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환의 시선(유블리안)
영찬이는 나와 같은 00 기업에 다니는 입사 동기이자, 고등학교부터 대학까지 함께 다닌 오랜 친구다. 서로 눈빛만 봐도 지금 기분이 어떤지 알 정도니 말 다 했다. 그래서인지 내 얼굴만 보면 한숨부터 쉬는 날이 많아졌다.
“도환아, 너 요즘 왜 그래? 얼굴에
‘나 외로워요’라고 크게 써져 있어.”
“그렇게 심각해 보여? 나도 노력은 하는데 잘 안 되네. 알다시피 나는 집-학교-도서관 루틴만 돌던 사람 아니었냐. 회사 들어와서도 그 패턴이 계속이네. 진짜 평생 솔로인가 봐.”
영찬은 그런 나를 보며 안쓰러운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소개팅 한 번 해볼래? 내가 다니는 미용실 원장님인데, 진짜 예쁘고 똑 부러지는 분이 있어. 이름이 은하래. 너 <마지막 승부> 알지? 심은하랑 이름 같아. 느낌도 비슷하더라니까.”
“오… 근데 그렇게 완벽한데 왜 아직 솔로야? 성격 좀 센 거 아냐?”
“솔직한 스타일이긴 해. 그래서 좀 오해받을 수도 있지. 하지만 사람은 좋아. 너랑 잘 맞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내가 이미 슬쩍 얘기 꺼내놨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러고는 영찬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잘되면 양복 한 벌 사라.”
이렇게 ‘도환 장가보내기 프로젝트’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약속 장소는 서울 00에 위치한 브런치 카페였다. 생애 첫 소개팅이라 나는 나름대로의 ‘작전’을 세웠다. 유튜브에서 ‘여자가 좋아하는 대화법’을 검색하고, 소개팅 꿀팁 영상을 보며 메모도 했다. 하지만 연습하면 할수록 말은 꼬이고, 머릿속은 하얘지고,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며 괜히 불안해졌다.
지인들에게 조언도 부탁했다.
“적당히 리드하되 너무 나대지 말 것”,
“직진은 좋지만 과하면 부담”,
“초반엔 농담 자제” 등등…
이를 다 외우다 보니 오히려 더 망했다.
할 게 너무 많아진 것이다.
결국 마지막엔 이렇게 결론 내렸다.
‘부딪혀 보는 수밖에 없다. 몰라, 그냥 가보자.’
[약속의 그날]
평소엔 건조한 얼굴로 돌아다니던 내가, 그날만큼은 거울 앞에서 한참이나 서성거렸다. 머리는 짧게 정리하고 포마드를 바르며 모양을 잡았다. 향수도 평소보다 은근하게 더 뿌렸다.
집을 나서면서 스스로에게 계속 멘트 연습을 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아니야, 너무 딱딱해. 조금 부드럽게.”
“만나서 반갑습니다, 은하 씨.”
“아, 이건 또 왜 이렇게 어색해…”
카페에 도착하기 직전, 심장은 얌전히 있으려는 의지가 전혀 없어 보였다.
휴대폰 화면에 비친 내 얼굴은, 분명히 평소보다 굳어 있었다.
‘야 도환아, 진정해. 심장아 너도 좀 가만히 있어 봐…’
그렇게 중얼거리며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그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창가 쪽.
햇살이 비스듬히 내려앉은 자리에서, 턱을 괴고 창밖을 바라보는 한 여자.
은은한 조명 아래 드러난 옆모습.
가볍게 묶은 머리카락 사이로 흘러내리던 잔가닥.
손끝으로 컵을 천천히 돌리는 그 작은 움직임까지.
그 모든 것들이
‘아… 오늘 끝났다’
라는 예감으로 다가왔다.
‘3초 만에 반할 수도 있는 거구나… 이게 바로 그거야?’
나는 최대한 평정심을 가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은하 씨 맞으세요?”
“네, 맞아요.”
단정하고 담백한 대답.
그런데 그 짧음이 은근히 매력적이었다.
“듣던 대로… 정말 미인이시네요. 심은하보다 더 예쁘신데요. 하하…”
입 밖에 나오자마자 바로 후회.
내 심장은 즉시 항의했다.
‘도환아, 제발 정신 차려라. 초면에 무슨 얼평이야!’
은하는 순간적으로 당황한 듯 웃었다.
“… 감사해요. 그런데 초면에 그러시면 좀 당황스러워요.”
그 말마저도 귀여웠다.
난 그 순간 이미 절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다.
소개팅 내내 은하는 짧고 조심스러운 말투였고, 나는 긴장을 숨기려다 보니 말이 많아졌다. 그녀가 가끔 웃으면 그걸로 내 하루가 다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만남이 끝나갈 때, 난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하려 노력했다.
“오늘 즐거웠습니다. 도착하면… 잘 도착했다고 연락 주세요.”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카페를 나서는 순간, 발걸음이 가볍게 공중에 떠 있었다.
숨겨지지 않는 설렘이 자꾸만 얼굴로 올라왔다.
하지만 집에 와서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우니, 이제야 정신이 들었다.
‘아무 말 대잔치에 얼평까지… 이거 큰일 난 거 아니야? 불쾌했으면 어떻게 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쪽은 계속 따뜻했다.
“그래도… 만나길 잘했다.”
오늘의 나는 분명 달라진 표정으로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