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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쓰 Jan 09. 2021

그렇게 웃잖아

도무지 도달할 수 없을 웃음에 대하여, <셰이프 오브 워터>

#셰이프오브워터 #그렇게웃잖아

많은 분들이 이 영화의 훌륭한 지점, 그러니까 기예르모 델 토로의 몽환적인 세계가 얼만큼 밀도있게 수렴하는지 이보다 더 친절할 수 없게끔 설명할 것임을, 설명했을 것임을 알기에 (더 세심할 자신이 없는) 나는 샐리 호킨스의 웃음에 대해서만 서술해 보려고 한다. 나는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 도무지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은 웃음을 보았다. 괜스레 내 사랑을 돌이켜보게끔 하는 순결하고 신성한 웃음이었다. 사랑의 형태를 함부로 예단한 채 사랑하려 백날 애써봤자 그렇게 해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희열이 있는 것이라며, 마치 그런 웃음이 실재하는 것처럼. 샐리 호킨스는 그렇게 웃는다. 아니, 그녀는 그렇게 웃을 줄도 안다. 앞선 두 문장의 표현에는 깊은 낙차가 있다. <내 사랑>의 샐리 호킨스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미소짓기 때문이다. 평생을 고통과 싸워야 했던 모디에게서 나는 '그래도 나는 괜찮아, 이게 나의 세상이고 나는 나의 삶을 사랑해' 식의 쓸쓸하고 허망하지만 그래도 주먹을 꽉 쥐게 만드는 미소를 보았다. 나는 샐리 호킨스의 얼굴을 세상에서 가장 깊은 표정으로 여기게 됐고, 배우라는 건 어쩌면 타고날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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