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차菊花茶',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사랑하고 싶은가

by 한약여신

<국화차菊花茶,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사랑하고 싶은가>

‘국화 옆에서菊花─_ 서정주’ 1947년〈경향신문〉에 발표된 4연 13행의 자유시로 서정주의 대표작이다. 단 한 송이의 국화가 피어나기까지 1연의 소쩍새, 2연의 천둥, 4연의 무서리로 맺어진 계절 속 자연의 깊은 인연과 기다림을 불교의 인연설을 기반으로 통찰하고 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서정주_국화 옆에서中



소쩍새와 천둥이 먹구름 속에서 밤을 새워 울며 피워낸 .

영화 ‘황후化’의 중양절 황궁을 뒤덮은 황금빛 꽃,


국화 菊花는 예로부터 한의학에서 약용으로 사용되어 왔다.

매梅, 죽竹, 난蘭과 더불어 ‘사군자四君子’중 하나인 국화菊花는 열을 내리고 간장을 편안하게 하는 작용이 있다.


국화 菊花 는 그 성미가 달면서 쓴맛을 내고 성질은 냉하여 주로 폐경肺經과 간경肝經에서 작용한다.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에 따르면 국화의 주요 효능으로는 해열, 해독, 진통소염으로 감기에 약효를 나타낸다.


또한 간장을 안정시켜 눈을 맑게 하며 특히 국화는 관상동맥의 확장과 항염증 작용을 통해 동맥경화증 및 고콜레스테롤혈증 치료에 처방된다.


폐활량이 약하고 숨이 차는 성향을 지닌 태음인에게 더욱 좋은 국화는 가정에서 한방차로 활용해 달여 마시면 유용한데


국화 6g을 끓는 물을 부어 우려낸 후 차로 마시면 목감기에 효능이 좋고,

여기에 녹차 3g과 홰나무꽃 3g을 첨가하면 고혈압 치료에 도움이 된다.

아울러 감초 8g, 은화 18g을 첨가하면 변비로 고생하는 때에 예후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하인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국화꽃향기’. 남자주인공 인하는 5월의 어느 날 등굣길 지하철 안에서 은은하고도 담백한 국화꽃 향기를 가진 희재를 만난다. 그렇게 시작된 국화꽃 향기를 품은 사랑은 영원을 새긴다.


故장진영, 박해일 주연의 영화 ‘국화꽃향기’에서 대학 신입생 인하(박해일)는 어느 지하철 역에서 우연히 만난 희재(장진영)에게서 국화꽃 향기를 맡으며 사랑에 젖어든다.


나는 어쩐지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를 읽으며 인하의 마음에 사랑을 피어나게 한 희재의 국화향의 비밀을 알 것도 같았다.


그건 어쩌면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구슬프게 운 소쩍새의 눈물과

먹구름 속에서 천둥도 울어야 했던 애심이

국화 꽃잎 한 장 한 장에 스며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지난 1989년부터 이어져온 부산 전통찻집 ‘차밭골’. '차밭골'은 부산대학교 정문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일본식 라멘집 '우마이도' 3층에 자리하고 있다. 추억은 사랑을 닮아 그날의 깊은 차의 향은 기억 속 오감을 깨운다.


그래서일까, 국화차菊花茶의 향과 온기를 타고 차 한 모금의 미각과 후각은 지나간 사랑의 기억을 소환시킨다.


스물하나. 나보다 한 살 어리던 그 시절 전 연인은 아주 신기한 곳이 있다는 듯 나를 이끌고 부산의 한 한방찻집에 데려갔다. 한약차와 함께 나온 약과를 한 입씩 베어 물며 찻잔 속에 비친 서로를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는 듯 애틋하게 바라보던 우리는 차의 향에 취해 속절없이 사랑에 스며들어갔고, 그렇게 그와 나는 꼬박 여섯 해를 만났다.


그러나 그날의 한방찻집에서의 향과 온기가 영원할 줄만 알았던 스물하나의 순수는 해를 지나며 더는 우려낼 수 없는 차처럼, 흩어져 버린 차의 향기처럼, 식어버린 찻잔의 온도를 닮아 오해와 집착으로 서로를 옭아매며 빛을 잃어갔다.


더는 애를 써도 우려낼 수 없는.. 처음의 차 맛처럼 우리는 처음 사랑했던 시절의 향과 온기를 기억하고 바랬지만 6년이란 시간 속에서 심장을 쥐어짜 내도 우리는 더는 사랑할 수없을 만큼 변한 것이다.


그 변화를 인정하지 못하던 그때의 그와 나는 치열하게 서로의 마음의 찻잔에 쓴 물을 뿜어내며 원망했고 끝내는 이별에 항복하며 헤어졌지만 이제는 생각한다.


차의 향과 온도가 시간에 흐름에 따라 변하듯, 시간을 타고 계절에 따라 활짝 피었던 꽃이 졌다가 서리를 맞는 것처럼 기나긴 겨울을 지나 새봉오리를 맺는 사랑에도 계절이 있다는 것을.


시간에 따라 자연스레 따스한 사랑의 온기는 뜨거운 열기가 되기도, 차가운 바람이 되기도, 자욱한 안개가 되었다가 시원한 빗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러므로 사랑하는 연인이 맞게 되는 변화는 꼭 마음의 배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독된 사랑의 가장 강렬한 패러독스는 ‘관성’. 사랑을 품은 그 시절 순수의 향기는 이별의 기억을 마비시키고 또다시 사랑의 자리로 돌아가게 했다.


