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에게 ‘가미귀비탕加味歸脾湯’을 처방하며

불면의 밤을 지새울 당신의 마음에도 한 사발.

by 한약여신

TV에서 우연히 한 유명인이 새 해마다 삼국지와 어린 왕자를 새로이 읽는다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왜인지 그 장면이 인상 깊었던 나는 어린 왕자 책을 사서 몇 해간 다시 읽곤 했다. 매년 다시 읽을 때마다 한 해씩 커진 삶이 궤적이 그 독서의 넓이를 바꾸는 듯했다. 지난해엔 무심히 지나쳤던 구절이 가슴에 또렷이 울림을 남기기도 했고, 가슴 시리던 결말이 무던히 이해가 가기도 했다.


마음에도 나이테가 있다면 흐르는 시간과 세월을 따라 나의 어린 왕자는 자라나며 이야기 속 그 지름을 넓혀갔다.



한 비행기 조종사가 사하라사막에 불시착하여 소행성 B612의 어린 왕자를 만나고 귀환하는 이 소설은 나 역시 그랬듯 동화로 잘 알고 있지만, 실제로 사관학교 출신의 조종사였던 작가 쌩텍쥐빼리가 이 소설이 발간된 지 1년여 뒤 인 1944년 프랑스 본토 정찰비행에서 행방불명된다는 점에서 예언적 자전 소설의 성격을 띠고 있다.


아울러 동화의 상징처럼 등장하는 여우, 꽃, 왕자로 상징된 인물들에 내포된 의미를 곱씹다 보면 이 소설은 어린 시절을 잊어버린, 혹은 잃어버린 어른들에 대한 회고록이기도 하다.


어린 왕자가 별들을 여행하며 각 별의 여섯 명의 어른들을 만나 발견한 빛바랜 어른의 표본은 어른이 되어 어린 왕자를 다시 읽는 이로 하여금 거울에서 발견한 새로운 주름처럼 씁쓸함을 준다. 들을 귀가 없어진 첫 번째 왕과 의미를 잃은 채 같은 일을 반복만 하고 마는 등대지기를 다시 보며 나 역시 이미 잃어버린 생기와 열정의 자취가 감춰진 일상을 떠올렸다.



누군가에게 길들여진다는 것은
눈물을 흘릴 일이
생긴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린 왕자 中


10대와 20대에 어린 왕자를 읽으면서는 여자의 사랑을 상징화 한 '장미'에 몰입이 되어 가시를 돋우고 상대를 대했던 나 자신과 사랑할수록 더 확인받고자 했고 반대로 행동하던 올가미 같은 장미의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사무쳤는데, 30대가 되어 본 이 책에서는 어린 왕자와 꽃, 여우, 조종사 아저씨 와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커지는 그의 안에 생겨난 불안함이 더 도드라지게 느껴졌다.



어린 왕자에게 ‘가미귀비탕加味歸脾湯’을 처방하며



가미귀비탕(加味歸脾湯): 당귀(當歸) · 용안육(龍眼肉) · 산조인(酸棗仁: 덖은 것) · 백출(白朮) · 복신(茯神) · 인삼(人參) · 황기(黃耆) · 원지(遠志: 법제한 것) · 시호(柴胡) · 치자(梔子) 각 4g, 목향(木香) 2g, 감초(甘草) 1.2g, 생강(生薑) 5쪽, 대조(大棗) 2개. [《동의보감(東醫寶鑑)》]


‘가미귀비탕加味歸脾湯’ 은 간기(肝氣) · 비기(脾氣)의 울결(鬱結)로 신경이 예민해지고 월경이 없는데,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해하며 가슴이 울렁거리고 가슴과 옆구리가 아프며 열이 나고 식은땀이 나는 데, 잠을 이루지 못하고 건망증이 있는데 쓴다.


아울러 신경쇠약증, 심장 신경증 등 때 쓸 수 있으며, 위의 약을 1첩으로 하여 물에 달여서 먹는다.

어린 왕자를 만나게 된다면 꼭 '가미귀비탕加味歸脾湯' 한 첩을 지어주고 싶다.


존재하지도 않던 양이 자신의 별의 아끼던 장미꽃을 먹을까 봐 전전긍긍하던,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 조종사에게 초조하게 질문을 해대던, 자신의 별에 오직 한송이뿐이던 장미꽃이 다른 별에 무더기로 피어있는 것을 보고 엉엉 울어버리던, 어쩌면 4시에 온다던 여우가 한밤중까지 오지 않으면 긴긴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다 불면을 앓았을.


왜소한 허약체질의 어린 왕자에게 '가미귀비탕加味歸脾湯'을 지어주면 어린 왕자는 하루라도 걱정 없이 편안히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어린 왕자에게 '가미귀비탕' 처방을 내리고 문득 그는 왜 그렇게도 불안하고 초조했을지 생각해 봤다.


결국
어린 왕자는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 아닐까,



사랑하기 때문에 길들여졌고 그 길들여진 별의 시간과 역사 속에서 꽃과 여우, 그리고 조종사아저씨 같은 소중한 존재를 잃고 싶지 않았을 테니.


서로 함께 한 흔적의 의미를, 또한 길들이기 시작하면 그 길들임의 특별함 무게만큼의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말이다.



나에게 또한 사랑은 그 기막힌 환희와 기쁨인 동시에 그토록 확인하고 불안하고 잠 못 이루는 나날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사랑할수록, 그 마음이 자라날수록 함께 커지는 불안함과 초조함으로 파괴되어 가는 내 안의 바호밥나무를 끌어안은 채.


그래서 누군가 내게 다신 사랑하고 싶지 않은 거냐고 묻는다면,


아니.


매 시간마다 '가비귀비탕加味歸脾湯'을 복용하면서라도 다시 사랑하고 싶다고. 계속 사랑하고 싶다고.


사랑하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 만나게 되는 시간들.



비밀을 가르쳐 줄게.
오직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어린 왕자 中

혹시 지금 눈으로는 볼 수 없던 심장의 시야로 누군가의 마음을 보고 있다면, 숱한 불면의 밤을 지새울 당신에게도 추천한다.


‘가미귀비탕加味歸脾湯’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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