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15
고등학교 시절 나의 꿈은 독립이었다.
어머니 잔소리를 피해, 엄격하고 규율적인 아버지를 벗어나 자유를 누리고 싶었다. 간절했다. 대학 입학식 참석 뒤 홀로 기숙사에 남겨질 나를 걱정해 눈물 짓던 어머니께 걱정말라며 빨리 내려가시라고 등을 떠밀었다.
자유롭고 멋지게 살거라는 의지와는 달리 나의 스무살 첫 독립은 힘겨웠다.
가장 먼저 몰려온 감정은 허전함이었다.
2인 1실이었던 기숙사 방에 함께 배정된 통성명도 제대로 못한 선배는 몇날며칠 들어오지 않았다.
이쯤에서 엄마가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서며 그만 자라고 소리쳐야 하는데, 뜬눈으로 새벽을 맞이하고 있는 내게 아무도 찾아오는 이는 없었다.
허전하니 심심했고 심심하니 밤시간에 친구들과 어울렸야 했다.
점호시간을 넘겨 벌점을 받은 적도 있었다. 야밤에 기숙사밖 탈출을 시도하다 걸려, 경위서 비슷한 것을 써야했던 기억도 있다.
짜릿하고 재밌었지만, 허전함은 채워지지 않았다. 친구들을 기숙사 방으로 불러모아 침대를 붙여놓고 밤세워 떠들고, 1교시 수업 빼먹기를 밥먹듯이 하고, 주말이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먹고 마셨다.
영양가 있고 맛좋고 깔끔한 집은 뻔한 학생 형편에 언감생심이었고, 주로 라면이나 과자 부스러기를 놓고 교정 잔디밭 등지에서 허접한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지껄이며 소모했다.
인생총량법칙이 존재한다면 대학시절에 내게 할당된 평생의 놀거리를 모두 다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테다.
"이제 그만 경제적으로 자립해라."
대학 졸업 무렵 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당연히 받아들였다. 취직을 한것도 아니고, 모아둔 돈이 따로 있었던 것도 아니고, 부모님이 종자돈을 주신 것도 아니다. 그런데 나는 덜컥 당연히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얼마간은 지원해주시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 플러스, 자존심이 작동한 답이었다.
무 자르듯 경제적인 지원이 끊긴 것은 아니지만 실제 아버지는 지원을 줄여나갔다.
처음에는 매주 보내주시던 용돈을 2주에 한번꼴로 줄였고,
다달이 들어가는 공과금 내역을 보내주시며 이제는 너 스스로 해결책을 모색하라고 하셨다.
보증금이나 월세는 당분간 아버지가 내주겠지만 이역시도 오래가지 않는다 하셨다. 야속했다.
쉽사리 일자리는 잡히질 않았다. 더 큰 문제는 내가 뭘 잘하는지 내가 원하는 직업이 뭔지 모른다는 거였다. 그러니 면접을 봐도 시큰둥한 답변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절실함이 없고 열정이 부족했었다.
물론 하고 싶었던 것은 있었다. 글을 쓰고 싶어 보조작가등을 아르바이트로 하긴 했지만, 그건 생계 수단이 되기 어려웠다. 배고픈 시기를 겪어야 했고, 아버지가 정한 시한까지 정상궤도에 오르지 못하면, 아버지와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 자존심을 걸고 큰 소리를 쳤는데 그럴 수는 없었다.
긍정적으로 승화시켰으면 좋았을텐데, 철부지였던터라 세상에서 위치를 잡지 못하는 데에 따른 불안과 불만의 감정이 차차 부모님께 돌아간다는 데에 문제가 있었다. 세상이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데 부모님은 나를 책임져야 하는 거 아니냐며, 한심한 철부지로 이십대 청춘의 뜨거운 열정을 분출했다. 전화로 아주 당당히 물려줄 재산을 좀 미리 준다고 생각하시면 되지 않겠냐는 투로 내 지분을 요구했던 기억도 있다. 부모님과는 그후 서서히 멀어졌다.
--- 얼마 못가 안 사실이지만 당시 우리집은 보증선 것 등 이런저런 사건사고들이 수년간 겹치면서 가세가 급격히 기우는 중이었다. 타지에 떠나 공부(?)중인 자식에게 그런 얘기를 시시콜콜 늘어놔 방황하게 만들고 싶지 않으셨던 것 같다.
지금 나는 25년 넘게 일을 하고 있고 그 사이 가정을 꾸려 아이를 키우고 있다.
부모입장이 되보니, 자식이 그렇게 당당히 자신의 지분을 요구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성인이 될때까지 키워낸 정성으로도 부족해 성인이 된 이후 자식의 삶까지도 책임져야 한다면 너무 가혹하다.
한편으로 노년에 접어든 내가 자식에게 얹혀 사는 것도 끔직하다는 생각이다.
스스로의 삶은 스스로가 책임져야 한다, 경제적인 것은 더욱.
우리 부모님도 그런 심정이었을 거다.
자식들이 아직 한창 공부를 할 나이들인데, 갑자기 찾아온 이런저런 사건사고로 인해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했다는 사실을 자식들에게 얘기를 하지 못했을거다.
물론 그 시절 찾아온 집안의 어려움이 큰 자양분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멋대로 살았던 삶에 계획과 목표가 들어안게 된 계기였으니깐 말이다. 악착같이 살아남겠다는 생존 본능이 공고해진 시기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차마 집 망했다는 말을 못해, 빙빙 돌려 말해야 했던 부모님의 심정은 어땠을까.
우리 아이가 성인이 되어도 제 밥그릇 챙길 의지가 없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아직 초등학생 티를 벗어나지 못한 아이에게 묻는다. "네게 직업이 갖는 의미는 뭐니?"
아이는 말한다. "생각 안해봤는데. 뭐 꼭 직업이 있어야 해?"
그 말에 즉각 반응한다. "당연히 있어야지. 그걸 말이라고 하니?"
혹시 우리 아이가 나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미리 직업에 대한 준비를 하길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할 수 있다면 칠십 팔십까지 계속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나처럼 우리 아이도 악착같이 먹고살거리는 스스로 책임졌음 하는 그런 마음 말이다. 내가 안그랬으니깐. 너는 그러지 말라는, 자식은 좀 나보다는 나았으면 하는 그런 마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