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나라를 떠나 새로운 질서를 설계한 사람, 정도전
조직이든 나라든, 판을 주도적으로 짜는 사람은 가장 필요하면서도 가장 먼저 제거되기 쉽습니다.
새로운 궁궐의 위치를 정하고, 경복궁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4대 문의 이름에 유교의 덕목을 새겨 넣고, 심지어 새로운 나라의 법전까지. 500년 왕조를 이어갈 거대한 국가의 밑그림이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도면처럼 쏟아져 나왔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소름 돋는 일입니다.
정도전은 단지 낡은 고려를 무너뜨린 파괴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무너진 폐허 위에 어떤 기둥을 세우고 어떤 지붕을 얹을지, 그 자리에 세울 '새로운 나라'를 완벽하게 계산해 둔 천재적인 설계자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저무는 시대를 보며 함께 슬퍼하는 것은 아닙니다. 앞선 이색과 정몽주, 최영이 붕괴하는 고려를 보며 애통해하고 끝까지 그 기둥을 붙잡으려 했던 사람들이라면, 정도전은 그 균열 속에서 새로운 시작을 가장 먼저 본 사람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 고려의 몰락은 비극이었겠지만, 그에게 그것은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낡은 구조의 철거를 의미했습니다. 오래된 질서를 부정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다음에 올 질서를 촘촘하게 설계하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정도전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 앞에는 늘 두 가지 인상이 함께 따라붙습니다. 하나는 개혁가, 다른 하나는 권력가입니다.
새로운 시대를 꿈꾼 사람인 동시에, 그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권력을 누구보다 가까이 다뤘던 사람. 머릿속 이상을 종이 위의 설계로, 설계를 다시 현실의 제도로 만들려 했던 사람. 그래서 그는 단순한 혁명가라기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고 냉혹한 창업자에 가까워 보입니다.
어느 조직이나 지금 조직의 문제가 무엇인지 누구보다 정확히 짚어내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라는 비전까지 내놓는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런 사람은 조직 안에서 반드시 필요하지만, 동시에 늘 불편하고 위험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판을 엎고 구조를 바꾸려는 사람은 환영받기보다 경계받기 쉽기 때문입니다.
정도전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는 새 나라를 세우는 데 1등 공신이었지만, 동시에 그만큼 많은 적을 만들었습니다. 질서를 바꾸는 사람은 반드시 누군가의 불안을 자극하고, 기득권의 자리를 흔들기 마련이니까요. 비전이 커질수록, 그가 쥔 권력이 막강해질수록 주변의 경계도 그림자처럼 짙어졌습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새 시대를 만든 사람은 그 시대 안에 오래 머물지 못했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먼저 보았고, 혼자 너무 많은 판을 짜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새 판을 짠 사람은 밖에서 볼 때 가장 강해 보이지만, 정작 그 판 안에서는 가장 먼저 견제와 숙청의 대상이 되곤 합니다. 새로운 권력은 함께 세울 수는 있어도, 끝까지 평화롭게 나눠 갖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칼을 맞고 쓰러지던 밤, 어쩌면 그는 자신이 설계한 그 완벽한 시스템이 결국 자신을 밀어낼 것임을 예감했을지도 모릅니다. 정도전은 결국 오래 살아남지 못했고, 그가 세운 나라에서 철저히 지워졌습니다. 하지만 그가 그려놓은 생각과 제도, 그리고 조선이라는 새로운 국가의 뼈대는 500년 동안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사라져도, 구조를 바꾸어 놓은 흔적은 그렇게 깊게 남습니다.
현실에서도 우리는 종종 변화를 가장 먼저 주도한 사람이, 정작 그 변화가 완성된 뒤에는 조직에서 가장 먼저 밀려나거나 잊히는 그런 쓸쓸한 장면을 봅니다.
우리가 왕의 이름 뒤에 가려진 정도전이라는 조용한 이름을 다시 불러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낡은 시대를 무너뜨리고 새 시대의 문을 가장 먼저 열어젖혔지만, 정작 자신이 촘촘하게 설계한 그 찬란한 나라 안에서는 가장 먼저 지워져야 했던, 위대하고도 쓸쓸한 설계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