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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Apr 02. 2024

남편을 향한 욕심, 버립니다

- 힘들었지만 가장 잘한 일

사랑은 말합니다.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늘 웃게만 해주겠다고. 평생 곁에서 너의 편이 되어주겠다고. 

영원할 줄 알았던 사랑은 얼마 못 가 서로를 할퀴고 아프게 합니다.  

맹목적인 사랑이 차차 콩깍지를 벗으며 상처와 고통의 시간을 거칩니다. 

누군가는 그 과정을 통해 더 깊이 가까워지지만 누군가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부부 사이란 이래야 한다는 말이 위기에 놓인 부부에게 먹힐까요. 어떤 좋은 말로도, 극복사례로도 해결되지 못하는 이루 헤아릴 없는 부부사연은 많습니다. 친구에게 말하기 그렇고, 친정엄마에게는 더더욱 말할 수 없고. 그래서 외롭게 혼자서 속앓이를 하고 난 뒤 얻은 저만의 깨달음을 적어봅니다.




남편을 향한 나의 생각이나 바람은 욕심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결혼생활의 절반 이상이 그 생각을 하기까지의 시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저 성실하고 착한 사람인 줄 알았고, 경제적 능력은 없어도 사람을 좋아해 주변에서 찾는 사람 많고 그만큼 성격이 좋다는 방증이니 그것으로도 충분히 외롭지 않은 삶일 거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결혼을 했죠.

하지만 남편은 이기적이었고 우유부단했으며 자존심은 강했습니다.  적당히 숨어 있던 내면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자 저는 실망을 거듭했습니다. 남편은 저에 대해 차갑고 냉정하며 자기주장이 강하다고 맞받았습니다. 상처가 또 다른 상처를 낳는 일상의 연속이었습니다. 


아이가 어려서 제발 일찍 들어오라 남편에게 부탁에 부탁을 거듭했지만 하루이틀 일찍 들어오는 시늉만 할 뿐 밤 12시가 넘어 귀가하기 일쑤였습니다. 사람을 좋아해 누군가 소주 한잔 하자하면 뿌리치지 못하면서 제가 한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여겼습니다. 아이는 울고, 몸은 천근만근이고. 서운하고 화가 났습니다. 무지하게 싸웠죠. 


태어나서 한 번도 홀로 살아본 적이 없어서인지 남편은 오십 중반인 지금껏 시어머님 곁을 떠나질 않습니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삽니다. 딱 한번, 신혼집을 제 직장 가까운 곳으로 구해 살기도 했지만 그때도 일주일에 한 번씩 꼭 시댁을 갔습니다. 결혼 2년이 채 안되어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시부모님 집 근처로 이사를 갔죠. 아이도 봐주시고 얼마나 좋냐고 저를 설득했지만 사실 전 편하거나 좋기만 하진 않았습니다.  


직장생활이 좋은 날도 있고 아닌 날도 있는 거지, 수틀려도 참는 거라 했다가 화를 내는 통에 당황도 자주 했습니다. 자기편을 무조건적으로 들어야 한다는 건 너무 유아적 발상 아닌가라는 제 속마음을 남편이 읽었던 거겠죠. 제가 좀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편이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진짜로 정이 없는 사람은 아닌데 남편에게 매몰차게 거부당한 느낌이었습니다. 대화가 안 된다는 느낌을 받은 순간이었죠. 




출처: 펙셀



십칠 년 결혼 생활의 숱한 곡절들 다 기억이 나진 않습니다. 

그때 그랬던 것 같은데.. 아 맞아 그땐 이런 일로 싸웠지. 그땐 왜 그랬었지?라는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으며

요약한 남편과 제 사이 문제의 원인은 대인관계, 시댁, 경제력이었습니다. 


