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가는 것들의 소중함에 대하여
“혼저 옵서예.”
낯설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을 끄는 이 인사말. 제주에 발을 디딜 때 우리를 가장 먼저 맞아주는 목소리입니다. ‘어서 오세요’라는 평범한 인사말이지만, 투박한 억양 속에 섬 특유의 느긋함과 사람의 온기가 스며 있어, 단순한 인사를 넘어 섬 전체가 건네는 따뜻한 환대처럼 느껴집니다.
제주도는 오랫동안 바다로 둘러싸인 고립된 땅이었습니다. 고려와 조선 시대를 거치며 본토와의 교류가 쉽지 않았던 탓에, 육지에서는 시간의 흐름 속에 잊힌 옛말들이 제주라는 섬에서는 ‘살아있는 화석’처럼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학자들이 제주어를 “한국어의 화석”이라 부르는 이유입니다. 실제로 제주 방언에는 고대 국어의 어휘와 문법이 남아 있어, 우리말의 뿌리를 탐구하는 귀중한 열쇠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섬의 언어는 그곳의 자연을 고스란히 반영합니다. 거친 바람을 이겨내고 높은 파도를 넘으며 살아온 이들의 말속에는 숨 가쁜 호흡과도 같은 독특한 리듬이 있습니다. 거친 듯하면서도 여운이 길게 남는 억양은 마치 파도가 바위를 스치며 지나가는 소리를 닮았습니다. 그래서 제주 사람들의 말은 단순한 소통의 도구를 넘어, 바람과 바다와 함께 살아온 섬사람들의 고단한 삶과 강인한 생명력이 함께 녹아있는 ‘세월의 목소리’인 셈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주의 살아있는 역사인 이 언어는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는 표준어에 익숙하고, 옛말을 쓰는 이는 점점 줄어듭니다. 다행히 제주어를 지키기 위한 학술적, 정책적 노력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유네스코가 소멸 위기 언어로 지정해 그 가치를 알리고, 제주도와 학계는 사전을 편찬하며 그 명맥을 잇고 있죠.
여기에 더해,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처럼 대중문화를 통해 제주 사투리가 우리 곁으로 다시 다가오는 것은 무척 반가운 일입니다. 제주의 삶을 배경으로 등장인물들이 가끔 구사하는 구수한 사투리는, 이 말이 박물관의 유물이 아닌 여전히 우리 삶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언어임을 다시금 깨닫게 합니다.
어멍(어머니), 똘(딸), 아방(아버지), 할망(할머니), 옵데강(오셨습니까?), 거메마씸(그렇습니다.)
"혼저 옵서예"라는 말이 여전히 공항 입구에서 우리를 반겨주는 것도, 이 모든 소중한 노력들이 모인 덕분일 겁니다. 사투리는 단순히 어긋난 표준어가 아니라, 한 지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람들의 삶이 오롯이 담긴 ‘고향의 목소리’입니다. 제주 사투리에 귀 기울이는 것은 단순히 낯선 단어를 듣는 행위를 넘어, 거친 바람 속에서도 꿋꿋이 자리를 지켜온 제주의 시간과 마주하는 일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