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사춘기 시절을 떠올리며
사춘기 시절, 엄마가 불쑥 내방을 들락거리는 게 영 거슬리는 게 아니었다. 어느 날 옷장 서랍문을 여는 엄마에게 빨리 나가라고 소리쳤다. 어이없어하며 방문을 쾅 닫는 소리가 들렸고 이내 문밖에서 고래고래 못된 년이라고 소리치는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 옷은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방바닥에 덩그러니 놓인 상태였지만 그러든지 말든지. 나만의 공간에 엄마의 침범은 당시 내겐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라디오를 켜고 옷은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채 공부를 하는지, 낙서를 하는지, 이리저리 산만한 정신상태로 밤 열두 시까지 책상머리에 앉아 있곤 했다.
그때가 내 나이 열여섯, 열일곱 무렵.
아직 마흔이 되지 않은 한창나이의 엄마는 아마도 부엌에서 밀린 설거지를 하며 내 욕을 겁나게 했을 테다.
그러면서도 아이 방에 불이 꺼질 때까지 엄마는 쉬이 먼저 잠을 드시지 않았다.
가끔 문 앞에 빼꼼히 얼굴을 드밀고 "뭐 필요한 거 없어?' 하곤 물으셨다.
딸내미가 언제 자신을 매몰차게 내몰았는지 까마득히 잊어버린 사람처럼, 정말 안쓰러운 표정과 말투로 말이다. "없어"라고 해도 "우유 줄까?" "배 안 고파?" 라며 끝없이 말을 걸어왔고, 나는 "됐으니깐 나가라고. 내가 알아서 한다고"라며 폭발했다.
왜 그랬는지, 정말 못돼 처먹었었다.
하루에도 열두 번 기분이 오락가락했고, 친구들과 환하게 웃다가도 엄마 앞에서는 퉁퉁 불은 얼굴이 됐다.
세월이 흘러 난 아이 엄마가 됐고, 사춘기가 시작된 아이의 무조건적인 거부반응에 당황스러운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우리 엄마처럼 아무 때나 불쑥불쑥 방문을 열어재끼지도, 쏟아지는 잠을 물리치며 아이가 잠들 때까지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 갑자기 필요한 게 없냐고 집요하게 묻지도 않는데 어찌 된 일인지 아이는 엄청 나를 밀어낸다.
그 나이 때는 무조건 엄마에게서 분리부터 하고 봐야 하는 심산이 되는 걸까.
조금이라도 눈에 안 보이면 울고 불고 하며 분리불안 증세를 보이던 아가는 이제 더 이상 없다.
섭섭하다기보다는 뭐랄까, 화도 나고 이해도 안 되고 하여간 나를 종잡을 수 없게 만든다는 게 가까운 표현일 것 같다. 1분 전까지는 웃고 떠들다가 갑자기 돌변해서는 "저리 가"라며 밀어내는 통에 아주 난감이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정말 후우- 그 자체다. 정신적, 신체적 성장기 아이들이 으레 겪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치부하기에는 애 인성이 원래 이상한 게 아닐까 괜한 걱정까지 늘어지게 한다. 답도 없는 걱정을 하는 내게 학교 선생님이 어느 날 이런 얘기를 했다.
"00이, 너무 반듯하고 아이들하고도 잘 지내고 무엇보다 배려심과 생각이 깊은 아입니다. 걱정 마세요."
내 마음을 읽은 건 아닐 테고 의례적인 멘트였겠지만 인성이 이상한 건 아니라는 생각에 안심이 됐다.
그리고 내가 보는 아이의 모습이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동시에, 지금 아이는 안과 밖의 이중적인 자신의 모습과 싸움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객관화는 모르겠지만 나도 나를 잘 모르는데 자기를 아는 척하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현을 그토록 강한 반감으로 드러낸 걸지도 모른다.
아이는 자신만의 생각을 키우며 성장한다. 새로운 관계를 만들며, 사랑도 알게 되고 미움의 감정도 알게 된다. 때론 좌절감도 느끼고 슬픔으로 아파하기도 하고, 내 마음처럼 모든 타인이 같은 마음일 수 없다는 사실에 답답함이나 서운함, 실망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면서 내 자신을 돌아보고 나는 어떤 인간이길 원하는지를, 찬찬히 들여다볼 계기를 갖게 된다.
그 과정에서 부모가 일일이 관여하여 아이에게 답을 줄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유아기에는 부모가 모든 답을 주길 바라지만, 청소년기에 접어들면 스스로 개척하는 삶에 대한 기대가 커지게 된다. 무조건 나 혼자서 해보고 싶어 하고 그 과정에서 터득하는 진리에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그 과정 속에 엄마의 시시콜콜한 보살핌은 거추장스러운 일이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아이가 먼저 말을 걸어오기 전까진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일단 삼초를 세며 기다린다.
그리고 얘기를 나누다가 아이가 더 이상 말을 하고 싶지 않아 하면, 정말 정말 궁금해 미칠 지경이어도
말을 딱 끊는 걸 연습 중이다.
거기서 더 나아갔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테니, 일단 기다리자고 다짐한다.
몇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고, 혼자서 속을 끓이는 일도 잦았지만 언젠가부터 아이가 안방 문을 열고 대화를 시도하는 일이 잦아졌다.
아이는 내게 경이로울 정도로 놀라운 자신의 생각을 내뱉는다. 입시제도의 문제가 어디서 기인하고, 종교와 과학의 차이가 뭔지를, 자신만의 논리로 풀어내는 식이다. 토는 달지 않는다. 그저 물으면 답할 뿐이다.
저 멀리 앞서 길을 걷고 있는 아이가 가끔 뒤를 돌아 나를 봐주길 바라는 마음만은 숨긴 채 그저 지켜볼 뿐이다. 멀어지지 않으려면, 멀어지는 연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