저는 집에 사람을 초대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남편은 수시로 집에 사람을 불렀고, 전 늦은 시간의 호출에는 딱 잘라 거절하지만 남편은 스프링처럼 반응했습니다.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어른들이 아기를 기다린다는 이유로 주말이든 주중이든 시댁을 가서 하루 종일 있어야 했고, 주말에 영화를 보러 가자거나 어디 여행을 가자고 하면 연로하신 부모님을 두고 갈 수 없는지 늘 망설였고 지금껏 여행은 손에 꼽을 정도로밖에 다녀오질 못했습니다. 


한때 시어머님이 반찬을 들고 1층 현관에 서 계시면 - 어머님은 반찬만 주고 가시겠다고 벨을 누르곤 서계십니다- 설거지나 뭘 하고 있는 나를 꼭 불러서 받아오라고 합니다. 본인은 소파에 누워 티브이를 시청하고 있으면서도 말입니다. 그게 시어머님에 대한 며느리의 도리라고 생각하는가 본데 저는 어차피 자식, 상황이 되는 자식감사히 잘 먹겠다고 하고 받아오면 되는 것이라고 여겨 또 싸웠습니다.


저는 스스로 제 운명을 결정한다고 믿는 사람이지만 남편은 주변에서 얼마나 자신을 도와주느냐, 자신을 도와주도록 하느냐가 운명을 결정한다고 믿는 사람이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 직장생활에서의 우선순위, 위기상황에서의 돌파 방법 등 열이면 열 맞는 게 없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어쭙잖게 제 스타일대로 충고를 하니 갈등이 증폭될 수밖에요. 


 



 '남편은 남편이고 나는 나'라고 제 마음을 고쳐먹기로 한 건 어떻게든 지난한 싸움을 끝내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는 사춘기에 접어들어 모든 게 예민해졌고 부부 사이 일로 아이에게 까지 안 좋은 영향을 미치게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싸움을 끝내기 위해 이혼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만 이혼할 정도의 사유는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뭔가 서로 핀트가 안 맞고 서로 살아가는 방식도 다르지만 그런 걸로 이혼을 하면 과연 누가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나와 비슷한 사람과 살면 정도의 차이는 덜하겠지만 100% 온전히 행복하기만 할까요.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걸 몰랐건 알았건 간에 내가 선택한 결혼이었고 제게도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자고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불만이었던 남편의 모습을 남편의 본모습으로 받아들이자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습니다. '오늘 사람 만나.'라고 하면 '알았어'라고 답하고 일단 늦게 들어오든 저는 시간이 되면 잠을 잤습니다. 

시댁을 가야 한다고 하면 저는 주말에 미용실을 갔다 갈 테니 먼저 가 있으라고 하거나 또 시간이 되면 같이 가고, 영화를 보러 가고 싶으면 남편에게 물어 보되 안 가겠다고 하면 저 혼자서 영화를 보러 가기도 하고 말이죠. 또 하나! 직장을 관두겠다고 하면 '힘들었지. 좀 쉬어'라고 먼저 말을 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죠.


남편에게 굳이 저와 함께 뭘 하자거나 저의 마음을 이해해 주길 바라거나, 시댁 가는 걸 포기하고 저와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은 저의 욕심이고 또 관철도 되지 않는다는 걸 수용하면서 진짜 여러가지로 편하고 삶에 평온이 찾아왔습니다. 


그게 무슨 부부냐고 하겠지만, 그것도 부부입니다. 각자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과정이거든요.

남편도 평온을 되찾고 뭔가 우리 가족 내에서 할 일을 찾아 밸런스를 유지하려고 애를 씁니다. 

아이를 픽업하는 일이나 아이랑 운동하는 일, 설거지나 밥하기 등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찾아 매진을 하더군요. 톱니바퀴가 돌아가듯 말하지 않아도 착착 자기 할일을 하고 있는 모양이라고 할까요. 삐걱댐  없이요.


올 가을이나 겨울쯤 저희 가족은 작년에 이어 또다시 여행을 준비합니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곳으로, 콧바람이나 쎄고 올 작정입니다. 사진이나 잔뜩 찍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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