하지만 이별 후 몇 해가 지난 이제야 몇 번을 우려낸 국화차菊花茶의 끝 맛을 음미할 수 있는 것처럼 묽어진 상대의 사랑의 증거들에 분노하던 그 시절의 나는 사랑이 타는 계절의 변화를 받아들일 수 없어 처참히 스스로 무너졌었다. 점심시간마다 강남역의 빌딩을 전전하며 마음 놓고 울 수 있는 화장실을 찾아 오열했고 저녁만 먹으려 하면 떠오르던 그의 생각에 체해 몸무게는 삼십 킬로대로 곤두박질치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사랑받던, 사랑하던 기억은 향 짙은 중독과도 같아서 영화 ‘국화꽃향기’의 인하의 마음에 세월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희재의 국화향처럼 다시는 사랑 같은 거 못하겠다고 선언했던 스스로가 무색하게도 그 진한 향은 계절을 따라 심장을 떠돌며 또 누군가를 사랑하게 했고 또 다른 이별들을 거치며 그 지독함을 저주하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독된 사랑의 가장 강렬한 패러독스관성.
우습게도 또다시 그 깊고 은은한 사랑의 체취를 꿈꾸게 했으니까,


매일 밤 "아, 다시 사랑하고 싶다 ”고.



장예모 감독 2006년 작품 중국영화 ‘황후花’. 찬란한 달빛을 등지고 국화로 수놓은 황금 갑옷을 입은 십만의 병사들이 황제를 향해 칼을 겨눈다.

주윤발, 공리, 주걸륜이 출연한 중국영화 ‘황후化’에서 황제는 황후의 탕약에 초오두草烏頭라는 아코니틴(aconitine) 성분의 독성을 함유한 식물 약재를 넣어 매일 2시간에 한번씩 마시게 한다.


매일 한 모금의 속도로 죽어가던 황후는 아들과 역모를 꾀하지만 처참히 패하고, 전사한 시체 위에 중국 최대의 중양절을 치르는 장면에 황궁을 뒤덮은 수 만송이의 노란 국화꽃이 스크린에 황금빛 장관으로 펼쳐진다.


어긋난 사랑과 권력의 피의 역사의 현장이 국화꽃으로 덮이면서 어떤 사랑은 끝이 나고 또 어떤 사랑은 시작된다.


춘화처리春化處理. 국화는 늦은 가을에 오는 추위와 서리를 온몸으로 맞아야 비로소 깊은 향을 품은 꽃을 피워낸다.


「노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서정주_국화옆에서 中」



국화꽃 한 송이의 개화를 위해서 간 밤엔 무서리가 내리고 시인에겐 숱한 불면의 밤이 기다린다.


'춘화처리'


실제로 국화는 피고 지는데 보통 60일 정도가 걸리는데 국화는 찬 서리를 보름정도 맞아야 맛과 향이 깊이 우러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친 불면의 밤을 지나 나의 6년의 사랑은 끝이 났지만 나는 결코 지난 사랑을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끝나가던 그 사랑을 지켜보려고 밤기차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을 찾아가 새벽까지 그의 앞에서 울며 빌던 순간들.. 지하철 막차를 알리는 방송에 기적적으로 돌아선 연인의 품에 안겨 맡은 그의 달콤한 체취. 헤어진 후 다시 만난 대전역에서 나를 외면하며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차갑게 기차에 오른 그를 차마 쳐다보지도 못하고 주저앉아 엉엉 울어버리던 그날의 플랫폼.


찬 서리를 맞은 국화가 비로소 그 향을 온전히 품듯 사랑도 간밤의 무서리를 맞아야 마침내 완전히 피어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사랑을 잃고 휘청이던 그 시절의 아픔은 이제는 누군가를, 누구라도, 더 잘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의 원천이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지금 사랑이 남긴 상처에 베이고 있다면 우린 지금
‘더 잘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는 거라고.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 싶은가_ 서정주’. 1948년 선문사에서 발간된 서정주의 제2시집 <귀촉도歸蜀途>에 수록된 시이다. 축제蜀帝, 두우杜宇가 죽어 그 혼이 화하여 ‘귀촉도’가 되었다는 전설을 소재로 하여 죽은 임을 그리워하는 비통함을 표상하고 있다. <귀촉도>는 한국적인 한의 미학을 제시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정해 정해 정도령아

원이 왔다 문 열어라

붉은 꽃을 문지르면

붉은 피가 돌아오고

푸른 꽃을 문지르면

푸른 숨이 돌아오고


소녀여, 비가 개인 날은 하늘이 왜이라도 푸른가.

어데서 쉬는 숨소리기에 이라도 똑똑히 들림이는 가.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 싶은가.


서정주_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 싶은가 中」


서정주의 또 하나의 시에서 삶을 ‘사랑’으로 바꾸면 나는 시인에게 답을 알았다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사랑. 하고 싶은가”


국화에는 LGT(liver function test) 간수치를 낮춰주고 납 중독의 해독 효능이 있어

국화차菊花茶 한 모금 한 모금이 심장을 타고 흘러 사랑의 염증과 중독도 해독시키는 것이라고.


그래서 국화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 소녀의 붉은 피를 타고 다시 정도령을 향해 심장을 뛰게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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