거리였다.

헤어질 때 도환은
아쉬움이 묻어나는 얼굴로 말했다.

“조심해서 가요.”

나는 돌아오는 길에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쁘진 않은데… 내 스타일은 아니야.’
‘애프터 오면 어떻게 거절하지?’

나에게 우리의 시작은
감정 변화 없이 의무감으로 앉아 있었던
조용한 다큐멘터리 같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

이 책은
처음부터 서로 다른 온도로 시작한
두 사람의 기록이다.

한 사람의 뜨거움과
다른 한 사람의 냉담함이
서로에게 부담이 되고,
오해가 쌓여 상처로 번진 시간들.

그럼에도
우리는 조금씩 서로의 결을 배워갔다.
말투를 이해하고, 속도를 맞추고,
생각보다 오래 걸린
마음의 온도를 맞춰가는 일들을.

이제부터 펼쳐질 이야기는
한 사람의 늦은 깨달음이자,
다른 한 사람에게 보내는 뒤늦은 감사 인사다.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진 우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되어가는
작은 기적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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