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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Mar 27. 2024

며느리에게 고맙다 말하면 안 되나요

시어머니와 멀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

시어머니를 탓하는 글을 쓰고 싶진 않습니다. 팔십 평생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 오셨을 거고 그때 그 시절과 다른 시대를 살면서 얼마나 외로우실지 아니깐요. 또 자꾸 싫다 싫다 하면 정말 싫어지는, 마음이 관계를 지배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저 이 땅의 모든 며느리들이 그러하듯 어머님께 한없이 부족한 며느리지만 그래도 지낸 세월이 있으니 조금이나마 저를 인정해 주실 거라고 믿었을 뿐입니다. 


7,8년 전쯤 실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전에도 여러 고비가 있었지만 아예 실직을 한건 처음입니다. 자발적이면서도 비자발적 실업이었고 준비 없이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이십 년을 일했으니 좀 쉬자는 생각도 있었지만 실직자가 된 뒤 얼마 못 가 이러다가 아예 쉬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겨났습니다. 


가족들에게는 잠깐 쉬다가 다시 일을 할 거라고 했습니다. 이십 년 직장생활에서 방전된 나를 돌볼 기회를 갖겠다고 했습니다. 친정엄마는 좀 쉬어라, 푹 쉬어라, 여행도 갔다 오면 좋겠고라면서도 그 나이에 일자리 구하기 힘들 텐데라며 떨떠름하게 응원해 주셨죠. 


출처:펙셀



생각해 보면 예측이 됐던 실직이었습니다. 제가 미처 서둘러 준비를 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준비를 못한 이유는 반반이었던 것 같습니다. 반은 계속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 반은 이제는 좀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 그 생각 속에서 해답을 찾기 전에 실직이 찾아온 거죠.

그럴 때 격려하고 응원하고 고민을 나누고 길을 함께 생각해 보고, 안되면 그냥 지켜봐 주는 게 가장 가까운 가족이겠죠. 


하지만 현실 속 가족은 더 먼저 불안해합니다. 아주 많이 불안해합니다. 볼 때마다 아이고 어쩌니 하면서 감정적으로 증폭시키기도 합니다. 누군가 '그 집 딸 아직 그 회사 다녀?'라고 물을 때 '관뒀어'라고 말하는 것에 심한 거부감을 갖고 있죠. 설령 놀고 있어도 일하고 있다고 말하고, 놀고 있는 자식에게는 차갑고 일하는 자식에게는 관대하죠. 실직을 하기까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까에는 도통 관심이 없습니다. 직장생활 다 그렇지, 미리 준비 좀 하지. 남들은 다 자기 살길 찾아갔는데 너는 왜 그 모양이니라고 잔소리를 더합니다. 

친정엄마도, 동생도 다들 걱정을 빙자한 불안을 표출합니다. 나 홀로 인생이라는 말이 실감 나는 순간입니다. 


저희 어머님도 그런 분이십니다. 거기에 아들 지상주의까지 결합되어 있죠. 일하는 며느리에게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아들이 집안일하는 꼴은 못 본다'는 말씀을 결혼 초부터 수시로 하셨던 분인지라, 솔직히 힘들고 불편했습니다.  그래도 그런 적절히 지혜롭게 하면 되는 일이어서 시간이 지나니 그런가 보다 하게 됐고, 겉으로는 그래도 마음만은 저를 생각한다는 여겼기에 '철 지난 말씀 그만하시라'라고 이제는 편하게 할 말 다하는 사이가 됐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는 것 같습니다. 

누가 만든 강인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건너려고 해도 건널 없는, 깊이나 넓이가 가늠이 안 되는 그런 강.

어떨 때는 상당히 얕은 냇물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떨 때는 바다처럼 깊고 넓은, 그런 강. 


실직했을 때 그런 생각이 더 강해졌습니다. 상황 때문에 더 예민하게 받아들여졌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어머니는 저를 자식 대하듯 하지 않으셨고, 뭐랄까 좀 거리를 뒀다고 해야 할까요. 차가웠다고 해야 할까요. 

이십 년을 일하고 퇴직을 했는데, 인생의 한 페이지를 넘기며 헛헛한 며느리를 향해 고생 많았다, 수고 많았다는 말은 커녕 무언의 압박을 보내셨습니다.  '너까지 놀면 가정경제는 어떻게 되는 거니.'라는. 


결혼초부터 들쑥날쑥 경제활동을 한 남편 덕분에 제가 거의 가정경제를 책임졌습니다. 저는 돈 버는 능력 있는 사람이 돈 벌면 된다는 주의여서 그런 건 크게 괘념치 않는 편입니다. 물론 성인이 경제활동을 해서 가정경제를 책임지고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는 기본지만 모든 사람이 경제활동을 통해 기여하는 것은 아니기에 그런 사람 중에 한 명을 제가 만난 거라 여겼습니다. (남편은 봉사나 다른 사회참여활동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해서 불만이 없으니 어머님께도 그부분에 대해 일절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달랐습니다.

저는 그저 다른 필요 없고 "고생 많았다. 고맙다." 어머님이 제게 한마디만 해주면 얼마좋을까, 아무도 제게 고생 많았다고 말하지 않는데 어머님이라도 말해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남편이 고맙다 말하는 건 너무 식상하고 어머님이 그렇게 말씀해 주시면 정말 지난 이십 년이 헛되지 않게 느껴질 것 같은데... 어머니는 끝까지 고맙다는 말씀 안 하시더라고요. 슬쩍 여쭤봤습니다. "어머니, 저한테 고마우세요?" 

고맙다는 말은 미안한 마음을 밑바탕으로 하는 거고, 결국 자신 아들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꼴이 되어서 끝까지 그 말씀은 하지 않으시겠다고 합니다. 제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지만 말로 표현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아들이 주눅 들까 걱정도 되신다고 하셨지요. 느끼면 되지 말이 필요하냐는 말씀이겠지요. 제가 며느리가 아니고 딸이었다면, 그때도 그 말을 입밖에 꺼내기 힘들었을까요. 




저도 아들을 키우고 있으니 언젠가는 제게도 며느리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부디 저는 고마우면 고맙다 말할 수 있는 시어머니가 되길, 괜찮은 노인으로 성장하기 위해 많은 수련의 과정을 거치길... 바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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