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된 기대란 접어요.
언니가 없는 내게 형님(시누이)은 각별했던 적이 있습니다. 저 혼자만의 각별함일 수는 있겠지만 함께 맥주 한잔 하며 그간의 일상을 나눌 기대로 명절의 만남이 기다려지곤 했습니다.
시누이와 올케 사이라고 해도 세 살 나이 차이밖에 안 나고 통 큰 스타일의 형님은 말수 적은 저를 리드하곤 했습니다. 편안하게 대화를 이끌어주셨기 때문에 시댁 식구 중 그나마 의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둘둘 비닐봉지에 담아 온 블라우스를 툭 건네주시기도 했고, 눈가에 듬뿍 바르라며 아이크림 서너 개씩 주시곤 했죠. 그때는 제 취향의 옷과 화장품이 아니어서 진지 고마운 마음이 크게 생기진 않았는데, 좀 지나니 그게 다 마음이고 배려였다는 걸 느끼게 됐습니다.
형님의 취미는 운동. 주말에 야외를 나가야 하는 체질이고 저는 반대로 집 밖을 나가기를 아주 귀찮아하는 집순이 스타일입니다. 형님은 동네 슈퍼 아주머니하고도 허물없이 지낼 정도로 붙임성이 좋고, 직장동료들의 가정사도 다 알 정도로 오지랖이었지만 저는 매일 만나는 직장동료라도 사적인 얘기는 잘하지 않으며, 집 앞에 자주 가는 커피전문점 사장님과도 안면을 트지 않는 새침데기 스타일입니다.
형님은 친절과 친밀을 타고난 사람이라고 여겼죠. 적어도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요.
어느 날, 제가 잠시 백수 생활을 할 때 명절이었습니다. 예상보다 일찍 온 형님은 이상하게 저와 눈도 안 마주치시더라고요. 평소 같으면 가장 먼저 반가워하며 잘 지냈냐 한 마디쯤 할 법한데.
제가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습니다. '형님 살 빠지신 거 같아요.'
형님이 '무슨 소리야. 나 그대로야'라고 하는데, 말 시키지 말라는 짜증이 묻어났습니다. 무슨 잘못이라도 한 걸까 싶었지만 뭐, 그럴 때도 있는 거지 싶어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형님은 식구들이 좋아하는 고기를 굽고 저는 국을 떴고 남자들은 식탁에 반찬을 올려놓고 그렇게 저녁상이 차려졌습니다. 앉자마자 형님이 맥주를 한잔 따라주더라고요. 그럼 그렇지. 맥주를 받아 들고 한두 잔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며 웃고 떠들었습니다. 어머님은 늘 그러하듯 그 모습을 뿌듯해하며 오버하는 말씀을 간간히 하셨고요.
그러다 먹는 음식 얘기가 나왔습니다. 각자 좋아하는 음식이 죄다 달랐죠. 신기했습니다. 형님네 가족은 돼지갈비를, 저희 남편은 LA갈비를, 아주버님은 족발을 좋아했죠. 전 누군가의 물음에 양념 안된 고기를 좋아한다고 답을 했습니다. 뒷받침한 문장이 전혀 그런 반응을 일으킬 거란 건 전혀 예상을 못한 채 저는 음식취향이 부부가 너무 다르다고 한 상에 여러 가지 메뉴가 차려질 때가 있다고 뒷말을 붙였죠.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한 말이었습니다.
형님은 기다렸다는 듯 '이제 그만 올케가 맞출 때가 되지 않았어?' 이러는 겁니다.
아무 양념이 안된 고기를 좋아한다는데? 양념된 고기를 먹어라? 뭐지?
원래 그런 분이었나? 이제 본색을 드러내시는 건가.
사실 좀 서운했습니다. 처음부터 그런 태도였다면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전혀 저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시댁식구지만 시댁이라는 이름으로 무조건 며느리를 길들이려 하거나 맞추려고 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깨진 것 같아 혼란스럽기도 했습니다.
딸로, 며느리로 무언의 공감대 같은 것이 있을 거라 여겼는데 착각이었다는 생각에 허전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잘못 본 건가 싶었던 순간, 형님이 결정타를 날렸습니다.
"올케 일 쉰다며? 답답하지 않아? 하긴 그 나이에 일할 자리가 그리 쉽게 있겠냐만은. 너무 재지 말고 닥치는 대로 해. 애도 아직 어리잖아."
형님은 그런 생각을 한 거 같아요. 능력이 워낙 출중한 동생(?)때문에 경제활동을 하는 올케라고 생각하지 않고 일을 해야 하는데 하지 않고 있으니 답답해 보인다는 생각?
자신은 그 어떤 일도 닥치는데로 하는 상황인데 제가 이리저리 재고 있어 얄밉다는 생각?
그래서 결국 자기 동생과 집안에 부담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된 건 제가 또 경제활동을 하게 되니깐 형님의 태도가 돌변했기 때문입니다.
예전처럼 제 취향이 아닌 옷가지며 화장품을 툭 건네며 편하게 입고 쓰라며.
저는 고맙습니다라고 말하지만 마음은 이미 저만치 멀어져 있었습니다.
그저 제 일상을 열심히 살며, 때 되어 만나면 잘 지내냐는 안부 하나면 족한 사이죠.
시누이올케 사이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