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연 Mar 26. 2024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시누이

-헛된 기대란 접어요.

언니가 없는 내게 형님(시누이)은 각별했던 적이 있습니다. 저 혼자만의 각별함일 수는 있겠지만 함께 맥주 한잔 하며 그간의 일상을 나눌 기대로 명절의 만남이 기다려지곤 했습니다.  

시누이와 올케 사이라고 해도 세 살 나이 차이밖에 안 나고 통 큰 스타일의 형님은 말수 적은 저를 리드하곤 했습니다. 편안하게 대화를 이끌어주셨기 때문에 시댁 식구 중 그나마 의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둘둘 비닐봉지에 담아 온 블라우스를 툭 건네주시기도 했고,  눈가에 듬뿍 바르라며 아이크림 서너 개씩 주시곤 했죠. 그때는 제 취향의 옷과 화장품이 아니어서 진지 고마운 마음이 크게 생기진 않았는데, 좀 지나니 그게 다 마음이고 배려였다는 걸 느끼게 됐습니다.  


형님의 취미는 운동. 주말에 야외를 나가야 하는 체질이고 저는 반대로 집 밖을 나가기를 아주 귀찮아하는 집순이 스타일입니다. 형님은 동네 슈퍼 아주머니하고도 허물없이 지낼 정도로 붙임성이 좋고, 직장동료들의 가정사도 다 알 정도로 오지랖이었지만 저는 매일 만나는 직장동료라도 사적인 얘기는 잘하지 않으며, 집 앞에 자주 가는 커피전문점 사장님과도 안면을 트지 않는 새침데기 스타일입니다. 


 

출처:펙셀




형님은 친절과 친밀을 타고난 사람이라고 여겼죠. 적어도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요. 

어느 날, 제가 잠시 백수 생활을 할 때 명절이었습니다. 예상보다 일찍 온 형님은 이상하게 저와 눈도 안 마주치시더라고요. 평소 같으면 가장 먼저 반가워하며 잘 지냈냐 한 마디쯤 할 법한데. 


제가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습니다. '형님 살 빠지신 거 같아요.'

형님이 '무슨 소리야. 나 그대로야'라고 하는데, 말 시키지 말라는 짜증이 묻어났습니다. 무슨 잘못이라도 한 걸까 싶었지만 뭐, 그럴 때도 있는 거지 싶어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형님은 식구들이 좋아하는 고기를 굽고 저는 국을 떴고 남자들은 식탁에 반찬을 올려놓고 그렇게 저녁상이 차려졌습니다. 앉자마자 형님이 맥주를 한잔 따라주더라고요. 그럼 그렇지. 맥주를 받아 들고 한두 잔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며 웃고 떠들었습니다. 어머님은 그러하듯 모습을 뿌듯해하며 오버하는 말씀을 간간히 하셨고요. 


그러다 먹는 음식 얘기가 나왔습니다. 각자 좋아하는 음식이 죄다 달랐죠. 신기했습니다. 형님네 가족은 돼지갈비를, 저희 남편은 LA갈비를, 아주버님은 족발을 좋아했죠. 전 누군가의 물음에 양념 안된 고기를 좋아한다고 답을 했습니다. 뒷받침한 문장이 전혀 그런 반응을 일으킬 거란 건 전혀 예상을 못한 채 저는 음식취향이 부부가 너무 다르다고 한 상에 여러 가지 메뉴가 차려질 때가 있다고 뒷말을 붙였죠.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한 말이었습니다. 


형님은 기다렸다는 듯 '이제 그만 올케가 맞출 때가 되지 않았어?' 이러는 겁니다. 

아무 양념이 안된 고기를 좋아한다는데? 양념된 고기를 먹어라? 뭐지?

원래 그런 분이었나? 이제 본색을 드러내시는 건가. 


 



사실 좀 서운했습니다. 처음부터 그런 태도였다면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전혀 저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시댁식구지만 시댁이라는 이름으로 무조건 며느리를 길들이려 하거나 맞추려고 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깨진 같아 혼란스럽기도 했습니다. 


딸로, 며느리로 무언의 공감대 같은 것이 있을 거라 여겼는데 착각이었다는 생각에 허전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잘못 본 건가 싶었던 순간, 형님이 결정타를 날렸습니다. 


"올케 일 쉰다며? 답답하지 않아? 하긴 그 나이에 일할 자리가 그리 쉽게 있겠냐만은. 너무 재지 말고 닥치는 대로 해. 애도 아직 어리잖아."


형님은 그런 생각을 한 거 같아요. 능력이 워낙 출중한 동생(?)때문에 경제활동을 하는 올케라고 생각하지 않고 일을 해야 하는데 하지 않고 있으니 답답해 보인다는 생각?

자신은 그 어떤 일도 닥치는데로 하는 상황인데 제가 이리저리 재고 있어 얄밉다는 생각?

그래서 결국 자기 동생과 집안에 부담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된 건 제가 또 경제활동을 하게 되니깐 형님의 태도가 돌변했기 때문입니다. 

예전처럼 제 취향이 아닌 옷가지며 화장품을 툭 건네며 편하게 입고 쓰라며. 

저는 고맙습니다라고 말하지만 마음은 이미 저만치 멀어져 있었습니다. 

그저 제 일상을 열심히 살며, 때 되어 만나면 잘 지내냐는 안부 하나면 족한 사이죠.

시누이올케 사이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아닐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올케와 안 만난 지 십 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